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 그랬다. 잔치를 앞두고는 온갖 기대로 설레는 법이다. 민주주의의 잔치, 큰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위드 코로나(With Corona)’와 관련해 무성한 말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도, 의사로서도 ‘위드 코로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곤혹스럽다. 차라리 희망고문에 가깝다. 오매불망 그리던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집단적 긴장을 늦추기엔 이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위드 코로나’는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에서 백신 접종을 늘려 위중증 환자 관리로의 방역 전환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바이러스와 ‘함께 살자’는 개념이다. 감기처럼 일상적 질병으로 여기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OECD 국가 내 상위 비율에 위치한 자영업의 붕괴와 서민경제 침체에 따른 출구 전략이다. 조심은 하되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위드 코로나’를 반기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는가.
지난 8월 들어 영국을 필두로 싱가포르·프랑스·독일·덴마크 등 주요 국가에서 위드 코로나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봉쇄조치 전면 해제를 발표한 영국은 마스크 착용 의무마저 해제하는 등 방역 관련 규제를 놀라울 만큼 과감하게 완화했다. 덴마크 정부도 봉쇄와 제한 조치를 모두 해제했다. 꿈 같은 현실인지라 이래도 되나 싶다. 하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시기상조다. 이들 나라에서 확진자는 여전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고령층 90% 이상, 성인 80% 이상이 백신 접종을 완료하면 방역 전략을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인구의 70%가 접종을 완료하는 시점은 10월로, 접종이 순조롭게 이어진다면 10월 말에는 전환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국회에서는 위드 코로나 관련 특위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건복지부의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 결과, 위드 코로나 전환에 동의하는 국민이 73.3% 달한다니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국회가 응할 수밖에….
급작스럽고 당혹스러운 태세 전환 언론 보도에 걱정하는 이들도 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의 현 규제를 일시에 철폐하지 않고 단계적 일상 회복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용어도 위드 코로나 대신 ‘단계적 일상 회복’ 사용을 권고했다. 예방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현실임을 견줘 볼 때 당연한 방향이다.
위드 코로나는 필연적으로 시민들의 방역적 긴장감을 완화할 수 있다. 사실 단계적 일상 회복은 위드 코로나로의 접근 방법을 구체화한 개념이다. 진중하면서도 변화무쌍한 변이 바이러스를 대하는 인류의 바른 태도다. 쾌도난마로 코로나 이전 생활로 되돌리는 방역조치는 신출귀몰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볼 때, 현재로서 지난한 일이다.
위드 코로나는 지속 가능성, 국민의 수용성, 불편의 최소성, 통제 가능성을 기준으로 코로나19를 관리하는 것이다. 방역 포기나 해제가 아닌 일상 친화적 방역 방식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선거가 가까워져 오니 위드 코로나라는 말이 차고 넘쳐난다. 그에 따른 시민의 기대와 오해도 커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일이다.
위드 코로나의 전제 조건은 병상 확보 등 의료체계 역량 확보와 역학 대응 능력의 강화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선제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방역 완화로 인한 확진자가 급증하더라도, 이러한 역량을 채비한다면 지금과 같은 고강도의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도 대응할 수 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허무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위한 인간 심리의 해부도다. 고도가 누구인지 작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 글을 오늘에 와서 다시 읽는다면 고도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불확실한 위드 코로나에 대한 희망으로 마냥 고도를 기다리던 작품 속 주인공 블라디미르도, 기다림에 지쳐 제자리를 맴돌았던 에스트라공이 아니어야 한다. 위드 백신, 위드 마크스를 채비하는 일이 먼저다. 그래야 기다리던 고도는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