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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 Sep 27. 2022

인터뷰 - 김효선 사회복지사

씨앗의 시기를 함께 살아온 친구 / 하늘꽃 공동생활가정 운영자

 글을 쓰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한 자루의 연필이 어느 기억보다 선명하다 라는 명언을 만나고 기록으로 글로 남겨두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후, 나의 시선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를 지내온 타인의 시선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복지에 심 기워진 씨앗이었던 권송미를 기억하는 친구이자 동료 사회복지사의 인터뷰를 담습니다.


 질문 1.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이왕이면 권송미 또는 사랑누리와 어떤 관계인지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권송미 원장님과 20여 년간 함께한 친구이자 사회복지사 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료인 김효선입니다.

저는 장애인입니다. 뇌병변 장애로 조금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회복지학 공부를 마치고 도서관에서 계약직으로 사서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의 일이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조금 한가하게 일을 하고 있는 나와 달리 친구인 송미는 늘 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복지전공을 하여 복지사의 길을 가고 있는 송미의 모습이 대견하고 멋지고 부럽기도 하였었죠. 너무 많은 아이디어와 그것들을 해내는 모습에 응원을 보냈지만, 반대로 학업과 일에 치여 힘든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였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강한 의지와 최선을 다하는 친구의 모습을 통해, 나도 사회복지사로 일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이지 않던 20년 전이어서 쉽게 도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내게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냐? 너는 할 수 있어.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말 멋지게 해낼 거야"라던 송미의 응원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송미와 함께 사회복지 현장에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소개서도 함께 쓰고, 사회복지기관들의 정보도 알려주어서 저는 도전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더 사회복지사의 첫걸음을 기뻐하며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복지사의 길은 쉽지 않은 매일의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로 때로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사회복지사로서 서로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친구이지만, 우리는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훨씬 유명하고, 인권강사로, 시설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 부럽고 질투도 났었어요. 그런데 어느 신문에 송미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저에 대해서 이렇게 써놓았더라고요 -가장 의지가 되는 ‘사회복지사 친구’ 그날 그 인터뷰를 보고 마음속 부러움의 응어리 같은 게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눈에 쉽게 보이는 뇌병변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나의 전문성보다 장애를 먼저 보는 사람도 많은데,  나를 전문적인 사회복지사로서 인정하고, 또 친구로서 바라봐주었기 때문에 우리의 우정이 이렇게 길어질 수 었다고 다시금 생각합니다. 늘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자신감이 생기고 나도 내 친구 못지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나에게 힘을 줘서 고마운 친구 송미야 고마워. 지금까지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하늘꽃을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힘들 때마다 힘을 주고 시설 운영을 포기하고 싶을 때는 설립 초기에 가진 꿈과 비전을 다시 일깨워 포기할 수 없게 도움을 준 것도 모두 고마워."


인터뷰 이기 때문에 쑥스러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나를 소개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저는 친구이며 사회복지 동료이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동반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질문 2. 권송미는 어떤 사람인가요? 씨앗의 시기로 명명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시설의 설립하여 운영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었나요?


권송미는 어떤 사람인가? 질문을 받고,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저의 결론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송미는 오랜 시간을 벗으로 함께한 시간을 통해 본받을 만한 점이 많았어요. 아는 것이 많고, 적극적이고, 무엇보다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죠.

별명이 송미 위키예요. 우리 큰딸은 척척박사 이모라고 부르죠. 본인이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많은 책을 읽고 궁금하면 그 분야의 사람을 찾아 물어보고, 공부도 하고, 그래서 알아내야 하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성장해서 무엇을 물어보든 대답을 척척해내는 송미는 포털사이트의 초록색 검색창과 너무 많이 닮았어요. 물어보면 무엇이든 척척 술술 나오는 대답은 신기하기도 하고. 모르는 내용이라면 열심히 찾아내서 결국 알려주어요. 가끔은 그래서 안쓰럽죠. 어려움 중에도 도움의 요청에 한 번도 거절한 적 없는 친구여서 안쓰럽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물었어요.

“너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 안 힘들어?”

그때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대답하던 것을 잊을 수 없어요.

“나는 나 같아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내가 모르던 때, 묻고 싶었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던 적도 있었고, 물어볼 때 정말 친절히 알려주었던 사람의 고마움을 이제 다른 사람에게 잘 알려주는 것으로 갚는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사람의 답답한 그 마음이 예전의 나 같아서 지나칠 수 없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는 자기 자신을 '프로 오지라퍼'라고 하며 오지랖이 많아서 사서 고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해 노력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아팠던 것, 가난했던 것, 힘들었던 것, 억울했던 것, 그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고 그 마음을 잃지 않고 내 앞의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돕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친구가 되고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송미가 “장애가 특별함이 아닌 다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친구가 되었던 25년 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길을 걸을 때면 당연히 봉사자라고 생각하던 시기였어요. 사람들은  장애인을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시혜의 대상으로 생각했어요. 우리가 교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장애인 부서의 비장애인들은 스스로를 소개할 때, 모두 다 봉사하기 위해서 참석했다고 했었죠. 그런데 송미는 우리를 불쌍하게 보지 않았어요. 그냥 언니 오빠 그리고 나를 친구로 바라보았어요.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돕지 않았어요. 그러나 도움을 요청하면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결했어요.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의 태도까지.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제가 도움받을 때가 많지만 저는 그게 부담스럽지 않아요. 왜냐하면, 제도 이 친구를 도울 일이 있으면 편히 저에게 요청하고, 방법을 찾아봅니다. 우린 서로를 응원하거든요. 어느 한쪽이 불쌍히 여겨 돕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사랑누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인권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중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늘 말합니다. '보통의 삶'을 지원해야 한다고, '사람중심 실천'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희는 서로 친구 사이지만, 동료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의 보통의 삶을 지켜가는 사람입니다.


질문 3. 사랑누리는 어떤 곳인가요? 사랑누리는 타 복지시설과 어떤 점이 다릅니까?


사랑누리는 우선 소란합니다. 저는 그것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식구들과 그 이야기에 경청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선택지를 주고 설명하는 선생님들, 그래서 매일 소란합니다. 그 소란하고 잔칫집 같은 분위기에서 나는 사랑누리의 에너지를 느낍니다.     

하나 더하자면, 우리 집 같은 사랑누리라고 생각합니다. 원장님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태도를 보면 사랑누리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 식구들에게 관심과 배려심 많고 그분들 마음을 하나하나 잘 알아가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렇게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께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싶고, 그렇게 운영되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사랑누리는 이용자들에게 가족과 살던 집과 같은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곳입니다. 설거지가 아무리 많아도 식판을 사용하지 않고, 매일 6찬에 과일까지 담긴 푸짐한 식사를 마련하고,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잘 나타내지 못해도 그림도구, 영상 도구 등을 사용하여, 계속 묻고 상의해서 운영합니다.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나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되는 것이 많았어요.

사랑누리는 그래서 집과 같이 아무 때고 냉장고를 열 수 있고 근처 슈퍼에서 용돈을 사용해 본인이 원하는 것을 구입하고, 본인의 방을 좋아하는 가수의 포스터로 꾸밀 수 있는,  그게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사람도 있겠지만, 13년 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더 열악한 소규모 거주시설의 환경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같이 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랑누리의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나의 친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질문 4. 사랑누리가 앞으로 어떤 기관으로 발전되면 좋겠습니까?


발전 꼭 해야 하나요? 저는 지금처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곳,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공간, 사랑누리가 추구하는 우리 집 같은 곳으로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밥처럼 사랑누리 밥상은 맛있고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하고 노력하고 만약 꼭 발전을 해야 한다면, 이곳이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 집!!!! 너무 어려운가요? 엄마랑 살던 집보다 좋을 수 없다는 권송미 원장님의 말이 맞지만, 집만큼 좋아져서 진짜 우리 집이 되는 사랑누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조기 노화에 관한 이슈가 많은데, 사랑누리의 설립 후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20대 초반이던 식구들도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어가고, 곧 노화를 걱정하고 대비해야겠지요. 그래서 사랑누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운영에 반영하여, 앞으로 다가올 발달장애인의 조기 노화에 관한 고민을 운영에 잘 담아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발달장애인이 보통의 삶들처럼 즐겁고 힘들 때 힘들지만 외롭지는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질문 5.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또는 덕담


 기운 한 자락 남지 않을 때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면  송미는 꼭 오늘만 사는 사람 같은데, 이젠 건강 생각해서 일을 쉬엄쉬엄 하면 좋겠어요. 새로운 도전도 조금만 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아는 모든 이들이 같은 마음이겠지만 건강 잘 챙겼으면 좋겠어요. 내가 건강해야 상대방을 챙길 수 있는 능력과 활력소가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늘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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