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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 Sep 17. 2022

3. 여기가 복지 시설이라고?

그룹홈을 만나다

그룹홈 group home

-그룹 홈은 소규모 시설 또는 장애인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가정을 뜻한다.

-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장애인, 노숙자, 가출 청소년 등이 자립할 때까지 자활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든 시설




우여곡절 많고 좌충우돌하던 자원봉사 활동도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이르러 마지막 봉사활동을 앞두었다. 마지막 봉사활동을 한 곳은 장애인 복지시설이었다. 장애인 복지시설이라는 말에 처음 들었던 생각은, 차를 타고 한참을 가면 나타나는, 병원처럼 하얀 건물과 수많은 사람이었다. 그분들을 씻기고, 먹이고, 휠체어도 밀어드리고, 세탁이 끝난 큰 이불을 친구와 둘이서 양 끝을 잡고 탈탈 털어서 널어놓는 그런 상상을 했다.

가는 길이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가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봉사활동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위해 답사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봉사 가기로 한 중학생인데요. 제가 혹시 길을 못 찾을까 걱정도 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이번 주 토요일에 답사 겸 찾아봬도 될까요?”

“네. 와도 되는데, 몇 시쯤 오나요? 우리는 그날 나갔다가 다섯 시나 돼야 모두 들어올 것 같아요.”

“네, 그럼 주소 알려주시면 그 시간에 뵙겠습니다.”

“우리 집은 대전 서구 둔산동 00 아파트~00동 00호입니다.”

전화기 너머 남자 선생님으로부터 주소를 듣고는 께름칙한 마음이 들었다.

‘뭐? 00 아파트? 지금 집으로 오라는 건가? 아니, 왜?’

불안해진 나는 다시 물었다.

“저…… 선생님. 댁으로 가야 하나요? 저는 시설로 답사를 하려고 한 건데요.”

“하하하! 학생, 오해했군요? 여기 장애인 복지시설 맞아요. 시설 주소가 둔산동 00 아파트예요.”

“아…… 네.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속으로는 갸우뚱했지만,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가보면 알겠지 하는 마음과 뭔가 이상하다는 의심이 공존했다.


토요일 오후, 약속한 시각에 맞춰 그 아파트로 찾아갔다. 대전에서 가장 중심가에 있는 00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여기에 과연 장애인 복지시설이 있을 것인가 하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불러준 곳을 찾아가 벨을 눌렀다. 곧 문이 열렸고, 한 장애인 언니가 나왔다. 그녀는 몸도 겨우 가누는 것 같은 기우뚱한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내게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와, 여기가 복지시설 맞는구나. 이런 곳도 있었네. 그냥 집 같은데?’


두리번거리며 들어선 그곳은 실제로 여느 집과 다름없었다. 거실 한쪽 벽에는 큰 소파가 있었다. 반대편에는 TV와 오디오가 있으며, 베란다에는 초록이 짙은 화분들이 빼곡하였다. 거실 너머 주방에는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한 보통의 가정집이었다. 단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음이 다를 뿐이었다.

나와 통화했던 선생님은 류머티즘으로 장애가 생겨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이셨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다고 소개해주신 분들은 성격 밝고 흥이 넘치는 다운 증후군 오빠, 뒤뚱뒤뚱 걷지만 말솜씨가 유창한 지체장애인 오빠, 몸도 불편하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도 힘든 중복장애의 장애인 언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준 그 언니는 뇌성마비(현 뇌병변 장애) 장애인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 잔뜩 해야 할 것 같은 나의 부담감은 반갑게 맞아주시는 그 미소 덕분에 사라졌다. 어느새 언니와 오빠들의 장애는 보이지 않게 됐고, 그저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시간 뇌병변 장애를 가진 언니가 만들어준 빨갛고 새콤달콤한 도라지 무침은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울 만큼, 맛있었다. 그 유쾌한 저녁은 어느새 30년 전인데도 바로 엊그제 저녁처럼 기억에 선명하다.     


1년여를 다양한 복지기관에서 봉사한 경험들로 인해 나는 복지시설에 관한 회의감이 있었다. 그동안 만났던, 다른 복지시설에서 일하던 사회복지사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고, 무표정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무표정이거나 슬퍼 보였다. 복지시설은 다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그’ 영아원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더더욱 사회복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달랐다. 여기 언니, 오빠들은 이곳을 집이라고 불렀다. 내가 보기에도 그냥 집이었다. 무엇을 먹을지, 청소는 누가 하고 설거지는 누가 할지도 모여서 정하고, 각자 하루의 일과가 있으며, 그 일과를 마친 저녁이면 밥상에 둘러앉아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소박한 저녁은 우리의 하루하루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제까지 경험해 온 복지시설들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고 다시 생각하게 했다.

설거지만 돕고 집으로 돌아와 방에 누운 나는 그날 하루를 회상해 보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새로운 세상에 한 발짝 디딘 그것처럼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온 것 같았다.


그곳은 ‘그룹홈’이었다. 그룹, 모여 사는…… 홈, 집…….

그렇다. 그곳은 집이었다. 시설이라기보다는 집이었다. 사는 사람들만 조금 다른……. 아니, 사는 사람들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다르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나는 그곳을 한 달에 한두 번씩 꾸준히 찾아갔다. 봉사활동 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였다. 그곳의 언니, 오빠들은 질풍노도 같았던 내 사춘기 시절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였고, 나는 그들의 귀여운 막냇동생이었다. 봉사활동이 아닌, 친한 언니, 오빠네 찾아가는 마실이었다.


후에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나서야 그때 내가 만난 ‘그룹홈’을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이라고 명명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꼬꼬마 중학생이었던 그때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좋은 장애인 복지시설은 그룹홈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내가 만난 많은 복지시설 중 장애인들이 ‘우리 집’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곳은 그룹홈뿐이었다. 더 넓고 깨끗한 시설도, 더 체계적인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곳도, 프로페셔널한 사회복지사나 직원들이 챙겨주고 영양사들이 짠 건강한 식단으로 일용할 양식이 결정되는 곳도 있지만, 그곳은 막상 그 안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홈(집)은 아니었다.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의 약한 부분을 보듬고 살아가는 언니 오빠들을 보면서, 나는 사회복지를 새롭게 보게 됐다. 그리고 그 경험은 지금까지 20년을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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