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바오에서 구매한 자질구레한 다도구들
중국차는 은근히.. 가 아니라 대놓고 장비병 세계관이다
개완 및 개완과 짝꿍이 될 만한 찻잔을 산답시고 타오바오에서 꽤 많은 삽질을 하다 보니 중국차를 마시는 데는 별의 별 도구가 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가격이 매우 싸고, 한국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물품이 많아 주문마다 한두가지씩 주섬주섬 사다 쓰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걸 다 쓴다고? 싶은데 진짜로 이걸 다 쓰는 신나고 재미난 맥가이버칼같은 장비병 세계관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전자(저울)차칙 电子茶则 겸 차하 茶荷
중국차를 전통 방식으로 우리는 데는, 찻잎의 양과 물의 용량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요리할 때 사용하던 적당한 전자저울을 썼는데, 쓰다 보면 좀 더 정교하게 무게를 재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실제로 맨날 차를 마시고 있기 때문인지 차도구 만드는 데 천재라, 차 우리기 전 마른 찻잎을 잠시 부어놓고 감상하는 차하茶荷라는 도구에 0.1g단위로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을 합쳐놓은 천재적인 도구를 만들었다. 차통에서 찻잎을 덜어넣을 때 쓰는 도구를 차측 茶则이라고 하여 이 기능도 겸하는 제품 같긴 한데, 덩치상 통에서 뭘 퍼낼 수 있게 생기지는 않았고, 차를 우리기 전에 마른 찻잎(건엽)의 상태를 감상하고 끽다 1회분의 무게를 확인하는 데는 굉장히 편한 좋은 아이템이다.
나는 용산당 제품을 샀지만, 电子茶则으로 검색하면 선택폭이 제법 넓은 편이다.
거름망 茶漏
숙우(공도배) 위에 놓고 찻잎의 잔여물이나 부스러기가 찻물에 들어가지 않도록 걸러주는 아이템이다. 다른 사람들 하는 걸 보면 쓰는 사람은 절대 쓰고 안 쓰는 사람은 절대 안 쓰는데 나는 서양 홍차가 주력이던 시절부터 절대로 쓰는 쪽이다.(맛에 영향을 받는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보니 동서양 종류별로 가진 갯수가 가장 많은 아이템이기도 하다. 동양차 다구는 정말 죠구맣...기 때문에... 나뭇잎 모양의 평평한 것보다, 다른 것들처럼 오목한 모양이 좋다. 예쁘다고 평평한 것을 사고 물붓다가 옆으로 물 다 흘린 사람~ 그 칠칠맞은 사람 바로 나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동서양 차를 위한 차 거름망
스텐 차 거름망은 소모품에 가까워 2년쯤 사용하다가 거치대가 있는 새 제품을 구매했다.개치 盖置
계란 껍질마냥 얇은 개완들을 사다보면 차를 우린 뒤 뚜껑을 테이블이나 차판 위에 아무렇게 두다 저게 이가 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작고 얇은 차호 뚜껑이나 개완 뚜껑을 잘 놓아두는 받침이 따로 있다. 그림이 예쁘게 그려지거나 공예품의 형태라면 제법 비싸지만, 나는 그냥 저렴하고 깔끔한 것으로 구매했는데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어차피 뚜껑 올려두면 밑은 잘 안 보이기도 하고)
육군자 六君子
차 우릴 때 사용되는 맥가이버칼 같은 자질구레한 도구들이 있는데, 중국인들은 이를 모아서 육군자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차도육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타오바오에서는 육군자가 키워드로 통용되는 듯. 그 유교 경전의 군자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어쩌고... 할때 그 군자 맞다. 개별 아이템보다는 아예 세트로 파는 경우가 많았고, 파는 곳마다 구성이 조금씩 다른데 기본 구성은 다음과 같다. 개별보다 세트로 판매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진 기준 위에 있는 순서대로 대략 쓰임새를 설명해 본다.
정산당에서 2$ 주고 구매한 육군자로, 뒤에 새겨진 싯구 옆에 굴림체로 한국어 해석이 되어 있는 점이 귀엽다.차협
데운 찻잔을 사람이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졌을 때 집는 찻잔용 집게. 혼차인이다보니 쓸 일이 많진 않다.
차칙
차통에서 찻잎을 덜어낼 때 사용한다. 다만 나는 1~2회분 은박봉투 소분러라 쓸 일이 많지는 않다.
차침
조그만 차호에 잎을 왕창 넣어 우리다 보면 가끔 차호 주둥이 앞의 구멍이 막힐 때가 있는데 이걸 정리해줄 때 사용한다. 개완도 뚜껑에 찻잎이 막 묻어나오는데 살살 털어서 개완 잔에 넣어줄 때도 있다.
+) 자사호를 사면서 차침은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는 도구가 되었다. 작은 자사호는 너무 연약한 나머지 싱크대에 들고가서 물을 틀어놓고 손가락으로 찻잎을 꺼내는 거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되지 않고, 차침으로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구도가 좋은 친구는 아니라서 매일 사용하기 시작하자마자 벌써 막 닳고 있는 중이라 추후 좀 더 좋은 제품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차시
차하나 차통에서 찻잎을 조금씩 덜어낼 때 사용한다. 내 경우에는 조금씩 떨어뜨려야 하거나 조그만 입구로 찻잎을 넣어야 할 때 살살 조정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차루 (사진에 없음)
차호 구멍이 워낙 작다 보니.. 쌀 같은 곡물 소분할 때 깔대기 넣고 페트병에 붓듯 쓰라는 용도의 차 깔때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따로 사기는 또 애매한? 그런 아이템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루라는 한자로 검색하면 인퓨저 계통의 거름망이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차통
이 많고 자잘한 맥가이버칼같은 도구들을 한꺼번에 넣어두는 보관통 또한 도구의 하나로 카운트하고 있다.
차총 茶宠
나는 대충 찻친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tea pet이라고 부르는 그런 장식용 물품이다. 이것도 용산당에서 물뿜는 거 보고 샀는데 내 개구리는 물을 몇 번을 부어대도 딱 한번 물을 뿜더라는... 그런 아픈 사연이 있서... 그 외 뜨거운 물을 부으면 색상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능보다는 장식품이다.
가위 茶叶袋包小剪刀
반려인이 진짜 오타쿠는 이런 것까지 사냐며 감탄해버린 그것인데... 티백이나 차가 소분된 봉지를 자르는 전용 가위이다. 중국차 샘플이나 소분 티백은 엄청 작아서 쭉 찢으면 그 아까운 찻잎이 사방팔방으로 튀고 말아, 맨날 주방가위로 자르다 보니 좀 구질구질해져서... 이왕이면 작고 예쁜 가위를 사용하고 싶다는 이유로 적은 금액을 지불하고 하나 샀다는 얘기.
다건 茶巾
찻자리에 흘려지는 물이나, 자사호를 닦을 때 사용하는 수건이다. 나는 원래 이 용도로 행주나 일회용 행주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자사호를 사면서 거친 타올로 소중한 자사호를 닦기가 좀 그래서 하나 샀다. 린넨이나 촘촘한 타올 등의 여러 가지 재질이 있고,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은 편이다.
자사호는 차를 마시고 나서 찻잎을 빼고 물로 헹군 뒤 말릴 때 수건으로 물기를 한 번 닦아주는 게 겉에 물자국이 남지 않는 데 유리한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있다. 차 마시고 나서의 정리는 티마스터 시우님의 https://www.youtube.com/watch?v=2FPERvL8ZcQ 영상을 참조하여 좀 간단한 버전으로 따라하고 있다.
그 외의 자사호 관리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할 수 있다.
내가 산 건 이 제품인데 두꺼운 린넨 재질로, 디자인이나 내구성은 마음에 들었지만 빨간 차건을 간단히 손빨래해보니 빨간물이 엄청 나왔다(....)건식 찻자리와 자사호를 위한 도구들
자사호를 사고 차판이 없는 건식 찻자리를 시도한다면 조금 더 필요한 도구들이 많아진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글에 또 구구절절 적어 놓았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사는 작은 다도구들이 취미에 필요한 기부니즘을 충족시켜 주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도구들은 대부분 몇 천원 대로 가격이 저렴하다. 어떤 도구는 맛을 미세하게라도 좋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되고, 어떤 도구는 삶의 구질구질함을 잊을 수 있는 경험으로 이끌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최소한의 도구만으로 간단하게, 또는 고수의 풍모를 느껴보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도구를 따지지 않는 장인이 아니므로(...) 이런 자질구레한 다도구들을 통해 차 마시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제법 장비병 환자다워진 요즘의 찻자리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