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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pr 13. 2023

41.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

얼음에서 깨어나지 않는 비싼 식물을 기다리는 마음

집에서 180일(반 년) 이상 살아남은 식물의 돌봄에 대해 기록합니다.

기본정보

학명 / 소속 - 천남성과 / Anthurium clarinervium

유통명(키워드) -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

자생지 - 중남미 고산지대

관리/돌봄 방법

난이도 - 약간 어려움(굵고 연약한 뿌리가 과습에 취약함), 안스리움 중에서는 실습(40-60%의 일반 가정습도)에서도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집 실습에서는 얼음이었다.

빛 - 반음지 (몬스테라보다는 빛을 덜 줘도 되고 칼라데아류보다는 빛을 좋아하는 듯)

물주기 - 서스티의 색상 변화에 의존

흙배합 - 상토 25 : 배수용 알갱이(펄라이트 산야초) 25 : 오키아타 바크 50

습도 - 높음 (70% 이상)

온도 - 18~26도 (열대식물이지만 고산종이라 고온 노출에 취약)

최저온도 - 15도

성장속도 - 느림

구매 정보

구매처 - 식충식물 해마루농원 (온라인 구매)

구매년월 - 2022년 10월

가격 - 99,000원(화분 별도)

분갈이 - 구매 후 직접 / 이후 2회 (1월, 4월)

2022년 10월 / 2023년 4월

이 식물은 내가 산 식물 중 가격이 가장 비싸다. 사실 살 때 가장 비싸게 주고 산 식물은 벵갈고무나무였지만, 일단 “벵갈이”는 처음부터 누구나 납득 가능할 정도의 대형 사이즈 완제품이었다.(모종이 아닌 화분 및 데코용 식재 포함) 화분 속 식물은 시간과 비용, 돌봄을 들여야 커지기 때문에 큰 식물을 비싸게 주고 사는 건 보통 사람에게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식물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이 그뿐만이 아니라면?


식물에 입문하고 몇 가지를 수집하다보니 정말 식물 가격은… 일종의 코인과 같았다. 특정 종 식물의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올라가고, 시장에서 수가 적다고 “희귀식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비싼 가격 자체가 식물 매니아 커뮤니티 내 아우라를 만들어 또 수요가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누구보다 번식에 열심이기에… 좁은 매니아 커뮤니티 내 대부분이 하나씩 가지게 되고 농장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지면 가격이 폭락하기도 한다. 몬스테라 알보가 그 과정을 거쳤고 작년 후반기 정도부터는 안스리움들이 그러는 중이다.


수집품이 환금성을 가지게 되면 조금 안심하고 살 순 있겠지만, 무리한 가격에 식물을 사게 되면 식물보다는 원금 환수 및 이익에 신경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나 좋자고 하는 취미가 고통이 된다. 그리고 200만원짜리 식물을 샀는데 죽이기라도 하면?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다. 식물은 왕따시만해졌는데 거래가가 2만원으로 떡락한다면 그 식물을 사랑하면서 돌볼 수 있을까? 식물은 물건이 아닌 돌봄이 필요한 생명이기에 이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내게는 기꺼이 집 안에 들인 식물들을 순수하게 좋아하고 사랑하기 위한 심리적인 가격 상한선이 있었고, 그게 2만 5천~3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안스리움 가격도 떨어지고 있지만(가격의 하향세는 아직 진행중이다) 이 당시에는 그 가격이 내가 정한 상한선보다는 높았다. 심지어 안스리움들은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이 잎은 다크하고… 베인(잎맥)이 어떻고… 폼이 어떻고…” 이러면서 진품명품 감정 같은 걸 하고 있다. 오타쿠판이 끝물로 가면 생기는 지루한 현상이다.

안스리움 만화. 출처 https://twitter.com/tjwjddl75/status/1526128640940945410?s=46&t=yVO2R1-gY0N5gF4xd3F2wQ

그래서 이 중 정비율의 하트모양을 가진 클라리네비움이 마음에 들어왔을 때도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가격이 만든 아우라에 결국 이끌려버린 것 아닐까? 비싼 돈 주고 사서 결국 죽이면 어떡하지? 같은 것이었다. 당시 시세는 12센티 모종에 든 성묘가 15만원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한 온라인몰에 특가로 이 식물이 올라온 것이다. 이정도 크기면 죽이지 않겠지? 하는 큼지막한 것으로. 안스리움들은 그래도 가격이 비싸다보니 화원에서 파는 일반 모종 정도의 세나 크기를 아득히 벗어난 유치원생… 어린이… 아기 수준의 유묘를 파는 경우가 잦다. 안스리움 원종 및 교배종들은 식물 매니아들이 주로 구입하는 품종이다보니 미래에 대한 희망과 키우기 스킬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나머지 이것을 대품까지 키우고 말리라…! 하면서 3-5만원 정도에 말그대로 새싹 수준의 개체들을 사고 판다. 그런데 나는 가성비충이라 그 가격에 죽을 확률이 높은 개체를 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유혹을 이기지못하고 최근에 안스리움 새싹 풀떼기를 하나 사버린 자… 살아남으면 6개월 뒤에 브런치에서 뵙겠습니다.

그래서 천년의 고뇌 끝에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 대묘를 9만 9천원에 사고 말았다. 식물마켓에서 주로 팔리는 매니아향 식물들의 가격 범위에서 10만원은 비싸다고 할 수 없지만, 각자가 돈에 대해 가지는 감각은 다르니까. 아마 이정도면 가격이 만원으로 떨어져도 억울함이 온몸을 지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지노선이었던 것 같다.

아아, 천년의 고뇌 끝에 산 9만 9천원짜리 식물은 카와이하고도….(오덕체로 말해보았다)


안스리움 중에서 가장 흔한 원예용 개량종을 제외하면 클라리네비움은 가장 흔하고 튼튼한 종으로 꼽힌다. 그래서 “국민 안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비싼 식물 리그 내에서의 일이고… 아무튼 우리집에서는 제일 비쌌다. 그래서 일단 안스리움이 좋아한다는 정글의 물 좍좍빠진다는 흙배합으로 분갈이를 한 다음 온실 구석에 박아버렸다. 이것이 내가 VIP를 대하는 방식이닷!

슬프게도 열대관엽은 귀한 식물일수록 구석탱이에 박아야 생존에 유리해진다

하지만 습도와 약한 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온실 구석이 마음에 들었는지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왕큰잎을 뽑아주었다. 성장이 느리고 뿌리가 잘 녹아서 골치를 썩는다는 클라리네비움은 누구네집 얘긴가 싶을 정도였다.

새 잎이 날 땐 갈색으로 나서 다 자라면 초록색으로 굳는다. 오른쪽 사진이 약 90%정도 굳은 상태이다.

그러나 그 잎 한 장을 낸 뒤 한겨울이 되자 아무것도 환경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성장이 멈춰버렸다. 식물 덕후 세상에서는 이걸 얼음이라고 하더라만. 식물이 겨울에 성장이 멈추는 건 흔한 일이지만, 잎장이 몇 개 되지 않는 비싼 식물이라면 자연스레 조바심이 나게 된다. 오래된 잎은 언젠가는 하엽이 지고, 새 잎이 나지 않으면 언젠가 광합성을 하지 못해 죽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이파리는 세 개였고 게임이라면 목숨이 세 개였다.


그래도 물을 계속 소비하고 있었고 딱히 새 잎이 나지 않는 이외 이상징후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마냥 기다렸다. 사실 9,900원짜리 식물이라면 겨울이라 그러려니, 저러다 괜찮아지면 새순이 나려니 했을텐데 당연히 그런 마음은 못 되었다. 실습이지만 좀 더 양지바른 베란다에서도 한 달을 보내고(곰팡이의 습격 때문에 같은 칸에 있던 식물을 온실에서 다 빼야 했다) 식목일이 지나고도 새 잎이 나지 않는 데다 세 잎 중 하나가 하엽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남은 인내심이 모두 바닥난 나는 화분을 엎었다. 혹시라도 연약한 뿌리가 녹거나 상한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노래지면 잎이 수명을 다한 것이라고 대충 추측을 해볼 뿐이다.

화분을 엎어보니, 예상외로 뿌리가 너무 실했다. 뭐냐 넌?

어우 우리집 식물답게 뿌친놈이었다.

마침 들어온지 몇 달 되지 않은 안스리움 포게티가 너무 폭발적으로 커서 레르베리 제일 밑칸을 뚫고 나갈 기세였고, 이상기후로 베란다도 너무 더웠기에 더위에 취약한 친구들을 위한 피서공간을 거실에 만들어줘야 했다. 그래서 과도하게 실한 뿌리를 위해 화분 사이즈를 키워주고 거실내에 만든 새 온실에 넣어줬더니, 며칠 되지 않아 새 잎을 뽑기 시작했다. 야, 너 안 죽는구나!

가운데 나고 있는 조그만 새 잎…!

요즘은 클라리네비움 유묘도 값이 내려가서 만원대니까 죽으면 유묘라도 사서 키워야지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비싸게 산 품종의 가격이 떨어지면, 싸진 식물을 하나 더 사서 평단가를 떨어뜨리면 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뭐 어때.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은 고작 돈 십만원으로 인간의 간사함을 체험하게 해 주었다. 그래도 영상이나 식물마켓에 가면 있는 유묘보다, 어느정도 큰 사이즈의 실물(이라고 해도 흔한 식물이면 만원짜리 모종 사이즈지만)이 훨씬 귀엽긴 하다. 빵떡한 정하트 모양과 가죽 느낌의 잎 질감이 주는 매력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건, 아마 가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 원예용으로 개량된 안스리움과 요즘 희귀식물로 유통되는 안스리움은 같은 속의 식물이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꽃을 좋아했기에 꽃받침잎을 유전적으로 개량해 예쁘게 보이게 만든 것이 안시리움이라고도 불리는 흔한 원예용 안스리움이다. 현재는 원종 쪽이 잎을 관상하는 희귀식물로 더 높은 값을 쳐주게 된 점이 재미있다.

원예종으로 개량된 꽃 관상용 안스리움. 저 빨간 꽃잎른 가라(…)이기 때문에 관엽 원종 안스리움들은 꽃이 저 몽뎅이(…)만 남은 상태로 핀다.

+) 안스리움 비싸고 못-생긴걸 왜사! 했던 나의 마음을 바꾼 것은 의외로 식물마켓에서 만났던,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좋아서 핸드폰 케이스에 붙였고 식물도 같이 스며들 수 있었다. 이런 그림을 그리게 할 수 있는 식물이라면.

https://naver.me/F5F1gMPw


안스리움 클라리네비움은 결국 올 여름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미라가 되어 가버렸다. 다음에는 좀 작은 친구를 저렴하게 들여서 잘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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