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직구로 중국차를 구입해 랜선으로 독학해 마시는 방법
차는 본디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여행지에서라면 한두개쯤 사오는 아이템으로, 중국이나 대만, 일본 등에 여행갔다온 사람들의 선물로 맛볼 수도 있을 정도다. 나는 원래 커피를 마시면 배가 아파오는 사람이다 보니, 늘 티백 홍차를 대용으로 마시곤 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마시는 쪽이었다. 아니, 여행지만 가면 늘 차를 500g~1kg씩 샀으니 차 오타쿠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휴가는 늘 짧고, 차를 잔뜩 짊어지고 돌아와서 한달이고 일 년이고 향을 음미하는 것이 여행지의 여운을 남기는 어떤 방식이었다.
고만고만한 회사원의 낙이랄 게 그 1년에 한두 번 3박 4일 가는 해외여행밖에 없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낙을 완전히 봉쇄하고 말았다. 사회 각계 각층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기에, 고작 해외여행 좀 못 간다고 투덜거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답답함을 꾹 누른 채, 오로지 이 사태가 좀 나아져서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던 가깝고 만만한 해외여행지에 저가항공을 타고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안고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1년 반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단기 여행 목적으로 해외로 떠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비대면 업무 시대와 함께, 이도저도 못한 채 고립된 상태로 집에 우두커니 있는 날이 늘어 갔다. 여행지에서 사온 차는 점점 줄어만 가는데...
그러게 내가 대만에서 차 산다고 쓴 돈이 얼만데, 빨간 틴으로 유명한 왕덕전에서 쓴 돈이 얼만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없으면 차 가게도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었을 거라고 정신승리를 해봤다.
심지어 요즘은 항공으로 오기 때문에 엄청난 퀵배송을 맛볼 수 있다. 관세만 주의한다면.
인터넷으로 해외에서 물건을 사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라면 개인 사용으로 신고한 미화 150$ 이하의 물품만 무관세로 사 올 수 있다. 총 구매 금액이 그 이상이라면, 구매한 물품 금액의 일정 비율을 통관시 관세청에 세금으로 내게 되어 있다.
차는 국내 산업 보호 항목이기 때문에 구매 항목이 미화 150$가 넘었을 때의 세율이 엄청나다. 녹차는 특히 500%가 넘고, 홍차나 보이차 같은 것도 40%가 된다. 그러니까 절대로 관세 이하 금액으로 안전하게 사야 한다.
총 구매 금액이 타이완 달러로 4500$ 아래면 관세를 내지 않고 들여올 수 있다. 물론 미화 150$ 환산 기준이라 환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조금 적게 사야 안전할 것 같다.
대만차의 경우 해외배송으로 한국까지 차를 보내주는 업체는 세 군데가 있다.
전부 여행자에게도 현지인에게도 유명한 곳들이며, 자국어 이외에 영어를 기본으로, 한국어를 서비스하는 곳도 있다. 중국어권 판매자들은 해외에 차를 파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고 CS도 열심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왕덕전 https://shop.dechuantea.com/
대만 브랜드 중 가장 비싸고, 모든 종류의 차를 다루는 유명 대기업이다. 대만여행 다니는 사람에게는 빨간 틴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중국 운남성의 보이차도 취급하기 시작했다. 현지와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EMS 배송으로 배송비는 740TWD(약 2.9만원).
팬시하고 스타일리시한 브랜딩이 인상적인 브랜드로, 이 브랜드 또한 다루는 차의 범위가 넓다. 왕덕전보다 가격은 조금 싸고, 편리한 소포장 티백들과, (구)대만 여행객 핫아이템인 써니힐 펑리수를 판다.(중요) 무료배송이지만, 제품들이 현지 가격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다.
서요량다원 https://www.hoshiuantea.com/
고급 동방미인차를 취급하는 유명한 다원이다. EMS 배송으로 배송비는 610TWD(약 2.4만원).
차 애호인마다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지인들이 동양차에 입문할 때 늘 대기업 브랜드를 권하는 편이다. 일단 저가부터 고가까지 모든 가격과 차 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차가 있다. 배스킨라빈스 31처럼 이중에는 입맛에 맞는 차가 있을 지도 모른다. 요즘 동아시아권 국가의 식품안전 시스템은 대체로 믿을만 하고, 그 시스템 안에서 퀄리티를 컨트롤할 수 있는 회사라면, 적어도 뭐 이상한 게 들어간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만 차 가게에서는, 어디서든 외국인이 세월아 네월아 앉아있어도 요청하는 모든 차를 시음할 수 있게 해준다. 외국인이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좋은 티룸도 많다. 이는 특별히 차를 배우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동양차는 엄청나게 우리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대부분 차에서 쓰거나 떫은 맛이 도드라진다면, 내가 뭔가 잘못 우렸을 확률이 제일 높을 정도이다. 그래서 기준이 될 수 있는 맛을 잘 기억해 놓아야 한다.
아, 지금 여행 못가지.
여행은 못가고 무기력한 상태로 집에 있는 시간만 더럽게 길 뿐인 시대를 맞이한 나에게 어느 중국의 차 대기업이 랜선으로 날아온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바로 '금준미'라는 중국에서 제일 비싼 홍차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정산당이다.
Paypal을 통해 미화 달러로 결제되며, 45$ 이상 구매하면 DHL로 무료배송해주는 최고존엄을 자랑한다. 처음에는 해외 몰에서 홍차만 판매했지만, 요즘은 홍차, 우롱차, 백차, 보이차 뿐만 아니라 다구까지 취급하는 다도인의 개미지옥으로 발전했다. 한국어로 CS도 가능하다.
정산당에서 취급하는 홍차 샘플러를 전부 다 맛보고 생각 외로 좋아서 트위터에 시음기를 올렸다가 2,000 리트윗을 타게 되었고, 그 뒤로 왠지 담당자분이 신경써주시는 유저가 되고, 이 브랜드에 신뢰가 생긴 나는 이전에 마셔본 적도 없는 종류의 차들을 마시게 되었다.(내!돈!내!!산!!!!)
대만차라면 몇 년간 왔다갔다 하면서 기준이 될 수 있는 맛에 대한 경험치가 있는 상태였지만, 나는 중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중국어 무식자였다.(대만에서는 일본어와 영어로 대충 소통 가능했다.) 그래서 뭔가 이상해도 차가 이상한지, 내가 잘못 끓였는지 알기가 어려운 상태로 인터넷 친구들과 책, 유튜브에만 의지해 새로운 차의 세계를 탐험하게 되었다.
차마다 우리는 방법은 어찌나 다 제각각이고 까다로운지, 조금만 집중을 잃으면 차 맛을 망치게 되기 일쑤였다. 어떤 차는 유리컵에, 어떤 차는 개완에 우리는 게 유리하고, 어떤 차는 차 1: 물 25 비율로, 어떤 차는 차 1:물 33 비율로... 얇고 작은 다기들은 들고 조금만 딴생각 해도 떨어뜨리거나 뜨거운 찻물에 손이 데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물의 온도와 찻잎의 양, 맛과 향에 집중해 긴장하고 있노라면 고립된 시간 속에서 복잡하고 우울했던 마음을 기묘하게 잊을 수 있었고, 차를 마시고 남는 여운은 불면증으로 조금 잠이 오지 않는 시간 또한 덜 힘들게 해주었다. 차의 다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시간이 친구의 특성을 알아가는 것만큼 즐거웠다.
차는 기호식품이기도 하지만, 차밭에서 차농이 키운 '카멜리아 시넨시스' 종의 식물을 가공한 농산물이기도 하다. 차를 마시다보면, 이 차가 났을 해외 어느 지역의 토양과 바람, 공기, 차를 재배하고 만들었을 그 나라 사람들을 떠올리며 떠나지 않아도 집 바깥으로 떠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동양차/중국차를 '공부차功夫茶' 라고 하는데, 확실히 궁리하여 손기술이 익어야 그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간단하게도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 정도에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의 맛과 향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상당한 연구와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이다. 내 경우엔 한 5년 정도 때로는 천천히 띄엄띄엄, 때로는 집중해서 훌륭한 초보자의 길을 아직도 걷고 있다.
그렇게 궁리하고 탐색하며 책을 찾고, 인터넷을 찾았다. 국내에는 이미 중년 분들 위주로 상당히 커보이는 보이차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들의 취향에 따라가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아직 입이 젊어 보이숙차 특유의 묵은지 향은 도저히 별로였기 때문에.. 차 관련 네이버 블로거들이 주는 정보가 전혀 쓸모가 없었다.(조금 더 나이가 들고 나서는 입맛이 바뀔 지도 모르겠다.)
차를 배우는 또 다른 방법은 티클래스를 여는 업체나 전문가 부류인데, 대부분 국내 수입 판매 업체와 연결되어 있고 감염병 시국인 것도 있어서 크게 미덥지 않았다. 드물게 중국 현지 경험을 기반으로 트위터나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정보를 배포하는 분들이 있어 내 경우에는 그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분들은 이미 차를 마시는 데 엄청난 고수이고 전문 정보 위주로 알려주시기 때문에, 나같이 어정쩡한 초보자의 좌충우돌 실패 경험도 다른 방향에서 입문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름 완결된 시리즈물을 만들고 싶은(....) 야심찬 계획으로, 대만의 우롱차에 빠지게 된 계기, 대만에서 사온 차들을 집에서 우리면서 겪은 시행착오, 중국차를 겪으며 사회적 거리두기적으로 했던 더 혼란한 시행착오와 중국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온갖 곤란을 겪으면서 한 다구 구입기, 애써 산 다구가 깨졌을 때 유튜브 검색으로 재료를 사 킨츠기를 했던 경험, IT 업종의 회사원으로 스타트업에서 핫한 노션(Notion)을 사용해서 기록을 정리했던 경험 등을 다루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전혀 차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구 직장동료가 개완을 구입한 걸 보고, 확실히 요즘 시국이 시국이니까... 차로 즐거움을 얻고 마음을 다스리고 때때로 SNS에 인증도 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괜찮은 취미인걸까 생각했다. 또 서양의 홍차나 한국/일본의 녹차를 마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나처럼 집에서 혼자 중국차로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트위터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인터넷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조금 더 차 경험을 좋게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의 경험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