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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Jun 14. 2021

세월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차 보관하기

차 보관 용기도 숨을 쉬어야 한다니?

약 6-7년에 걸친 가늘고 긴 동양차 입문기 시리즈를 작성하며 차 보관법에 대해서도 구구절절하게 다룬 바 있다. 이 글을 한줄요약하면 “한국의 연교차 및 습도차, 좁은 공동주택 환경에서 오는 주거환경은 차가 보관되기 적절치 않으니 그냥 은박봉투에 1-2회분으로 밀봉소분하는 게 답이다” 였는데 점점 즐기는 차의 종류가 늘어나며 그것도 100%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게 되었다.


보이차, 백차 등 제조 뒤 보관을 오래 할 수록 시장가치 및 세간의 맛/향 평가가 올라가는 차들이 있다. 이런 차들은 제조 뒤에도 천천히 산화 과정을 거치며 숙성된 맛이 난다고 하는데, 그런 차들은 워낙 비싸기도 하고 나야 워낙 차는 햇차가 최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 그다지 접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기존에 맛이 없는 건 등급을 올리면 맛있어질까 생각하며 또 다른 걸 사고 맛있는 차에 대한 경험이 있으면 저것도 새롭게 맛있지 않을까 해서 또 다른 걸 사는 게 기호식품 십덕후의 세계관이니 점점 그런 차들도 찬장 한 켠을 차지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차들의 보관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비닐에 완전밀봉하기보다는 공기는 통하게 하되, 햇빛이나 습기나 냄새가 침투하면 안 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보이차의 경우 워낙에 전용 보관함도 많이 나오고 한국에도 수입을 해서 파는 업체가 많다.(중년만세! 효리언니 만세!)여차하면 그냥 압축-포장된 상태 그대로 책꽂이 같은 데 보관해도 큰 문제 없다. 재미있는 건 서재가 이런 종류의 차를 보관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힌다는 점이다. 부엌에서 멀고, 종이가 습기를 잡아주며, 그늘진 환경이라서 그렇다나… 서재는 취향 이전에 부동산이 필요하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압축(긴압)된 병차가 이닌 산차 형태로 나오는 백차를 구입할 때가 문제였다. 중국은 나라가 크니 차가 먼 거리를 이동하며 파손되지 말라고 커다란 떡 형태로 증기압축을 해서 파는데, 그걸 병차라고 한다.

그리고 마실 땐 칼로 일일이 뜯어마셔야 한다.(이걸 해괴한다고 한다.) 마실 땐 너무 귀찮아 고통스럽지만 유통 뿐만 아니라 개인의 차 보관에도 유리한 방식이다. 차의 나쁜 변질을 일으키는 외부 환경에 노출되는 면적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딱딱한 찻덩어리를 뾰족한 칼로 낑낑대며 살살 뜯어대다 보면 내가 차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마실 일인가 현타가 온다….

이렇게 압축된 형태가 아닌 차 본연의 형태를 산차라고 하더라. 보이차나 백차같은 경우는 떡모양이든 공모양이든 뭐든 압축된 형태로 유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압축되지 않은 차 형태를 따로 산차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형태의 백차를 두 번 구입했고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에 있는 우리집은 차 보관에 막 좋은 조건은 아닌데 굳이 차테크를 할 건 아니지만 그냥 비닐밀봉을 하면 경험의 폭 자체에서 손해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다.


물론 타오바오에서는 자사나 도기로 만든 밀폐 가능한 항아리를 많이 팔지만, 이것때문에 그 삽질(…) 을 할 수는 없고, 한국의 중국산 수입품은 이걸 그 가격으로 사? 싶은 가격이 되기 때문에 적당한 국내산 대체품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찾아본 대체품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 밥이나 반찬을 보관하는 도자기 밀폐 용기

2. 된장, 고추장, 간장, 소금 보관용 옹기

문제는 밀폐가 되면 향을 흡수하는 재질(플라스틱 및 실리콘)을 뚜껑으로 사용하고 있고, 흙으로 만들어 구운 뚜껑을 사용하는 제품은 밀폐력이 걱정되었다. 뚜껑이 안으로 들어가 맞물리는 게 아니라 덮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이즈가 작아져 뚜껑이 가벼워진다면 용기가 가진 숨쉬는 작은 구멍 이외의 큰 구멍이 생기거나, 보관하다가 차를 쏟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얘는 저렴한 보이숙차의 맛을 살려보겠다고 타오바오에서 산 자사 재질의 차 보관 전용 항아리이다. 뚜껑이 항아리 내부와 맞물리게 되어 있다.

결국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가격 면에서 미니 옹기가 유리하기 때문에 미니 옹기를 구매했다. 50g정도의 차를 담기 딱 적당한, 장독대 미니사이즈같은 그런 옹기의 수요는 굉장히 의외의 용도에서 생기고 있었다.

현대인의 현관은 비좁아터졌는데 굳이 풍수의 이치를 맞추겠다며 아주 작은 사이즈라도 구석에 소금이 든 항아리를 놓아 어떻게든 구색을 맞춰보겠다는 한민족의 얼에는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덕분에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햇빛 습기 냄새분자는 차단하고 산소만 통할 것 같은 작은 용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 나는 12,540원에 쿠팡에서 구매했는데 네이버 같은 데서 살래면 더 싸다. 최대한 차 틴과 비슷한 사이즈로 구매했다.

일단 옹기를 마른 행주로 슥슥 닦은 다음, 찻잎을 계량컵에 분리해 두고 차 틴에 들어있던 종이를 깔고 옆으로도 둘렀다. 그리고 다시 찻잎을 옹기 안에 넣었다.


나름 괜찮긴 했는데, 역시 뚜껑이 좀 헐겁다. 원래 장독이라면 뚜껑의 무게가 밀폐력을 나름 커버해주지만 사이즈가 작아지니 뚜껑 자체가 고정이 잘 안 되는 헐거운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집에 있던 호돌이 박스테이프로 말아버렸다는 한국인다운 슬픈 사연이다. 마, 이게 한국인이다!ㅠㅠ 사실 뚜껑과 몸통 사이에 한지 같은 걸로 한번 덮어 고정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집에 있는 게 박스테이프 뿐이라 집에 있는 가장 귀한 박스테이프를 사용해 보았다. 호돌이가 차를 지켜줄거야!!(아님)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옹기는 잎이 딱 45g까지만 들어가서 나머지 5g은 그냥 그 자리에서 우려먹었다.

백호은침은 뭐라고 표현이 안되는데 참 맛있었다. 향보다는 맛이 두드러지는 것 같긴 한데… 맛있는 중국차들은 마시고 나면 엄청 침이 고이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도 그렇긴 하다. 백차는 잎을 따다가 단순히 말리기만 했기 때문에 맛 성분이 다 나오려면 오래 우려야 한단다. 거의 우리는 시간이 냄비밥 뜸들이는 수준이라 상당한 한량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오래 두고 먹기 시작했으려나 싶을 정도이다.


미국의 웰빙 내지 에코 프렌들리 트렌드 혹은 오리엔탈리즘에 백차의 이미지가  맞는 구석이 있는가 보다. 미국  브랜드 샘플러를 사면  백차가 끼어서 오는데  맛이 없어서 시도해본지 5049274번째, 드디어 굳이 이렇게 만들어먹는 선택을 유지한 사람들이 이런 맛과 향을 의도하고 만들었겠구나, 하는 오리진을 찾은 느낌이라 차의 미로 하나가 뚫린  같았다.


내가 정산당에서 구매한 백호은침은 이 제품으로, 나는 제조 후 1년 이상 지난 걸 받았는데 여러 경로로 조사해 보니 그 쪽이 좀 더 맛과 향에는 유리한 듯 하다.

https://lapsangstore.com/collections/white-tea/products/zheng-shan-tea-white-tea

원래 정산당은 백차가 주력은 아니고, 주력이 아닌 종류 차의 경우 서브 브랜드를 만들거나 외부 협력을 하는 듯 하다. 여기서 운영하는 어느 채널에서 봤는 지는 잘 기억 안 나는데 백차를 잘 만드는 분의 차를 입점할 계획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중국 사람들의 장사력에는 늘 감탄하고야 만다.




첨언 : 비전문가적 차생활 중의 잡문을 쓰는 매거진을 하나 더 만들어 틈틈이 올리기로 했습니다. 차는 흔히 감성의 영역으로 소화되나, 감성의 영역이야말로 정량적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풍화되고 잊혀지기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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