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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ug 08. 2022

초보가 식물을 죽이지 않으려면

실내 환경을 이해하고 관대한 식물을 찾아본 뒤, 템빨을 곁들이자

식물을 처음 기르기로 한 사람이 제일 걱정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일텐데,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저걸 죽이지… 않을 수 있을까?” 에 가깝다. 몇 번씩 화분의 식물을 죽여보고 몇 년 뒤 혹시나.. 하며 초보상태는 벗어나지 못한 나같은 사람들은 큰 시장이든 작은 화원이든 늘 판매자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초보자가 기르기 쉬운 식물인가요?” “초보자가 기르기 쉬운 식물은 어떤 게 있나요?” 사실 각자의 주거 환경이 다르므로 정답은 없지만 우리는 공동주택의 나라고 바쁘다 바빠 현대인이므로 어느정도 공통된 부분은 있다.


우리집이 어떤 환경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대충 익숙하고 불편하지 않은 환경이라면 채광이나 온습도에 대해 별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온습도계로 온습도를 체크하거나(특히 습도...), 빛이 들어오는 상태에 대해 잘 관찰하고 생각해보는 사전 활동이 다소 필요하다.

한편 온/오프라인의 시장에 있는 식물들은 생각 외로 굉장히 여러 나라에서 온 식물들이고, 요구하는 빛과 물(+습도)의 양이 제각각이다. 실내가 자생지인 곳은 없으니, 통풍은 식물에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강도 내에서 무조건 잘 되는 쪽이 좋긴 할 것이다.


한국 공동주택의 공통적인 실내 환경이란

허브를 비롯한 대부분의 작물은 실내에서 기르기 좋지 않은데, 땡볕도 필요하거니와, 우리가 맛있는 건 곤충도 대부분 맛있어서 그렇다. 한반도 자생식물도 실내에서 기르기 좋지 않은데, 그들에겐 추위와 땡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꽃피는 식물에겐 땡볕과 곤충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중남미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지역 어디선가의 땅에서 온 잎을 감상하는 식물, 즉 관엽식물들을 기르게 된다. 선인장도 시장에 많지만 의외로 많은 햇빛을 요구하는 식물이라서 오래 기르기는 쉽지 않다. 내공이 높고 양지바른 집에 사는 분들은 선인장 등의 다육식물(a.k.a 다육이)이나 제라늄 같은 꽃들도 기르지만 초보는 좀 넘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빛 - 식물이라면 광합성을 해야 하니까

마당이 있거나 옥상이나 사방이 뚫린 발코니가 있는 집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집은 햇볕이 잘 드는 창문에 바짝 붙여 기른다고 해도 일단 햇빛이 창문 유리 및 방충망을 통과하기 때문에 반양지 이하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실내 식물 도감의 180-181페이지 내용을 참고하여 한국적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양지 : 유리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햇빛이 들어오는 곳 (옥상, 발코니, 마당 등)

반양지 : 햇빛이 잘 드는 위치의 유리문 바로 앞 (베란다 및 확장형 베란다, 남향으로 난 원룸 창문 바로 앞의 선반 등)

반음지 : 햇빛이 안 드는 위치의 유리문 바로 앞 또는 햇빛이 잘 드는 위치의 유리문이 있는 공간의 안쪽 (대부분 방의 창가 및 거실 안쪽)

음지 : 앞서 언급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

우리집에서 식물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어떤 환경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음지에서밖에 키울 수 없다면 키울 수 있는 식물의 종류가 꽤 제약된다. 그럴 경우 선택지는 아마 스킨답서스, 아글라오네마, 휘토니아, 고사리류 정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반대로 말하면 이 식물들은 한국 주택의 어디서든 살아남는다는 얘기이기도…)

아글라오네마 지리홍. 나름 종류별로 다양한 색감과 무늬가 쏠쏠하다
휘토니아 화이트타이거. 방의 어두운 곳에서 키워도 키가 커서 다소 못생겨질 뿐 잘 자란다.


의외로 온도보다 습도가 변수

아무리 사계절국이라도, 아니 사계절이 너무 가혹한 나라이기 때문에… 실내는 인간이 생활하기 쾌적한 온도로 늘 맞춰져 있다. 베란다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집 베란다는 동남향이라 빛은 정오부터 뚝끊기지만 아침에 38도까지 올라가고 열대야가 있을 정도의 여름밤에는 늘 29도 이상이라는 것을 식물을 기르고서야 알게 되었다. 식물에게는 적정 온도라는 것이 있지만 평균온도 30-32도 정도라고 죽는 식물은 없긴 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베란다에서 식물을 키우면 15도 밑으로 내려갈 땐 식물을 안쪽으로 들여 월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습도는 다르다. 봄/가을의 실내는 봄가을이라서… 여름/겨울은 냉난방을 해야 해서… 습도가 40-50% 밑으로 내려갈 때가 많다. 우리집은 베란다라서 바깥 습도가 90%에 육박하는 올 여름 습도는 늘 70~80%를 유지하고 있다. 80%가 넘어가면 또 그 나름의 문제가 많아 머리를 싸매지만 얇은 잎의 칼라데아 친구들은 즐거운 것 같다. 하지만 건조한 겨울은 피할 수 없겠지….

베란다가 없고 베란다를 확장한 집이나 그냥 실내에 살고 있다면 공기중 높은 습도가 필요한 잎이 얇고 하늘하늘한 칼라데아 류의 식물은 좀 어렵다고 한다.

반대로 연중 습도가 낮은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이 자생지라는 둥근잎아카시아, 왁스플라워, 마오리소포라 이런 친구들은 우리집에서 어김없이 생사를 오고가는 중이다. 한달동안 물 한방울 안 줬는데 썩어서 죽은 녀석도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가 자생지면 베란다에서는 장마철을 넘기기 쉽지 않은 것 같다.

90%의 습도와 행복한 칼라데아 퓨전화이트씨
죽여줘… 를 외치던 마오리소포라씨….

한국의 실내는 온도보다 습도를 관리하기 어렵고 비싸기 때문에 우리집의 습도에 맞는 식물을 찾거나, 습도에 관대한 식물을 찾아야 한다.


물주기의 어려움

사람의 손이 직접 가는 부분은 물주기밖에 없는데, 이게 식물을 기르는 일의 거의 절반인 것 같다. 나머지 절반은 매일 식물의 변화를 꼼꼼히 살피는 일이다. 의외로 상당한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물주기가 어려운 이유는 딱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줘도 되는 식물은 없기 때문이다. 환경에 따라, 생육 상태에 따라 원하는 물의 양이라는 게 정해진 게 없다. 매일 임금님 문안인사 드리듯 똑똑… 식물님 물 마르십니까? 하고 물어본 뒤 드려야 되는데 식물 선생님은 물어봐도 말이 없다. 그러나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 죽고 잠시 바빠서 존재를 잊으면 말라죽고 만다.


도구를 활용하자

화분이 딱 하나나 두개라면 서스티라는 도구를 사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펜처럼 생겼는데 꽂아놓으면 식물 선생님이 목마른지 아닌지 색깔로 알려준다. 다만 가격이 8천원 정도로 비싸 여러 군데 꽂아놓기 어려운 게 흠이다.

예민한 마오리씨에게 끼워진 서스티. 파란색이면 물 안줘도 된다는 뜻이고 장마철엔 거의 한달에 한 번 주는 것 같다.

서스티 https://naver.me/GoBnL2BG

화분이 세 개 이상이라면 여기저기 꽂기 좋게 나온 토양 수분측정기를 이용해도 좋겠다. 내가 쓰고 있는 눈금 물주시개 말고도 여러 가지 종류가 나온다. 뿌리가 몰린 중앙을 피해 화분 여기저기 찔러본 뒤 평균을 내 눈금이 1-2 사이일 때 주면 대체로 과습 문제는 없었다.

눈금 물주시개 https://naver.me/50pu8our


과습과 건조에 관대한 식물을 찾아보자

하루에 한 번씩 식물 들여다보기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물을 말려서 죽게 된다. 식물은 수분을 줄기와 잎에 저장하게 되는데, 줄기가 가늘고 잎이 얇은 식물들은 대부분 며칠만 물 주는 걸 까먹어도 죽게 된다. 반대로 줄기라는 게 없다시피하고 이파리가 하드보드지보다 두꺼운 식물들은 물은 덜 필요하지만 햇빛을 짱짱하게 받아야 한다. 잎을 보거나 만졌을 때 마분지 정도 느낌이 나고, 잎의 구성이나 줄기/가지가 뚠뚠한 느낌이 드는 식물들이 인간의 게으름 및 바쁨에 관대한 편이다. 고무나무류나 크루시아가 그렇다. 쁘띠하고 작은 크기의 식물보다는 15cm정도 지름 화분에 심긴 뚠뚠한 친구들이 생존에 유리하다.

우리집 뚠뚠이들 3개월차의 모습. 벵갈고무나무, 떡갈고무나무, 아글라오네마

한 개보다는 세 개가 낫다

사실 이번이 화분을 나름 장기간 유지시키고 있는 첫 번째 해인데, 그건 처음에 화분을 세 개 샀기 때문인 것 같다. 딱 하나를 사면, 자주 들여다보고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아 쓸데없는 짓을 하며 식물을 괴롭히거나 혹은 그냥 잊혀진다. 처음에 세 개를 돌보게 되니, 쓸데없는 짓을 하기엔 주의가 분산되고 잊혀지기엔 나름의 존재감이 생겼던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분갈이를 해달라고 해서 와야 된다. 진짜 초보는 일단 3개월, 화분이 10개 되기 전까지는 화분을 자기 손으로 엎으면 안되는 것 같다(…)


3개월 죽이지 않기를 목표로

어떤 취미나 생활 패턴이 스며드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게 3개월인 점도 있고, 식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그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일단 3개월 이상 길렀다면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식물 명줄을 붙든 나 자신을 칭찬해 주자. 한국은 사계절국이기 때문에, 3월부터 3개월이 제일 쉽다…! 그 다음엔 사계절이 주는 위기가 닥쳐도 뭐라도 할 수 있는 경험이 조금씩 생기게 된다. 일단 나같은 베란다 인간에겐 장마가 최초의 고비였기 때문에 5월에 시작했으면 아마 때려치웠을 것 같다.


요약 - 식집사 입문 쉽게 하려면

1. 집안의 식물 놓을 위치를 기준으로 광량과 온습도를 미리 체크한다.(온습도는 온습도계로) 집안의 환경 조건을 벗어나지 않는 식물을 찾아본다.

2. 햇빛에 관대한 식물을 기른다.

스킨답서스

고사리류 중 일부

아글라오네마

스파티필름

개운죽

휘토니아

3. 습도 및 물주기에 관대한 식물을 기른다.

고무나무류(인도, 벵갈, 떡갈, 벤자민 등)

크루시아

몬스테라

드라세나 마지나타

지름 15cm 이상 화분에 심어진 뚠뚠한 식물 (클수록 죽기 어렵다)

4. 물주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한다.

토양 수분측정기

서스티

5. 복수의 식물로 시작한다.(옵션)

6. 되도록 봄에 시작해서 3개월 죽이지 않기를 목표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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