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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pr 07. 2023

누가 식물지지대를 욕망봉이라고 했던가

비싸거나 귀찮거나

관엽식물을 기르다 보면 꼭 덩굴로 나무를 잡고 위로 올라가는 아해들을 만나게 된다.(필로덴드론은 이름 자체가 ‘나무를 사랑하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나무가 있지만 우리집 베란다에는 없으므로 인공물로 만들어주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 인공물은 진짜 못생겼고, 집안을 상당히 지저분하게 만든다. 분명히 플랜테리어로 시작했건만 집의 못생김을 1 추가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이런 덩굴식물들은 빨리 자라는 것으로도 유명하여 계속 더 길게 늘려주거나 긴 것으로 바꿔줘야 한다. 게으름뱅이에겐 최악이지만 다들 이런 식물에 한번씩 꽂힐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몇 개의… 아니 열 몇개의 긴 막대기를 세워 베란다를 신나게 흉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직접 만들어서… 이 글에서는 우리집 덩굴식물들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인공 흉물(?)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최초의 탈락자 - 코코봉

원예자재를 파는 곳들에서는 나같은 게으름뱅이들을 위해 대부분 연결해서 쓸 수 있는 코코봉이라는 것을 팔고 있다. 하지만 40cm에 5-6000원이라는 가격은…(무려 10cm당 천원이 넘는다) 빨리 자라는 식물을 너무 많이 기르는 사람이 소모품으로 쓰기에 너무 비쌌다.

대부분 이렇게 생겼다. 튼튼하면서 길이를 연장하기 편해 편리한 점도 있다.

한편 싼 플라스틱봉 말고 두툼한 코코넛 섬유가 둘러진 굵고 긴 지지대를 쓰는 이유는 몬스테라와 필로덴드론 류의 공중뿌리가 딱 들러붙다못해 그들이 자연에서 큰 나무에 그렇게 하듯이 파고들어서 활착하라는 뜻인데, 사용 후기 사진들을 보면 이 면에서 딱히 플라스틱봉보다 나아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몬스테라나 필로덴드론류가 한두개라면 써볼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초록색 철사봉이나 플라스틱봉보다 덜 못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5만원을 들여 코코봉 10개를 사도 식물 세 개도 커버 못 한다는 사실.


지금껏 만들어본 수제 지지대를 소개합니다

빨대 지지대

몬스테라 카스테니안 바리에가타와 빨대봉

시기 : 유묘

무게 : 가벼움

비용 : 없음

줄기지지 : 아주 작은 식물만 가능

공중뿌리활착 : 0/10

당근마켓이나 식물마켓에서 저렴한 가격에 혹해 아주 작은 덩굴식물을 데려올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한 음료 빨대가 딱이다. 종이 빨대는 안 되십니다 고갱님. 다행히(?) 나는 커피를 마시면 설사를 하는 체질이라 카페에 가면 십중팔구 굵은 플라스틱 빨대가 굳이 필요한 음료를 마셔야 한다. 가장 작은 식물의 지지대로는 딱이다.


다이소 초록색 식물지주대

오리발시계초와 다이소 초록색 지주대 (위쪽은 치간칫솔 뚜껑들을 이용하여 연장해주었다)

시기 : 소품

무게 : 가벼움

비용 : 1,000원에 3-5개

줄기지지 : 몬스테라가 아니라면 80cm정도까지는 안정적으로 가능

공중뿌리 활착 : 0/10

다이소 원예코너에서는 긴 철사나 플라스틱 지지대 몇 개를 담아 천원이라는 괜찮은 가격에 팔고 있다. 다만 빨리 크는 원예용 관엽식물을 지지하기엔 좀 가늘고 긴 형태라 길이가 길어질 수록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초록색이 너무 인공 페인트 색상이라 지주대 자체를 못생기게 보이게 해 맘에 들지 않는다.


마끈봉(쥬트봉) - 최초의 DIY

필로덴드론 핑크프린세스와 마끈봉

시기 : 소품, 중품

무게 : 가벼움

비용 : 3,000원 (+마끈 2,000원)

줄기지지 : 강도는 크게 좋아지지 않으나 줄기가 닿는 면적이 늘어나 기본지주대보다 약간 잘 하게 된다.

공중뿌리 활착 : 1/10 (파고들어가진 못하지만 살짝 붙긴 한다)

가장 얇은 철사지지대 두 개를 손에 쥐고 화분 흙에 들어갈 부분을 제외한 지점부터 마끈을 열심히 갔다왔다갔다 세 번 무념무상으로 말고 있으면 완성된다. 시작할 땐 마스킹테이프로 붙이고 끝날 때는 본드로 붙이면 깔끔하다. 못생긴 인공 초록색을 가려준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마대봉 - 왕 커져버린 식물을 위한 솔루션

필로덴드론 베멜하와 마대봉

시기 : 중품, 대품

무게 : 무거움

비용 : 플라스틱봉 16mm 1미터당 2,000원가량 + 녹화마대(12,000원) + 케이블타이 1,000원 (+연결피스 2,600원은 옵션)

줄기지지 : 확실함

공중뿌리 활착 : 4/10 (마끈봉보다 조금 낫지만 여전히 활착한다기보다는 꼭 붙잡는 정도 느낌)

식물의 키가 70-80cm가 될 때까지는 그럭저럭 가성비 좋다며 만족하면서 썼던 마끈봉에 한계가 찾아왔다. 가느다란 지지대는 힘이 없다보니 1미터가 넘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아니 서큘레이터 바람만 불어도 흔들흔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큰 식물을 위한 두툼한 지지대를 찾기 시작했다.


DIY 식물지지대

데팡스에 연결피스로 연결도 가능한 지지대를 팔고 있어서 뼈대로 사용하고, 식물이 공중뿌리로 파고들거나 껴안을 법하게끔 녹화마대를 한 롤 사서 대충 헐렁하게 몇 겹 칭칭 감은 뒤 중간중간을 케이블타이로 묶어주면 끝이다. 마끈봉보다 좀 간단한데 대신 녹화마대 자체가 먼지 및 잔해가 많아 청소하는 노동 합하면 그게 그거긴 하다.


현재는 필로덴드론 멜라노크리섬과 베멜하가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각 지지대는 90,120,150cm 세 가지 길이이며 직선 혹은 직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연결피스를 팔고 있다. 직선 연결피스를 사용하면, 책상 위에서는 150cm를 최대로, 레르베리 선반 위에서는 90cm를 최대로, 낮은 선반이나 바닥에서는 180-190cm를 최대로 할 수 있다. 무겁지만 1미터가 넘어갈 때는 단연 안정성을 자랑한다. 다만 화분도 토분으로 한다던지… 해서 무게를 맞춰야 화분이 엎어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나무판 - 몬스테라 두비아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몬스테라 두비아와 나무판(두 개가 겹쳐져 있다)

시기 : 식물 평생

무게 : 크기에 비례 (왕 커지면 왕 무겁다)

비용 : 작은 나무 지지대 2,000원 + 직접 재단한 큰 지지대(12x150cm 미송목) 14,000원 + 바니쉬 2,000원 + 붓 1,000원

줄기지지 : 확실함

공중뿌리활착 : 10/10

어느날 주말 나들이를 빙자한 식덕질로, 세종수목원의 온실을 지나치다가 흰색 벽을 타고 올라가는 귀여운 식물을 발견했다. 몬스테라 두비아라는 식물이래!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고 작은 두비아를 인터넷 주문하고 벽이나 나무에 활착하는 애라고 하길래지지할 작은 나무판도 주문해 두었다. 공중뿌리가 아니라 덩굴 역할을 하는 흡착판이 있고 그게 나무판에 활착을 못하면 아예 위로 자라길 거부하는 녀석이란다.

세종수목원 온실의 벽 오른쪽을 타고올라가는 몬스테라 두비아.

그러나 이 친구는 집사와 상의도 없이 아주그냥 마구 자라댔다. 어느새 작은 지지대 두 개를 케이블타이로 연결해 80cm를 바라보게 되었을쯤 생각했다. 아예 당분간 오래 쓸 수 있는 큰 나무지지대를 달아주기로 말이다. 나무판은 이어 붙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


식물용 나무 지지대를 검색해보니 소모품치곤 가격이 꽤 있었다. 나무 합판이라는 것은 축축한 땅에 오래 묻어두면 언젠가 썩게 되니 제일 관리도 난감한 소모품이다. 결국 인테리어나 목공용으로 합판을 재단해주는 곳을 찾아서 맞춤 주문을 해서 배송을 받았다. 목재 가구의 마감으로 바르는 바니쉬로 코팅을 해주면 방부목 화학약품만큼은 아니라도 실내에서라면 조금은 썩는 걸 지연해줄 것 같았다.

큰 붓으로 촥촥~

다이소에서 산 붓으로 바니쉬를 바를 때마다 말려가며 세 번 겹쳐 발랐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길고 무거운 목재를 화분에 똑바로 세워서 묻어주는 게 가장 큰일이었다.

역시 아래가 무거워서 쓰러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해, 토분을 사용하였다. 아직까지는 앞으로 넘어진 적은 없다. 조금 넓고 큰 나무판으로 바꿔보니 이미 난 아래쪽 잎들 뒤의 빨판들이 여기저기 넓어진 나무판을 탐색해가며 붙느라 성장은 뒷전이다.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몬스테라 두비아나 라피도포라 계열 식물을 기르는 게 아니라면 굳이 쓸 필요는 없다. 무겁고 연장이 쉽지 않으며 언젠가는 썩을 수밖에 없으니까.


화분 깔망으로 만든 유사나무판

몬스테라 에스쿠엘레토와 화분 깔망으로 만든 유사나무판

시기 : 식물 평생

무게 : 가벼움

비용 : 화분깔망 1,000원 + 식물지지대 1,000원 + 케이블타이 1,000원 + 녹화마대 12,000원

줄기지지 : 좀 휘청거리지만 쓰러지는 것은 겨우 면한다.

공중뿌리 활착 : 4/10 (마대봉과 비슷)

앞서도 썼지만 나무판 지지대는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식물의 길이가 늘어났을 때 연결하기가 쉽지 않고 무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소에 파는 깔망을 반 접은 뒤 식물 지지대 두 개를 넣고 겹치고, 녹화마대를 말아 유사나무판 지지대를 만들어보았다. 처음에는 만족스러웠는데, 1미터가 넘기 시작하니 역시 휘청거려 급한대로 지주대를 두 개 묶어서 받쳐주고 있다. 역시 1미터가 넘으면 굵고 무거운 지지대를 써야 하나보다.

유사나무판 지지대를 만드는 과정.

게으름뱅이가 진짜 수태봉을 쓸 수 있을까? 아직은 안 쓰고 버티는 중!

뉴질랜드 수태를 사야 이물질이 안 들어가 있어서 곰팡이가 안 핀다던데(순수 수태는 약산성이라고), 수태에 곰팡이는 생겨봤지만 비싸서 아직 못사봤다.

사실 지지대 및 뿌리활착 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수태로 만든 수태봉이다. 수태란 이끼의 한 종류인데, 대부분의 원예자재점에서 말린 형태로 팔고 있다. 이걸 조금 떼서 물에 30분쯤 불리면 마른미역 불린 것처럼 확 부풀어오르며 푸슬푸슬해지는데, 이걸 플라스틱 망으로 된 긴 통에 넣어서 제작해서 식물 지지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수태가 천연 재료이기 때문에, 천연 재료가 가진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공중뿌리가 잘 활착하기 때문에 잎이 큰 멋진 모양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관리가 까다롭다. 매번 자주 물을 공급해줘야 하고,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수태 자체도 다른 재료에 비해 비싼 편이다. 아무튼 효과로 너무 유명해서 그런지, 맨 위에 언급한 말린 코코넛껍질로 만든 코코봉도 원예자재점에선 ‘수태봉’이란 이름을 달고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아아 시야를 가리는 봉이 가득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날로 식물 잎을 크고 아름답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지금 상태의 작은 잎도 나름 귀엽고 자리를 덜 차지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하여튼 여간 애물단지가 아니다. 빨리 높이 자랐으면 하여 식물이 작을 때부터 미리 크고 길게 만들어두는 사람들도 많아 욕망봉이라고도 불리지만, 게으름뱅이에겐 만사가 힘들기만 하다고 투덜대며 오늘도 식물 수발을 위해 다이소로 뛰어간다. 선생님! 뭐가 필요하신가요?


요약

1. 식물 지지대는 덩굴성 식물이 잡고 위로 올라가게 하기 위해서 + 일부 열대식물의 경우 줄기에서 돋는 뿌리를 활착하게 해 성장을 돕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

2. 식물 크기가 80cm정도일 때까지는 굵은 지지대가 필요하지 않다.

3. 1의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지지대는 천연 재료를 사용한 수태봉 및 나무판 지지대이지만 관리가 귀찮고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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