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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ug 13. 2022

벵갈고무나무, 나의 선생님

가지치기와 물꽂이에도 지치지 않는 엄청난 생명력

올 봄에 양재 꽃시장에서 아주 큰 벵갈고무나무를 샀었다. 사무실에서만 가끔 보이다 죽어서 사라지는 커다란 화분. 그동안은 큰 화분을 들여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겠다. 미술 전시회를 다니다보면, 큰 캔버스를 보며 멍때리는 것 자체가 작품의 특별한 경험이 될 때가 있다. 식물에게도 어쩌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예민하고 특이한 식물을 키울 자신은 없었기에 이 사이즈로 각 가정에 제일 많이 있을 고무나무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잎이 밝은 색에 무늬가 있는 벵갈이냐, 좀 어두운 곳에서도 견딜 수 있다는 떡갈이냐가 되었던 것 같다. 집이 오후에는 늘 어두웠기에 좀 밝은 색의 잎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벵갈이”는 우리집에 왔다.

처음 집에 왔던 무렵의 조신한 벵갈이. 옆에 있는 친구는 대품을 사지 못한게 아쉬워 사온 조그만 떡갈고무나무.

베란다  켠에 자리한  벵갈고무나무는  “벵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죽이는  문제가 아니라 너무 무식하게  자랐다. 하루하루 다르게 라니 식물이 아니라 동물 같았다. “   벵갈이 봐라.” 그렇게 되었다. 햇빛을 보겠다는 의지가 엄청난지  가지가 대책없이 마구마구 쑥쑥 자랐다. 심지어 나무 기둥에서도 줄기가 마구 자라서, 수염이   같았다. 수염이라도 잘라서 줄기라도 깨끗하게 해주자고 마음먹었다.

석햇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흐드러지게 자라기 시작한 벵갈이의 이파리는 7월이 되자 내 손 세 배정도 크기였다.

벵갈이의 수염을 잘랐다. 하얀 고무액이 철철 흘렀다. 어… 어떡해!! 주방 행주로 지혈하듯이 잘라진 줄기와 나무의 단면을 꾹 눌렀다. 진짜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자른 가지를 3주쯤 물꽂이하여 생긴 뿌리를 이마토 상토로 이마트 토분에 심어줬다. 이렇게 해도 새순이 난다고…? 이렇게 클론된 벵갈이들이 꽤 많아졌다.

그러고보니 물에 꽂으면 뿌리가 나서 고무나무로 키울 수 있다던데…? 호기심이 들어 음료 테이크아웃 컵에 꽂아봤다. 일주일 지나니 뭔가 울퉁불퉁한 게 돋아나더니 일주일 더 지나니 뿌리가 돋기 시작했다. 3주째 이마트 토분에 이마트 흙으로(…) 심으니… 흙에서 새 잎이 난다? 심지어 6월이라 바깥이 꽤 더웠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가지가 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점점 줄기 이발이 문제가 아니라 베란다를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가지는 뻗어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가지 굵기는 내 새끼손가락만했다. 아무 가위로나 대충 자르다가 굵기를 감당 못할 것 같아 나뭇가지를 자르는 가위를 샀다. 하지만 고무액이 철철 나오는 것도 무섭고 나무가 잘못될까봐 또 무서웠다. 식물을 많이 기르는 OTAKU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며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과감하게 뻗어나가는 메인 가지 중 두 개를 확 잘라내라고 하더라.

아… 아….

눈을 감고 잘랐더니 고무액이 50ml는 족히 나오는 것 같았다. 2리터 생수병에 물꽂이를 했다. 유튜브에선 잎에서 증산작용을 해서 잎을 자르는 편이 더 빨리 뿌리가 잘 나온다고 했지만 그 커다란 잎을 자를 엄두가 나질 않아 하나만 잘랐다. 이상하게 잎을 안 자른 줄기만 뿌리가 나오는 데 성공했다. 장마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성공한 가지들을 통기가 좋고 뿌리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반투명 슬릿분에 심었다.

얼마나 생명력이 대단한지 곧 뿌리가 무식할 정도로 화분에 돌기 시작했다. 두 번의 물꽂이 후 화분 심기를 거쳤더니 살아남은 벵갈이 클론이 무려 다섯 개였다.

그러나 벵갈고무나무는 흔한 데다 성장 속도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이라 주변에 아무리 “벵갈이 하나 몰고가세요~” 라고 해도 징그럽고 귀찮다며 안 데려가주었다. 결국 벵갈이의 클론들은 생일선물 구실로 아버지한테 간 하나 빼고는 다 우리집 베란다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벵갈이는 한달만에 자른 부분 옆에 난 새 가지들도 30센티 이상 자라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다. 일단 하나만 싹둑 자른 후 결국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 빼박 내향인인 내게는 더 이상 줄 데도 보관할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왠지 인기가 있는 듯 인기가 없는 벵갈고무나무지만, 0-38도/32%-90%까지 온습도가 오락가락하는 우리집에서도, 물을 잔뜩 줘도 말려도 생명력을 자랑하는 우리집 “벵갈이”는 신기하기만 하다. 알고보니 식물을 많이 키우는 사람들에 따르면, 크면 클수록 오히려 죽이기 어렵고, 더 적응도 잘하고 잘 자란다나. 너무 잘 자라는 나무로 이것저것 해 보니 식물을 자르거나 심는 데 겁을 덜 내게 되었다. 그 사이 내 키보다 조금 작았던 화분 크기는 반 년만에 키를 재보니 190cm에 가까워졌다. 강한 생명력으로 게으르고 힘없는 나를 이끌어주는 “벵갈이”는 어쩌면 나의 식물 기르기 선생님인지도.

이번달 초 결국 180도 돌리기형에 처해진 벵갈이…. 이 이후 약간 성장세가 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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