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흘림대장이지만 예쁜 찻자리는 갖고싶어
주전자랑 찻잔도 데워야 돼, 찻잎도 한번 헹궈줘야 해… 마실 차에 우릴 것 말고도 물을 어지간히 많이 쓰는 중국식 차우림법은 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예쁨과 편리함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하다 보니 들었다). 조그만 다구에 이래저래 물과 찻물을 옮기다 보면 흘리기도 엄청 많이 흘리게 된다. 특히 나는 진짜 많이 물을 흘리는 편이다. 그래서 늘 데운 물을 간단하게 밑으로 버리고, 대충 물을 흘려도 괜찮은 습식 찻자리만 해왔다. 차판 밑에 모인 물과 찌꺼기를 한번에 버리고 헹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뒷처리가 편하다.
건식과 습식 찻자리에 필요한 기본 도구에 대해서는 이 글에 간단히 언급한 바 있다.
실용주의와 적당한 가격을 추구하다 보니 한 가지 차판에 정착하게 되었지만, 그러다 보니 좀 지겨워졌다. 알록달록한 개완과 도자기 차호 위주의 생활을 할 땐 괜찮았지만 중년답게(?) 황톳빛 자사호와 함께하기 시작하며 늘 반복되는 찻자리 꾸밈 요소에 조금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도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늘 예쁘지 않고 귀찮기만 한 물바다 엔딩만을 맛보곤 했다. 그러나 타오바오에서 자사호나 차호, 개완들을 검색하다 보면 예뻐보이라고 작은 물그릇같은 받침에 찻주전자를 올려놓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걸 호승 壶承 이라고 한다. 나도 혹시 호승을 사용하면 디스플레이처럼 예쁜 찻자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인들의 여름 세일을 맞이하여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나무 차판이 가볍고 편하지만 늘 쓰다 보면 갈라지게 되었고, 이번에 새로 온 대나무 차판은 빨리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물론 습식 차판도 여러 가지 디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타오바오에서 차반 茶盘이라고 검색하면 여러 가지 디자인의 습식 차판을 구경할 수 있다. 다만 대체로 목재나 도자기 재질이라 무겁고, 해외 직구에서 무겁고 큰 물품은 배송비가 많이 든다. 이미 100위안짜리 차판을 사고 이것저것 합해서이기는 하지만 6만원의 배송비를 냈던 적이 있기도 하다.
별걸 다 산 걸 열심히 블로그에 쓰고 있는 사람 치고는 뭘 자주 사는 것 자체를 번거로워하는 편이라 안 갈라지고 가벼운 물건을 사고 싶기도 했다. 차판을 안 깔고 쓰는 찻자리라면 물을 버리는 데 퇴수기라는 별도의 물그릇을 쓰기도 하는데 어차피 늘 혼자 마시는 편이라 특별히 큰 용량의 그릇이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도 큰 용량의 예쁜 도자기 그릇은 비쌌다.
일단 호승들은 작고 만만해보이는 크기와 가격으로 시도해볼 수 있었고(물론 모든 차 장비들이 그렇듯 비싼 건 비싸다), 물을 어지간히 흘려대는 나의 스킬도 잘 쓰면 커버할 수 있어보였다. 호승은 크게 작은 차판처럼 생긴 물구멍이 있는 통 형태와 오목하게 파인 작은 도자기 그릇 형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써 본 적이 없는 도구이니 비싸지 않은 것으로 적당히 둘 다 사보자고 생각했다. 도자기 그릇은 샀다가 망하면 과일 접시로라도 쓰면 되지 하는 소심한 계획도 세워 놓았다.
내가 산 제품은 이 두 가지인데 물받이가 있는 작은 차반의 형태.. 의 이 제품은 가격 대비 안 보이는 부분의 마감이 그다지 좋진 않다.
오목하게 파인 작은 도자기 그릇 형태의 이 제품은 섬세하게 뭔가가 조각되어 있거나 비싼 제품들처럼 아주 얄상하지는 않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그럭저럭 예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촘촘히 물을 빼는 형태의 대나무 차판이 아닌 다른 것을 써 봤더니, 밑으로 물이 빠지는 형태라도 위가 물바다가 되어 있어 찻주전자나 공도배, 찻잔 등을 들면 물이 뚝뚝 떨어지곤 했다. 당연히 중국인들은 이걸 방지하기 위한 받침을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물이 안 빠지는 형태의 그릇형 호승을 사용한다면 꼭 필요할 것 같았다. 라탄 계열의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제품과 수세미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제품이 흔하다. 나는 튼튼해보이고 찻물이 들어도 별로 티가 안 날 것 같은 라탄 계열의 제품(지름 8cm)을 골랐다.
사서 써보니 저렴한 가격에 모든 물이 묻고 연약한 다구들의 물받침 및 쿠션 역할을 하는 데 충분했다. 보관함이 같이 있는 걸로 여러 개 묶음을 사니 여기저기 쓰고 나서 적당히 말려 보관하는 데도 편리했다.
그래서 차판없이 시도한, 물을 좀 덜 흘린 버전의 찻자리는 다음과 같다.
자사호를 사용할 경우, 호승은 둘 다 써야 했다. 자사호 밑에 깐 호승은 자사호를 데우기 위해 끼얹는 물과, 뚜껑을 덮으면 살짝 넘치는 물을 감당하고, 다구를 데운 물을 버리고 찻물이 옮겨다니며 흐르는 물을 감당할 호승이 따로 있어야 했다. 물론 나같이 흘림대장이 아니면 공도배 밑에 굳이 호승을 안 깔아도 될 수도 있겠으나 내 경우엔 물 다루는 솜씨가 워낙 형편없어서 예쁜 찻자리들처럼 예쁜 천깔개 하나 놓고 이런 건 불가능했다.
티 코스터 위에 대충 놓아둬도 되긴 하지만 연약한 자사호 뚜껑을 올려 놓을 수 있는 개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렴한 것이 또 하나 오는 중이다. 내가 가진 건 개완 뚜껑을 올려놓기는 좋은데, 작은 뚜껑을 가진 차호의 뚜껑을 올려놓기는 만만치 않았다.
다도구와 찻자리를 예쁘게 보이게 하는 중국식 디스플레이에는 늘 뭔가 예쁜 천 재질의 티 매트가 깔려 있었는데, 그게 없으니 예쁘지 않고 모든 다도구들을 탁자에 너저분하게 올려놓은 것 같았다. 장비병 환자의 생각이라는 게 뭐가 부족해보이면 늘 저 장비가 없는 탓인가…(데헷)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코로나 이전 대만 타이중에 갔다가 자만당에서 눈이 돌아가 나로서는 큰 금액을 탕진하고 의문의 물건을 사은품으로 받은 적이 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손짓발짓과 파파고로 했기 때문에 이게 뭔지까지는 물어보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와서 펴보니 엄청나게 얇은 천 두루마리였다. 대체 이걸 어디다 쓰는 지 몰라서 몇 년째 그냥 두기만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걸 옷 레이어드하듯이 여러 천을 겹쳐 코디를 하는 것이었다. 넘나 심오한 것.
그래서 또 속절없이 레이어드할 수 있을 만한 천 재질의 티 매트도 두 개쯤 오는 중인데, 솔직히 이건 잘 모르겠다. 천 재질은 무조건 세탁이 문제라 내가 이걸 잘 쓸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직업이 무색하게 나는 생활속의 믹스앤 매치를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타오바오에서 차석 茶席으로 검색하면 수많은 차꾸의 세상을 만나볼 수 있다. 좋은 코디를 하려면 좀 경험치가 필요한 영역 같다.
전통의 다이어리 꾸미기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개성 표현이나 심미적 만족을 위해 뭔가를 꾸미는 활동에 “~꾸”로 끝나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워낙 전염병 시기를 맞이하여 다들 집에만 있다 보니 그런 활동의 비중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막상 사놓고 힘들고 귀찮으면 접을 수도 있겠지만, 집에서 가볍게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활동으로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일들이 생활에 활력과 즐거움을 불어넣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연 예상한 대로 차꾸가 완성될 수 있을까는 아직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