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은 내가 아니지만, 나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뇌전증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나는 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무단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제 나는 그 낯선 존재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병이 당신을 정의하진 않아요.”
하지만 내 하루를 건드리는 것이 병인 이상,
나는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뇌전증 환자이기도 하고, 그냥 나이기도 하다.
병은 나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일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
약을 챙기고, 일정한 리듬으로 자고,
갑자기 어지럽거나 말이 꼬이는 순간마다
나는 다시 나의 일부를 떠올린다.
‘나는 뇌전증이 있다’라는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짧지만, 감정적으로는 길고 복잡하다.
당연하게도 내가 선택한 것도,
원한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나의 일부로 살아간다.
부정하거나 숨기기보다,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뇌전증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지만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조건처럼
마주하며 살아간다.
어떤 날은 그 존재가 잊힐 만큼 평온하고,
어떤 날은 모든 것을 잠식할 만큼 거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살아내고 있다.
병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애쓰고,
병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한다.
두려움과 받아들임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 작은 발을 내디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하루, 그 하루를 또 살아낸다.
그렇게 조금씩, 내 삶을 회복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