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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 Oct 01. 2022

6.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서①

긴급한 피난과 보호가 필요했던 순간

보호(保護)

- 위험이나 곤란 등이 미치지 않도록 잘 지키고 보살핌

- 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함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보는 중에 순간 멈칫하였다. 경찰과 관련된 드라마였는데, 회차별 여러 에피소드 중 이번 이야기 배경이 되는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드라마 소재가 된 것이 한편으로 슬프고 한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랑누리 공동생활가정을 설립하고 3년째 되던 해였다. 설립 후 3년간 겪었던 어려움이야말로 글로 하자면 백과사전 분량이 될 터이고, 그래도 시설 운영이 안정화되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성과도 있었다. 커피와 제과제빵을 사랑누리의 발달장애인에게 배울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도 기획하여 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운영하였다. 미래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카페를 차려볼까 하는 희망도 가져본 시기였다.


“송미야. 좀 도와줄 수 있니?”

아침부터 울린 전화기 소리에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다급하였다. 학생으로 봉사 활동하던 그때부터 오래 알고 지낸 장애인 언니였다. 그 언니는 여성 장애인을 위한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언니의 목소리는 급박하고 간절했다.

“내 친구를 도와줄 수 있니? 언니의 친구가 갈 곳이 없어. 혹시 너 최연희 아니?”

이름을 듣자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나도 한두 번 만나 적이 있었다. 친하지는 않아도 얼굴 보고 인사는 하는 정도의 아는 사이.

“네. 몇 년 전에 결혼하고 어디 콜센터에서 일하는 그 언니 맞죠? 전동휠체어 타고 다니는. 얼마 전에 마트에서 아이와 함께 전동휠체어 타고 가는 것 봤는데, 그 언니 아들인가요?”

“응 맞아. 몇 해 전 결혼해서 아들이 하나 있어. 그런데 지금 갈 곳이 없어. 잠시 머무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겠니?”

“무슨 일 있어요?”

머뭇머뭇하던 언니는 사정을 알아야 더 돕겠다 싶었는지 나에게 최연희 씨의 사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걔가 남편한테 많이 맞았어. 그동안은 아들 생각해서 참았는데, 이번엔 아들도 손찌검했나 봐. 도저히 못살겠다고 나오겠다고 하는데 당장 오 갈 곳이 없나 봐. 가정폭력 피해 여성 쉼터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어서 휠체어 진입 자체가 안되고 다른 장애인 시설을 알아봤는데, 아이랑 함께는 안된다고 하더라고 장애인시설에서 계속 살겠다고 하는 것 아니고 곧 방을 얻어 나갈 생각인데도 모두 안된다고 하니 속상해. 아들이랑 함께는 아무래도 어려운가 봐.”

“어머나… 그 언니 많이 힘들겠네요. 제가 상의하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사정이 급한 최연희 씨와 그녀의 아들을 돕고 싶은데,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다 보니, 지체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도 휠체어 진입도 가능하고 화장실에 안전바도 있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괜찮은 것 같아 보였다. 그것보다도 아들도 함께 생활해야 한다고 하는데 … 우리 집의 방 한 칸은 너무 좁지 않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최연희 씨와 통화하였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는 당장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보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남편의 폭력은 오래 지속되었고, 술 마시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친정으로 잠시 피신하려 하여도, 반대하는 결혼을 하였고, 그간 왕래가 많지 않아서 친정이 도움 되지 않았다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이 아빠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릴까 걱정된다고 하였다. 이혼하고 싶다고 했다. 법적인 정리가 끝날 때까지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안전했으면 좋겠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눈물이 가득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답답함이 몰려왔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았다. 방 한 칸 나눔하여 함께 살기로 했다. 그렇게 공동생활가정의 방 한 칸에서 두 모자는 3개월을 살았다. 좁고 불편했을 것이다. 아이가 많이 놀랐는지 많이 보채고 울었다. 아이의 울음에 엄마의 울음이 한 번씩 묻어 들려와도 나는 못 본 척하였다. 그녀의 아픔에 내가 허락 없이 다가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그녀가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순간이 온다면 함께 울어야지 마음먹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저녁 차 한잔을 두고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고마워요." 자그마한 목소리에는 그녀가 용기를 담아 건네는 진심이 느껴졌다.

"제가 무얼 했다고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저는 남편의 폭력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래도 술 깨면 세상 다정한 사람이어서 참고 살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맞으니깐 현실이 보이더라고요. 이러다가 우리 아들도 저 사람처럼 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드니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네. 많이 힘들었는데, 이제 끝이 보이네요. 저 곧 이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 아빠가 이혼에 동의해 주겠다고 오늘 연락 왔어요. 그래서 오늘은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최연희 씨의 이혼은 잘 마무리되었다. 6살 아들은 엄마를 떨어지려 하지 않는 심한 불리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잘 웃지도 않았다. 차츰차츰 변해갔다. 까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과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그녀를 보는 것은 내게 큰 보람이 되었다.


그러나 구청의 담당 주무관님은 걱정을 담아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길고 자세하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간의 변화와 곧 방을 얻어 이주할 계획임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도 주무관님은 걱정했다.


“좋은 의도인 것은 알겠는데, 주의하셔야 해요. 그곳은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입니다. 긴급 쉼터가 아니에요. 그리고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설립목적은 장애인이 자립을 준비하기 위해서 훈련하는 곳인데, 아이까지 데리고 있는다는 것은 몹시 우려되네요.” 말끝에 묻어나는 한숨을 통해, 어떤 뜻인지 대략 짐작되었다. 책망하는 의도는 아니었다. 복지시설이기 때문에,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그 말이 맞았다. 속상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곧 집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최연희 씨 모자만 생각하기로 했다.


거의 보름을 집을 보러 다녔던 것 같다. 전동휠체어의 진입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좋겠고, 한참 뛰어놀 남자아이가 있으니 1층이면 더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주변에서 십시일반 모은 적은 금액의 보증금에 맞추어 집을 구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래도 차로 십 분 거리 용문동에 휠체어로도 진입 가능한 깔끔한 원룸을 찾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잘 사용하지 않는 가구 몇 가지를 얻었다. 교회에서 세탁기도 구매해 주셨다. 우리 부부는 전자레인지와 밥솥을 준비했다. 작지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사랑누리에서 함께 살았던 식구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말에, 집들이를 열었다. 좁은 원룸은 우리 식구들만으로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도 그날 시켜 먹은 짜장면은 지금껏 먹은 어느 짜장면보다 더 달고 맛났다. 두 모자가 행복하게 사는 날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자고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이야기하며 그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영정사진으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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