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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May 25. 2021

직구로 처음 산 중국차를 맛있게 우리려면

현지라는 기준점이 없을 때 차를 어떻게 우려야 좋을까? w/정산당

코로나 이전에도, 고만고만한 회사원인 나에게 만만했던 여행지는 일본, 괌/사이판 지역, 대만 정도로 협소한 편이었으며, 심지어 이 바깥으로 나가본 적도 없다. 일단 저가항공이 다니는 곳이 큰맘먹기 및 일정잡기가 좀 더 쉬운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 고정 파티원의 성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파티원 1 : 되는 대로 여기저기 다 가보고 싶음. 호기심 대왕. 일본어 풀패키지로 할 수 있음. 영어는 중학생 레벨. 단체활동 질색.

파티원 2 : 자주 가봐서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휴양지를 선호함. 자유여행 상황에서 말 안 통하는 거 질색. 영어 조금 일본어 조금.


그래서 늘 파티원 1과 2는 “이제까지 안가봤던 데 좀 가자” “말 안 통하는 데는 싫은데... 차라리 패키지 가자” “패키지 절대싫어” “걍 국내나 일본 ㄱㄱ” 를 몇 년째 반복하는 중이었다.(사실 대만도 같은 이유로 고정 선택지는 아니었는데 타이난의 한 망고빙수가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나에게는 그 워크샵 이후 여행지로서의 대만에 이상한 믿음이 생겼다. 돌이켜 보면, 폰 로밍 끊긴 상태로 습도 85% 기온 34도의 길바닥을 헤매며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다가 타이페이 공무원이 걸어서 10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직접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던 경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뒤 타이완런들의 오지랖을 좀 좋아하게 되었고 외국인/여성 여행객이 좀 실수하거나 잘못하더라도 큰 트러블이 없을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실제로 기차를 반대방향으로 잘못타서 새마을호 기준 세 정거장을 가든 택시 기사가 실수로 잘못 내려주든 타이난같은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혼자 타서 도시 외곽 장소로 가주세요 하든 속이려는 의도나 악의를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저 말못하는 외국인을 도와줘야겠다는 킹긍정 내츄럴 본 친절 기운만이 넘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외국 여행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중국어를 여전히 전혀 못했고 중국은 그런 종류의 안심감이 드는 이미지가 아니라 중국에 여행을 가서 차를 사온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그와중에도 늘 내가 우린 차는 맛대가리가 없었고 대만 우롱차를 어떻게 우린다는 한국어 버전의 지식은 전무했으므로, 아쉬운 대로 우롱차를 일부 다룬 중국차 책을 샀다. 그런데, 그 책의 도입 부분이 엄청났다. 6대 다류가 아니라 먹거리 엑스파일을 피하는 방법들이라니요 이보시오.... 차가 좋아보이기 위해 물감을 입히거나 가짜 차를 파는 경우가 있다니 역시 중국은 무서운 나라야 하면서 그만 알아보자... 하고 책을 덮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이 책의 조언을 따르자면, 중국차를 구매하는 것 자체가 먹거리 엑스파일을 뚫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Lv1. 홍차

그러다 작년 10월쯤이었을까. 코로나 시대와 함께 경성우 및 왕덕전에 이어 정산당도 해외용 쇼핑몰을 런칭하는 형태로 차를 해외배송한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차쟁이 진제형님의 책에서 무이산 지역의 홍차를 소개하며 금준미라는 걸 처음 만든 저세상 가격의 대기업 브랜드라고 언급한 것이 내가 정산당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한국차에 굳이 입문할 외국 사람이 있다면 내 입에 맞든 안맞든 오설록을 권할 부류의 인간이므로 오히려 크게 문제는 되지 않았다.(그 비싼 왕덕전도 18000원짜리 사계우롱을 판다.)


과연 금준미는 정말 비쌌지만(50g에 148$으로 내가 동서양 통틀어 십 몇년쯤 본 차 중 가장 비쌌다) 적당히 싼 가격에 호기심을 충족해 볼만한 품목들도 있고, 런칭 기념으로 중국 10지역에서 생산된 홍차 샘플러를 freetea 코드를 입력하면 1달러에 살 수 있는 한시적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이 제품으로 현재는 미화 24.5달러 정가로 팔고 있다.


정산당은 정산소종 홍차를 주력으로 하는 브랜드이다. 서양식 홍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산소종은 lapsang souchong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얼그레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 이 랍상소총의 훈연향이다. 그리하여 전통적 정산소종 스타일로 만들었다는 본색과, 왠지 나도 이름은 들어본 대홍포 틴, 1달러였던 샘플 팩을 결제하고 완전히 잊고 있었다. 요즘처럼 dhl로 배송하지 않을 때라 배송엔 거의 한 달이 걸렸지만, 한국까지 직접 배송해주는 비용이 무료면 한 달 정도는 참는 게 직구러의 기본 자세로 장착되었달까. 오히려 장사하는 쪽에서 45$ 이상 주문하면 dhl로 배송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주긴 하더라. 영국, 프랑스, 싱가폴, 일본, 대만까지 전세계의 쇼핑몰에서 차를 사댔지만 이렇게 비싸고 빠른 옵션의 배송을 무료로 해주는 회사는 처음이라 대륙의 기상은 그런 건가 생각했다.


다행히 홍차 마시는 방법에 대해서는 정산당 홈페이지에서 비교적 분명히 안내가 되어 있었으므로 크게 어렵지 않았다. 150ml짜리 차 우리는 도구에 찻잎을 3-5g 넣고 끓는 물을 부어 10초씩 원하는 횟수만큼 우리는 (대만 우롱차를 경험했던 사람 기준으로는) 꽤 심플한 방법이었다.

 

정산당에서 제시하는 홍차 우림 가이드는 다음과 같다. 최근 가이드를 업데이트했으니 그 버전으로 소개해 본다.

찻잎 양 : 3-5g으로 취향에 따라 가감

도구 : 개완을 권장. 또는 인퓨저 류의 컵

물 온도 : 98~100

1. 물을 끓이고 개완(차호나 컵)과 찻잔을 데운다.

2. 개완에 찻잎을 넣고 흔들어 찻잎의 향기를 맡는다.

3. 개완 벽을 따라 끓는 물을 붓는다.

4. 취향에 맞게.. 약간의 시간 뒤 찻잔(또는 공도배)에 개완의 찻물을 옮겨 붓는다.(처음에는 10초로 제시했었다)

* 개완으로 우리지 않을 경우 우리는 시간에 주의. 너무 오래 우리면 홍차의 맛을 즐기기 어렵다.


당시의 좀 더 간단했던 공식 가이드를 보고 일단 집에 있는 도구 중에서 150ml를 담을 다구를 찾아보았다. 정산당에서는 우리는 도구로 개완을 권장하지만, 개완은 110ml짜리 작은 것만 갖고 있었고, 이 당시는 끓는 물이 든 개완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개완잡이에 능숙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지금도 150ml짜리 큰 개완을 끓는 물이 들어간 상태로 잘 컨트롤할 자신은 없다. 그런 이유로, 집에 있는 주전자들에 무식하게 물을 채우고 계량컵에 옮기는 방법으로 용량을 체크해 보았다. 다행히 토림도예의 빈티지 블루 다관이 150ml를 담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찻물이 콸콸콸 나왔기 때문에 이쪽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150ml짜리 주전자는 작고 귀엽다.
차호(다관)으로 홍차 우리기

개완 정도로 콸콸콸 나오는 게 아니라 쫄쫄쫄 나오기 때문에 안내된 것보다 시간을 줄였다. 10초를 정확하게 세는 게 아니라, 성격급한 한국인식 대충 10초 세기로 하면 그럭저럭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산당에서 우린 걸 보고, 마셔보지 못했으니 정확한 방법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이 방식은 나에게 적절하다고 느껴졌다. 제조 회사에서는 6-12번 우릴 것을 권장하지만 대만 우롱차 경험을 통해 3-4번 정도만 내가 즐길 수 있는 데까지만 우리고 있다.(그렇게 해도 이미 450~600ml를 마시고 있다.)


우리는 방법은 꽤 수월하게 통과되었지만, 막상 애써 틴으로 사온 홍차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통 방식의 정산소종 훈연향은 어린 시절의 아버지 재떨이를 연상하게 하는 맛과 향이었다. 이 담뱃재 향의 차를 마시고 나면 다구에도 내 코와 입에도 심지어 뇌까지 만 하루를 지배하고야 마는 무서운 현상이 일어났다. 연속해서 다음날 마셔본 대홍포도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흙내가 약간 있었고 한약 탕약 같은 맛이 좀 나면서 몸에 열기가 뻗쳤다. 중국 사람들은 몸에 좋으라고 찬물도 안 마신다더니, 맛보다 효능(?)으로 먹는 차인가 멋대로 생각했다. 물론 잘못 우렸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제품은 냉침을 해도 흙맛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특색이려나 생각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전혀 잘못 우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들이 충분히 즐기는 어떤 차가 롸? 싶을 정도로 맛이 없다면 내가 잘못 우렸을 가능성부터 의심해야 한다.


틴으로 산 건 다 망했지만(훈연 정산소종은 아직도 서랍에 고이 들어있다) 1달러로 구입한 전국 홍차 샘플러가 꽤 맛이 좋았다. 특히 나는 향긋한 꽃향과 과일향이 피어오르고 감칠맛이 좋은 몽산홍이라는 제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샘플러들을 오픈 기념으로 꽤 할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모든 종류가 들어간 세트를 구매하게 되었다. 넓은 중국 땅의 여러 지역에서 만든 차들은 비슷한 듯 다른 듯 나름의 맛과 향 스펙트럼이 있었기 때문에, 이거라도 천천히 다 맛보면 재미라도 있겠지 생각했던 것 같다. 비록 뭐가 뭔지 몰라서 엄청나게 중복된 샘플이 많은 상태로 받았지만 딱히 사는 낙이 없던 차에 다양한 차 포장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호쾌해졌다.


트위터에 후기를 쓰며, 내가 뭐가 뭔지 모르고 중복을 잔뜩 샀다고 했더니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정산당에서 이런 형태로 제품 구성을 개선해주었다. 좋은 UX는 고객지향에서 나오고 정산당은 이걸 정말 잘 하는 회사다.

정산당에서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꼭 홍차 샘플러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비싸서 사기 어려운 차라도 1회분이 담긴 샘플팩은 7.9~11달러 정도로 구매할 수 있다. 여러 개 구성으로 된 샘플러라면 개당 가격은 더 저렴해지며, 그 비싼 금준미라도 한 번은 맛볼 수 있다.

또 중국차들은 종류별로 넣어야 하는 찻잎 양의 최적값이 다른데, 샘플러를 통해 150ml에 우릴 경우의 찻잎 양을 알 수 있다. 기록해두었다가 추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 잎차 틴을 샀을 때 1회분을 동일한 양으로 계량해서 우리면 안정적인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보통 홍차에 대해서는... 커피정도는 아니라도 적당한 맛에 대한 경험치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또, 홍차의 특성상 조금은 진하게 우리더라도 망할 정도로 떫어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결국, 홍차 샘플러 여행을 통해 마음에 드는 것 몇 가지를 찾아 구매해 마시고 있다. 개별 제품에 대한 내 의견은 정산당 제품 페이지에 남긴 리뷰로 대신한다.(정산당의 피드백력이 내 게으름을 이겼달까...그렇다. 내 아이돌 최애도 남한테 영업 절대 안하는데...)


정산당 홍차 추천

1568 비훈연 정산소종 홍차 

차를 우리면 달콤하고 편안한 고구마향이 확 퍼집니다. 싹만 딴 고급 제품들은 아무래도 발효차 특유의 풍미보다는 부드럽고 순한 맛이 지배적인데, 약간의 나무껍질 향이 있는 듯 하면서도 밀도있게 진한 홍차 특유의 풍미가 매력적입니다.
훈연향이 강한 본색도 마셔보았지만, 기존의 정산소종이나 중국 홍차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면 태운 연기 향이 나지 않고 달콤한 쪽이 더 마시기 편하지 않을까 하네요.
100g 포장이고, 할인이 붙지 않은 기준으로도 1회분(5g) 기준으로 3200원 정도이기 때문에 정산당 브랜드 홍차 기준으로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차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릴랙스하고 싶을 때 이 차를 찾고 있습니다.

준미중국 단아 홍차 

정말 모난데 없이 여리고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Freetea 샘플러로 마셔본 각 지역의 홍차들이 나름의 개성적인 방향이 있다면, 준미중국 시리즈의 홍차들은 밸런스가 좋고 무난둥글 편안합니다. 등급별 샘플러 네 가지를 마셔보고 틴으로는 가장 등급이 높은 이 제품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갑이 허락하는 한 가장 높은 등급을 선택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금준미나 은준미를 마셔보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면 싹에서 나는 달고 순한 맛의 결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 제품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잔잔하게 순하고 달콤한 차를 마셔 정신을 깨우고 싶을 때 이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몽산홍 미니팩 

작년에 freetea 프로모션을 통해 구매한 홍차 c 샘플러를 통해 접한 제품으로, 틴이 아닌 개별 팩으로 많이 사면 비싸다는 걸 알면서도 추가구매를 10포 이상 했을 정도로 많이 사서 마시고 있습니다.
일단 약간 쏘는 듯한 꽃향이 두드러지고, 감칠맛이 높은 편으로, 마시면 기분좋은 상쾌함이 있어요. 그러면서 좀 구수하기도 하고요. 가향이나 블렌딩을 하지 않은 홍차이기에 자연스럽고도 복합적인 맛의 경험이 주는 즐거움이 좋습니다. 틴으로 혹시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좋겠네요.

금준미

틴으로 받으니 솜털이 가득하고 우리기 전의 마른 잎에서부터 꿀향이 퍼집니다. 홍차는 이렇게까지 어린 잎으로 만든 걸 마셔본 적이 없는데, 가격이 그만큼 높지만 잎과 향에서부터 정말 사람 손이 많이 간 정성들인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햇차라 그런지, 샘플 팩에 들어있던 것보다 조금 더 신선하고 달콤한 꿀과 같은 맛이 강하게 지배하며, 비훈연 정산소종 특유의 고구마향이 그 뒤를 받쳐주고, 약간의 은은한 꽃향기가 남습니다. 3g의 잎차만으로 4번 이상 우려도 맛과 향이 지속되고요. 상미기한이 3년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신선한 상태의 금준미를 맛보는 것도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Lv2. 녹차

그렇게 홍차와 함께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놀라운 소식이 도착했다. 정산당이 봄 햇녹차를 취급하겠다고???? 알음알음이라도 차를 좀 접하다 보면, 녹차의 왕은 중국녹차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중국인이 쓴 중국차 책에도 맨 앞에 가짜나 품질 낮은 차 구별법이 언급될 정도이니, 외국인이 간편한 방법으로 믿을 만한 중국 녹차를 사기는 정말 어렵다. 모처럼 온 기회이므로 정산당 녹차와 함께 본격 외화탕진길을 열심히 걷게 되는데...


실제로 마셔본 중국녹차는 정말 여리고 고소해서 내가 알던 그 녹차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한국이나 일본 녹차와 전혀 다른 장르의 맛과 향으로, 한국이나 일본 녹차가 풀의 맛이 난다면 중국 녹차는 삶은 콩이나 녹두향 계열이 베이스고, 쓰고 떫은 맛이 일체 없다. 그런 좀 더 순한 맛 베이스에, 여러 향이나 맛이 여운으로 남는 스타일이다. 대만 우롱차를 통해 이미 가향하지 않고 만들어낸 복합적 향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편향일 수도 있지만 좋은 것은 좋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산당에서 취급하는 녹차들은 대부분 명전(청명절, 4월 5일 전에 채엽) 녹차들인데 단가도 오설록 같은 브랜드에서 파는 우전(곡우, 4월 20일 전에 채엽)녹차보다 훨씬 쌌다. 정상가도 그런데 할인도 붙어있고 심지어 예약을 하면 꽤 파격적으로 할인해주는 쿠폰까지 줬기 때문에 와 역시 장사는 중국인이다 하면서 속절없이 행복하게 돈을 썼다. 녹차는 제조일로부터 1년까지가 상미기한이라 엄청 부지런하게 마셔야 한다.


다만 중국 녹차는 생각보다 우리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우롱차가 커피면... 중국 녹차는 TOP라는 썩은 드립을 하고 싶을 정도다. 중국의 녹차는 신선하고 풋풋하고 맑은 맛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좋은 차일 수록 아주 어린 싹을 사람이 채엽해 만든다. 따라서 조금만 뜨거운 물을 세게 부으면 찻잎이 뭉개지거나 떫어지게 된다. 이미 부어놓은 물에 찻잎을 천-천-히 떨어뜨리거나, 찻잎에 물을 붓더라도 물 자체를 아예 찻잔 벽을 타고 졸졸졸 내려야 할 정도다.

녹차를 우리다 보니, 차라는 게 정말 한량의 취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 끓이고 식히는 데 10분, 뎁히고 우리고 하는데 한 5~8분, 멍때리며 배부르게 마시는데도 한 30분 이상... 그런 느낌.


중국 녹차를 우리는 기본 룰은 다음과 같다.


1. 일단 물을 100도까지 끓인 후 85도로 식혀야 한다. 일단 여기부터 10분 잡아먹고 시작한다.(10분은 실내온도 24도의 우리집 환경에서 테스트해본 수치이다)

2-1. 개완을 사용해 우린다. 이 때의 비율은 물 50ml당 찻잎 1g이다. 짧은 시간으로 3-4회 우려먹을 수 있다. 차의 향을 뽑아야 할 때 유리하다.

2-2. 유리컵을 사용해 우린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유리컵의 물을 70%만 채우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나는 400ml의 컵에 280ml의 물을 부어 사용하고 있고 이 때의 비율은 물 80ml당 찻잎 1g이다. 1분~5분 사이의 텀을 두고 길게 우린다.


다행히 트위터에서 이소님이 좋은 방법을 알려주셔서 시행착오 거의 없이 처음 만나는 녹차를 맛있게 우려마시고 있다. 이소님은 중국 청두 여행 에세이 겸 가이드북을 쓰셨고, 현재는 중국 소설 번역을 업으로 하는 중국 전문가이기도 하다.


정산당 녹차 추천

서호용정 西湖龙井 

중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격이 높은 녹차로, 중국 갔다온 한국인들조차 모두 가이드에게 용정차 한번쯤 낚여서 사와본 적이 있는 정도의 지명도를 갖고 있다. 콩같은 맛과 향 베이스로 고소하고 맑고 깨끗한데, 그 와중에 은은한 꽃향이 올라와 차에서 선비나 도인같은 풍모마저 느낄 수 있다.

정산당 https://lapsangstore.com/products/2021-xihu-dragon-well-1st-grade

우림법 https://twitter.com/yinzhen2017/status/1382549916933713922?s=20

요런 느낌적인 느낌느낌. 차탕이 엄청 맑음.

몽정감로 蒙顶甘露

서호용정이 점잖은 선비나 도인 같다면 몽정감로는 좀 더 마시는 즐거움에 중점을 두게 된다. 감칠맛, 단맛 등 여러 향과 맛이 그야말로 폭!발!해버리는 매직... 사실 홍차 마시면서 좋아했던 몽산홍과 같은 산지에서 나온 녹차. 뭐야 이거 왤케 맛있는데? 가 절로 나온다. 4월에 샀는데 이미 절반 넘게 마신 건 안 비밀이다.

정산당 https://lapsangstore.com/products/mengding-green-tea

정산당이 알려준 우리는 법과 이소님이 트위터에서 알려주신 방법을 참고하고,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개인적으로 이 차를 우리고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준비물 : 찻잎 3.7g, 목이 긴 유리컵 400ml, 계량컵, 찻잔   

800ml-1리터의 생수를 100도까지 끓임.

8분 식히면 85도 (우리집)

찻잔과 유리컵을 데움.

85도로 식힌 물을 계량컵의 280ml 눈금까지 붓는다.

계량컵의 물을 유리컵에 옮겨 붓는다.

찻잎을 물 위에 조금씩, 천-천-히 떨어뜨린다 - 이것을 전문용어로 상투법이라고 한다. 잎이 너무 여린 친구들을 위한 방법. 그리고 찻잎이 물을 만나게끔 유리컵을 살살 돌려준다.

8분 대기 (남은 물의 온도가 70도쯤 됨)

계속 온도가 내려가는 주전자의 물을 첨잔해가며 마신다.

맨 마지막엔 찻물이 너무 진해지므로 취향껏 계량컵으로 옮겨 따라마신다.

태평후괴 太平猴魁

녹차 중 가장 늦게 (5월 중순) 나온 차로 우리고 나면 이거 산에서 딴 두릅이라고 해도 믿겠다! 하며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원숭이를 훈련시켜 벼랑에서 채엽했다는 민간전설이 있어 후괴라고 하고, 그래서 패키지에도 원숭이가 그려져 있다. 여린 콩 삶은 것 같은 맛을 베이스로 하는 다른 중국 녹차와는 다르게, 한국/일본산 녹차와 비슷한 풀맛 베이스로 그보다는 다소 부드럽다. 한국인에게는 맛과 향 및 단가 면에서 그나마 가장 친숙한 차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쯤 90도로 물 온도를 높여 넣으면 약간의 꽃향이 화아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우리고 난 유리컵의 향도 굉장히 좋다.

정산당 https://lapsangstore.com/collections/green-tea/products/green-tea-2021-first-flush-taipin-houkui-%E5%A4%AA%E5%B9%B3%E7%8C%B4%E9%AD%81

우림법 https://twitter.com/yinzhen2017/status/1388249011367206913?s=20

태평후괴의 물이 많은데도 개완에 우린 서호용정보다 더 진하다.


Lv3. 무이암차(우롱차)

정산당은 정산소종 홍차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이다. 하지만 정산소종 홍차가 나는 복건성 무이산 지역은 중국 본토 내 양대 우롱차 중 하나인 무이암차(암차라고도 지칭한다)가 나는 곳이기도 해서 서브 브랜드를 만들어 취급하고 있다.


무이암차라니 이 낯선 이름의 차는 무엇인가? 책이나 인터넷으로 무이암차에 대해 알아보면 암운岩韻에 대한 언급이 많다. 원조가 되는 차나무가 바위 사이에서 자라고, 그 차나무 가지를 꺾어다 심어 유전적 특성이 동일한 원료로 만드는 차가 대표적 무이암차인 대홍포다. 차 자체가 영험한 바위의 기운을 받았고, 그게 맛과 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일종의 스토리텔링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으로 우린 저렴한 대홍포는 흙맛 및 탕약 맛이 났다. 조금 더 가격을 올린 샘플러를 마셔보니 좀 맑아지는 것 같긴 했지만 기본 베이스가 되는 맛은 같았다. 샘플러는 늘 대홍포, 육계, 수선을 한 세트로 제공하는데 그나마 육계가 뒤에 화한 맛이 있고 맑아서 좀 낫긴 했다. 암운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원래 암차가 이런 건가 생각하며 싸지도 않은데 이거 나랑 안 맞는 맛인가보다 결론을 내리기 직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좀 오래 고민하다가 포인트를 모아 할인을 받아 금준미를 샀는데, 정산당에서 암차 샘플러를 선물로 보내줬다. 처음엔 쇼핑몰에는 올라오지도 않았고 박스에 F라고 써있어서 Free 샘플러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정산당에서 취급하는 무이암차 중 가장 고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외국인 고객이 뭐라고 이런걸 다 ㅠㅠ 하며 우렸는데 탄맛인가? 하기 직전의 불맛이 첫탕을 다 잡아먹어버렸다. 몇 번 더 우려서 마셔 보니 맑으면서도 묵직한 단맛 및 조화로운 스파이시함이 있어 정성들여 만든 고급차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사서 내가 망치는 건 괜찮아도 선물받은 걸 그렇게 하는 건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고 파는 사람의 정성인데.

그러다 나의 랜선 차 선생님이 차를 우린 사진을 보게 되었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단박에 알게 되었다. 내가 우린 차의 농도가 너무 진했던 것이다. 차를 탕약을 달이듯 너무 진하게 우리고 있었다. 정산당 홈페이지에서 10초부터 시작해 조금씩 늘리라고 되어 있었고, 대만 우롱차도 20초나 30초에서 시작해서 10초씩 늘리는 방식으로 우렸기 때문에 전혀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다음날 우리는 방법을 좀 바꾸어 다른 차를 우려보았다.

다른 제품이지만 동일한 육계로, 유리 숙우에 담긴 차 색상을 보면 비포 애프터의 차이가 분명하다.

무이암차 우리는 법(NEW!)

1. 110ml 작은 개완으로 9회 우린다. 찻잎의 양은 150ml 기준의 절반으로 한다.

2. 처음에는 윤차(빠르게 헹궈 버림)를 하고, 첫 5회는 물을 붓자마자 빠르게 공도배(숙우)로 옮겨담아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5초씩 늘려간다.

이렇게 솜씨없게 우려도 잘만 마신다(...) 다구 데우기 > 윤차 > 첫회 우림까지.

개완을 빠르게 다루는 기술이 없어 애를 먹긴 했지만, 이렇게 스피디하게 우리니 맛이 한결 더 나아졌다. 강하게 홍배(로스팅)한 차 특유의 불맛이 줄어드니 차가 가진 장점이 드러났다. 과일향 및 단맛이 올라오다 화한 뒷맛으로 마무리해주는 상쾌한 차였는데 암운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가려 편견을 가지고 잘못 우린 뒤 이 차는 어떻다고 잘못 판단해버린 것이다. 원래 대홍포는 아무래도 가격대가 좀 높아져야 맛있는 차고, 예산이 그렇게 많지 않다면 육계나 수선이 현대인에게는 마시기 좋다고 한다. 내 경우에는 깔깔하고 스파이시한 특성을 가진 육계가 널리 알려진 세 종류의 암차 중에서는 가장 취향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차생활

결국 문제는 모두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현지라는 기준이 없어졌다는 데 있었다.

심지어는 맛있다고 마신 홍차도 중국 가서 마셔보면 그 맛이 아닐 수도 있다. 대만 우롱차도 현지에서 사마시고 집에서 내가 끓였을 때 그 맛이 아니었는데, 아예 현지라는 기준점이 없이 만든 맛으로 대충 즐겨도 괜찮은 걸까? 물론 차라는 게 기호음료이긴 하지만, 일단 레시피에 맞게 구현해본 뒤 내 취향에 맞춰 튜닝하는 것과 처음부터 기준 없이 멋대로 하는 건 다르고, 후자는 틀릴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다만 현재의 상황으로는 직접 기준을 접하는 건 유예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중국차는 아직 한국에서 마이너한 분야라 한국어로 된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어를 할 수 없고, 중국어 검색도 못하니 더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외국어 실력이 대단하진 않아도 늘 구글 및 스택오버플로우를 영어로 검색하거나 오타쿠 정보를 일본어로 검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편인데 여러 취미를 파내려가던 와중 가장 쩔쩔맸던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쓴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인터넷 및 책에서 방법을 찾아본다.

2. 매뉴얼을 최대한 잘 지켜본다.

3. 맛이 특별히 이상하면 내가 잘못 우린 탓인가? 생각해보고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

4. 맛이 미묘하게 이상하면 충분히 비싼 걸 안 사서인가? 생각해본다.

5. 맛이 가지고 있는 성질 자체가 별로면 다음을 기약하며 고이고이 접어둔다.

6. 내가 차를 이렇게 우린다고 동네방네 알려본다. 그럼 누군가가 코멘트를 줄 수도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데는 그런 목적도 있다.

7. 내 입맛에 괜찮음 코로나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오케이 사인을 내리자.


약간의 타협으로 오늘의 행복을 얻었지만 코로나 시국이 끝나면 역시 기준이 될만한 향미를 파악하러 중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차를 통해 현지의 조명... 온도... 습도... 를 간접적으로 느끼며, 정산당의 예상치 않았던 친절을 체험하며, 길을 잃고 곤란을 겪었다가 타이페이 공무원의 도움을 받았을 때처럼 약간의 안심감을 얻은 것 같다. 남주혁의 명언으로 이번 턴을 마무리하자. 차를 마신다는 건 그런 일이니까.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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