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디저트의 원산지를 맞춤해야 어울리는 미묘한 원리
작년에 정산당과 함께 의문의 중국차 입문을 하면서 끊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디저트다. 나의 차 메인 스트림은 서양식 홍차(유럽 브랜드) -> 서양식 홍차(아시아권 브랜드) -> 대만 우롱차 -> 중국차로 얼레벌레 흘러왔는데, 언어도 모르고 가 본 적도 없는 중국의 차와 맞는 디저트를 찾기가 어려웠다. 다기에 대한 글을 쓰며 서술했듯 타오바오는 외국인이 뭔가를 잘 찾아 구매하기에 만만한 플랫폼은 아닌 데다, 식품은 좀 더 통관이 까다롭다는 점도 있었다.(내가 이용하는 대표적인 배송대행 업체인 몰테일 차이나도 차를 포함한 식품류 전체의 대행을 거절하고 있다) 세관에서 아예 통관이 안 되는 건 아닌데, 큰 업체가 하기에는 수지타산이 잘 안 맞는 모양이다. 그래서 수수료가 더 높지만 식품류를 취급해주는 규모가 작은 개인 대행업자를 뚫어 차나 식품류만 시키는 모험을 떠나야 하는데… 나의 적은 기력 및 게으름이 이기고 말았기 때문에 그냥 깡차를 마시는 생활을 1년이나 하고 있었다. 원래 단 음식을 많이 먹지 않기도 하고, 디저트라도 끊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정신승리까지 합쳐서.
일본 센차 정도는 한국 과일이나 흔한 서양식 디저트와 어울림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대만 우롱차부터가 이미 한국 사과나 딸기 같은 것들을 한사바리 올려놓고 홀짝홀짝 먹으면 과일과 차의 맛을 함께 해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들곤 했다. 아마 차의 향미 자체가 단맛이 적고 신맛이 있는 디저트를 입 안에 잔뜩 넣어서 으적으적 씹어야 좀 먹은 것 같은 한국문화와 좀 충돌이 있는 것 같다. 대만 우롱차는 늘 해외여행과 세트였기에 누가 크래커나 펑리수를 사와서 매칭하고는 했지만 이젠 코로나의 시대를 맞이했고 양 손 무겁게 외국 디저트를 사와서 먹으면 되는 시기가 언제쯤 돌아올 지도 잘 모르겠다.
누가 크래커는 몽샹82 등의 한국 브랜드에서도 파는 데가 있지만 펑리수는 아무래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오죽하면 텀블벅 펀딩으로도 사먹어 봤을 정도인데 나는 뽑기가 괜찮았지만 별로 좋지 않은 물건을 받아서 말이 많기도 했다고. 그만큼 외국 디저트를 한국에서 대량생산하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 펑리수를 먹어봤을 때는 약간 팍팍한 식감과 다소 저렴한 느낌이 나는 버터향의 조합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차랑 매칭해서 많이 먹다 보니 스며든 것 같기도 하다. 우바오춘, 써니힐 등 유명 제과점이 만든 개성있는 펑리수들은 버터도 제법 괜찮은 걸 쓰고 파인애플 풍미도 좋고 식감도 폭신폭신한 게 제법 맛있기도 했다.
경성우가 해외 배송을 시작했을 때 가장 반가웠던 것도 내가 좋아하는 써니힐 펑리수를 배송해 준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펑리수만도 팔았던 것 같은데 이젠 차와 결합한 좀 비싼 제품만 남아 있다.
https://www.jsy-tea.com/products?query=%E9%B3%B3%E6%A2%A8%E9%85%A5
펑리수가 포함된 제일 저렴한 패키지는 이것. https://www.jsy-tea.com/products/perfect-blessing-teabags-pineapplecake 전에 펑리수 단독으로 10개 세트 420twd에 먹었던 걸 생각하면 좀 슬픈 가격이라서 못 사먹고 있다. 아, 그때 더 사먹을 걸 하면서.
코로나 시대 통판에 열심인 타이완 차 브랜드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중국 문화권의 추석인 중추절에는 사람들이 참치나 스팸이 아니라 동일한 사이즈의 박스에 포장된 중국식 디저트 월병 세트를 주고받는다는 사실. 펑리수의 나라인 만큼, 작년에도 경성우에서는 파인애플 월병을 예약주문받아 팔았고 나름의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단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펑리수면 모를까 먹어보지도 않은 월병을 굳이… 라는 생각이 있어 굳이 사먹어보지 않았을 뿐.
그래서 정산당이 추석을 맞이해 월병을 판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느닷없이 트위터에 먼저 먹어본 이들의 입소문이 퍼지며 차를 마시지 않던 사람들마저 이 월병을 주문하는 붐이 생겼다. 중추절 월병 기본 세트는 참치 6호와 비슷한 크기의 박스이고 8개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1박스를 주문하면 50달러, 5박스를 주문하면 개당 30달러 수준이었는데 이런 경우 한국인들은 재빠르게 지인을 모아서 공동구매를 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있다. 정산당에서 무슨 신기술을 발휘했는지 이런 경우 배송을 각 공구자에게 찢어서 해주겠다고 하여 주문량은 더욱더 폭발하게 되고….
본디 한국인이란 풍미가 덜 진하고 단 맛도 덜한 디저트를 입 안에 가득 넣고 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마카롱도 라뒤레니 피에르에르메니 다 철수하고 뚱카롱집들만 살아남은 판이다. 이 어려운 판에서 “부드럽고 안달고 맛있는데?” 라는 최고의 칭찬과 함께 월병 중독자들까지 속출하기 시작했고 박스에 들어있지 않은 맛을 낱개로도 팔면서 주문은 그야말로 폭발해버렸다. 차들은 안 마시면서 그렇게까지 단거에 진심들인 데 나도 너무 놀라버렸다. 다행히 낱개 월병은 주먹보다 조금 작은 꽤 큰 사이즈에 비해 개당 3달러 정도로 그럭저럭 만만한 가격이라 나도 소문의 월병을 몇 개 주문할 수 있었다. 몇 개를 주문해야 적절할까 하루쯤 고민하다가 벌써 몇 가지 종류가 품절되어버릴 만큼 한국인의 디저트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그리고 6명밖에 되는 정산당 해외 판매팀 직원들이 물류 창고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했다는 전설과 함께 배송은 무한히 길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개인 사용 물류 수입 기준은 꽤 빡빡한 편인데, 사람들이 공구니 뭐니 단체로 주문해서 같은 식품이 한꺼번에 잔뜩 들어오는 사태가 벌어지자 통관이 지연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름 추석의 이색 선물용으로 주문했던 사람들이나 공동구매에 총대를 멘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곤란해하는 사태도 생기고 있다. 아마 작은 신생팀이 케파 생각 못하고 노 젓는다고 들어오는 주문은 다 받는 바람에(…) 생긴 참사 같고… 다행히 커피 한잔에 정량이 케이크 반 개 or 정통 마카롱 한 개일 정도로 단 걸 많이 먹지 않고 낯선 향신료 냄새를 싫어하는 반려인과 살고 있는 나는 낱개로 열다섯 개만 시켰으니 큰 문제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월병을 먹어보니 역시 중국차에는 중국 디저트가 어울리는 것인가…! 왜 차는 산지와 디저트를 굳이 꼭 맞춰먹어야 어울리는 까다로운 음식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문대로 부드럽고 기름기가 적고 많이 달지 않으면서 향이 풍부해서 차랑 딱 어울린다. 견과류가 톡톡 씹히는 디테일도 훌륭하다. 중국이나 대만차랑 어울리려면 약간의 기름기와 짠기가 있어야 하는 건가 싶기도.
차 문화가 메이저인 데는 차에 딱 맞추는 디저트도 있고 좋구나~ 생각하며 또 깡차나 할 것 같다. 생각해보면 몸이 술을 잘 받았을 때도 대체로 깡술에 조미김이나 좀 집어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참 인간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월병 역시, 차 500ml당 1개가 딱 한계인 것 같다.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한국인에게 디저트에 대한 열쩡… 을 발견하여 어느 업체든 다양한 디저트를 직배받을 수 있게 해준다면, 미움이 가득한 온라인 세상에 좀 더 행복의 총량이 늘어나서 그 나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내년에는 파인애플 월병도 주문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