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고약하고 끈질 긴 바이러스이다. 한숨 돌릴 만할라치면 또다시 역습을 거듭하는 코로나19의 변이는 이제‘오미크론’이라는 이름으로 공세를 시작했다. 이러다가 전 국민이 코로나19 변이에 붙여지는 그리스 알파벳을 다 암기하게 생겼다.
최근 세계에서 힘깨나 쓴다는 강대국 클럽인 주요 7개국 통칭, G7의 보건장관들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전파력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긴급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관련 보도를 보며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는 것이다. 이들이 긴급하게 실행해야 될 일은 선진국과 빈곤국간의 백신 불균형 해소에 실천적 행동을 보이는 일이다. 그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오미크론’의 출현은 느닷없는 악재가 아닌 인재에 가깝다. 예고된 위기라는 의학계의 지적이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빈곤국들의 백신 대란은 이른바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의 백신 이기주의의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전 인류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시기에 변이 바이러스가 나올 가능성은 점차적으로 높아지는데 선진국들은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국의 백신 독점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비윤리적 행태에 대해 WHO 대사로 활동 중인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마저도“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이 백신의 89%를 독점했고, 향후 인도될 백신의 71%마저도 그들에게 가기로 예정돼 있다”라고 비판했으니 그 탐욕적 상황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진실, 백신의 양극화는 더 많은 변종의 출현을 야기한다. 의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논리에 반박할 논거가 딱히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를 위시한 제3 세계 빈곤국들의 낮은 접종률을 현재처럼 방치한다면 어렵사리 만들어진 현재의 백신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고 선진국들이 그들의 곳간에 비축해둔 기존의 백신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 자명하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우매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오미크론’이 최초 보고된 아프리카 납부 국가들과 전 세계 80여 개 국가들은 전 세계의 백신 접종률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선진국들은 자국민 부스터 샷 우선주의는 백신 이기주의로 귀결되었고 인류공동체의 공생이라는 대의명분에 위해를 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참담한 일이지만 선진국의 일일 백신 부스터 샷 공급량은 빈곤국의 백신 공급량의 6배에 달한다는 믿기 힘든 세계보건기구의 통계는 탐욕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오미크론’은 그래서 필연적 변이이다.
따지고 보면 선진국들의 이 같은 행태는 낯설지 않다. 전 인류가 갈망하던 코로나19의 백신 첫 출하의 시기에도 미국을 위시한 유럽연합이 보여준 정치적인 태도와 판단은 그들이 그간 주장해 왔던 지구 공동체의 숭고한 가치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암울한 카르텔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옆집의 화재를 힘 모아 함께 진화하지 않고서야 내 집으로 불이 옮겨붙는 것을 어찌 막을 것인가.
현재와 같은 백신 공급의 불균형을 제어하지 않는다면‘오미크론’은 이제 델타 변이를 넘어 창궐에 가까워질 것이다. ‘오미크론’은 변이 확인 후 3일 만에 5개 대륙, 17개 국가에서 감염이 확인되는 등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오미크론’변이 출현에 부쳐 미국과 유럽이 가져야 할 바른 태도는 백신 불평등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또다시 미봉책으로 그치고 말 이동 제한과 국경 봉쇄가 아닌 변이를 통제할 수 있도록 빈곤국에 도움을 주겠다는 실천적 약속이어야 한다.
‘오미크론’의 출현은 왜 세계가 백신과 기타 공중 보건 도구에서 공평한 접근을 보장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백신 불평등은 거칠고 모진 팬데믹을 더 연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