4. 부작용 앞에서도 계속 삼키는 이유
내가 먹고 있는 뇌전증 약은 ‘엑세그란’이다.
발작 빈도와 강도를 줄여주는 1일 1회 복용 약으로,
하루를 안전하게 마무리하게 해주는 나만의 안전벨트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 약에도 부작용은 있었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다.
크게 어지럽거나 메스꺼운 증상도 없었고,
컨디션도 이전과 비슷해 보여 안심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며 알게 되었다.
턱선이 다르고, 어깨가 좁아 보이고, 얼굴이 푹 꺼져 있었다.
몸무게를 재보니, 몇 달 사이 8kg 이상 빠져 있었다.
살이 빠지는 건 이 약의 주요한 부작용 중 하나였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날도 있었고, 입맛이 뚝 떨어질 때도 있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체중은 멈추지 않고 빠지고 있었고
병원에서는 “이대로 더 빠지면 약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뇌전증 환자에게 약을 바꾼다는 건 단순한 교체가 아니다.
새로운 약은 복용 횟수가 늘어나거나, 용량이 더 많아질 수 있고,
약이 몸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까지 발작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지금의 약에 나를 맞추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약이 나를 어떻게든 버티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든 이후로는
매일 밥을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식사를 거르면 더 빠질까 봐 불안하고,
몸이 점점 약해지는 게 느껴지면 약을 삼키는 마음도 무거워진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약을 삼킨다.
내가 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