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공동생활가정 설립 이야기
일어서다
앉았다가 서다
나서다 궐기하다
어떤 마음이 생기다.
내 나이 서른. 결혼하였다. 남편도 장애인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 같은 공간, 두 번째 우리 집'이라는 꿈을 함께 꿀 수 있었다. 결혼하고 잠시 쉬고 있었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에 소진도 있었고, 아직 경제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조금 더 준비되면 시작하려고 했었다. 대략 3년을 예상하였다.
결혼 후 내 편이 하나 생긴 것 같아 든든했다. 열심히 달려왔기에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꼭 배터리 방전된 핸드폰 같았다. 결혼 후 3개월 동안 노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다. 놀고 쉬었던 그 시간 덕분에 소진되었던 나를 추슬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5t 트럭이 내가 앉은 조수석을 향해 달려왔고, 중형 승용차가 폐차될 만큼 차가 부서지는 대형 사고가 났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 그대로였다. 갑작스레 큰 트럭이 유리창에 다가오고 유리창이 부서지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나는 살았다.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부상은 피할 수 없어서, 약 한 달간 입원을 했다. 단조로운 입원 생활 속에서 살아난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고 책을 보고 다시 생각과 명상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마음을 바꿨다. 3년 뒤가 아니라 당장 실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오고 나니, 3년이 가마득히 멀게 느껴졌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찌할까 두렵기도 하였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이 두 번째 우리 집 같은 복지시설 설립이라면, 우리 집에서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모았다. 동원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아보았다. 자동차 회사고 보상금. 차량 폐차 비용, 적금을 해약하고, 보험의 약관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집을 월세로 세입자를 얻으면 얻을 수 있는 매월의 수입도 계산하였다.
장애인 복지시설 중 가장 작은 크기인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을 설립하려 하여도, 자가로 30평대 아파트를 구매해야 하는데, 설립에 사용될만한 재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부탁하였지만, 그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뿐이었다.
"저기, 아직도 마땅한 집이 안 나왔나요? 지역은 크게 상관없는데 …"
"송미 씨. 내가 미루는 것 같아 답답했죠? 그런데, 이 돈은 현실성이 없는 금액이에요. 30평대 아파트를 구하기엔 너무 모자라요. 그리고 장애인 복지시설을 만들어서 무얼 하려고 해요? 둘이서 열심히 벌어서 먹고살기에도 바쁠 텐데…… "
그제야 그가 왜 이날이니 저 날이니 하며 약속을 계속 미뤘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좌절하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 뒤에 후회해도 늦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발품을 팔고, 인터넷과 마을신문에 나온 매물도 다 찾아보았다. 30년 정도 된 아파트 중 30평 형태를 기준으로 잡고 우리가 가진 재정에 맞추어 집을 구하러 다녔다. 드디어 겨우 닿을 듯 말 듯 한 금액의 아파트를 찾아내었다. 급매물이고, 1층이어서 주변시세보다 저렴했다. 그래도 돈이 모자랐다. 최대치로 은행 융자를 받고, 할 수 있는 돈을 다 모아서 집 매입 계약했다. 은행 대출이 나오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시간이었다.
이사를 했다. 도배도 장판도 못 했다. 장판은 걸레질해서 쓰면 되는데 도배지는 아무래도 전에 살던 사람들의 가구가 있던 자리가 너무 티가 나서 그 세월의 흔적을 실내용 페인트로 칠해보기로 했다. 벽지 위에 상아색 친환경 페인트를 사다가 발랐다. 처음 해보는 페인트칠이어서 얼룩덜룩했다. 작업복으로 입은 낡은 셔츠에 페인트가 잔뜩 묻어있는 채로, 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 짜장면을 먹었다. 힘들었다. 너무 무모한듯하였다. 싱크대를 뜯어서 문짝을 닦아내고 녹이 슨 경칩만 바꿔서 다시 달았다. 저녁이 되자 몸이 너무 아파졌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몸살이 나려 했나 보다. 순간 눈물이 후드득 났다. 무서웠다. 통장에 이제 25만 원이 남았다. 함께 살게 될 장애인 식구들이 쓸 옷장도 사야 하고, 여러 일 처리를 해야 하는데 25만 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아직 개원도 하지 않았으니 후원금도 없이 시설 설치 인허가가 완료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막막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짐 정리도 못 한 채 한쪽 구석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까무룩 잠이들었나 보다. 아침이 되었다. 눈이 떠져야 하는데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다. 모든 게 꿈인 듯하다. 몸살 기운이 난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다. 그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남편의 목소리다. 아침부터 어딜 다녀오는가 하며 투덜이며 문을 열었다. 그의 손엔 따뜻한 커피 한잔 그리고 크림치즈가 잔뜩 들어있는 고소하고 따뜻한 베이글이 들려 있었다. 먹고 힘내자며 웃는 그의 얼굴을 보니 도망치고 싶었던 아니 후회하였던 잠시 잠깐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야.' 속으로 외쳤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나오는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두 번째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가끔 어제가 후회돼도 나 지금 사는 오늘이 내일 보면 어제가 되는 하루일 테니 힘 이들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눈물 나게 아픈 날엔 크게 한번 소리를 질러봐 내게 오려던 연약한 슬픔이 또 달아날 수 있게
- 서영은곡 ‘혼자가 아닌 나’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