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와 물꽂이에도 지치지 않는 엄청난 생명력
올 봄에 양재 꽃시장에서 아주 큰 벵갈고무나무를 샀었다. 사무실에서만 가끔 보이다 죽어서 사라지는 커다란 화분. 그동안은 큰 화분을 들여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겠다. 미술 전시회를 다니다보면, 큰 캔버스를 보며 멍때리는 것 자체가 작품의 특별한 경험이 될 때가 있다. 식물에게도 어쩌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다. 그러나 예민하고 특이한 식물을 키울 자신은 없었기에 이 사이즈로 각 가정에 제일 많이 있을 고무나무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잎이 밝은 색에 무늬가 있는 벵갈이냐, 좀 어두운 곳에서도 견딜 수 있다는 떡갈이냐가 되었던 것 같다. 집이 오후에는 늘 어두웠기에 좀 밝은 색의 잎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벵갈이”는 우리집에 왔다.
베란다 한 켠에 자리한 큰 벵갈고무나무는 곧 “벵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무식하게 잘 자랐다. 하루하루 다르게 자라니 식물이 아니라 동물 같았다. “와 쟤 쟤 벵갈이 봐라.” 그렇게 되었다. 햇빛을 보겠다는 의지가 엄청난지 각 가지가 대책없이 마구마구 쑥쑥 자랐다. 심지어 나무 기둥에서도 줄기가 마구 자라서, 수염이 난 것 같았다. 수염이라도 잘라서 줄기라도 깨끗하게 해주자고 마음먹었다.
벵갈이의 수염을 잘랐다. 하얀 고무액이 철철 흘렀다. 어… 어떡해!! 주방 행주로 지혈하듯이 잘라진 줄기와 나무의 단면을 꾹 눌렀다. 진짜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물에 꽂으면 뿌리가 나서 고무나무로 키울 수 있다던데…? 호기심이 들어 음료 테이크아웃 컵에 꽂아봤다. 일주일 지나니 뭔가 울퉁불퉁한 게 돋아나더니 일주일 더 지나니 뿌리가 돋기 시작했다. 3주째 이마트 토분에 이마트 흙으로(…) 심으니… 흙에서 새 잎이 난다? 심지어 6월이라 바깥이 꽤 더웠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가지가 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점점 줄기 이발이 문제가 아니라 베란다를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가지는 뻗어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가지 굵기는 내 새끼손가락만했다. 아무 가위로나 대충 자르다가 굵기를 감당 못할 것 같아 나뭇가지를 자르는 가위를 샀다. 하지만 고무액이 철철 나오는 것도 무섭고 나무가 잘못될까봐 또 무서웠다. 식물을 많이 기르는 OTAKU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며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과감하게 뻗어나가는 메인 가지 중 두 개를 확 잘라내라고 하더라.
눈을 감고 잘랐더니 고무액이 50ml는 족히 나오는 것 같았다. 2리터 생수병에 물꽂이를 했다. 유튜브에선 잎에서 증산작용을 해서 잎을 자르는 편이 더 빨리 뿌리가 잘 나온다고 했지만 그 커다란 잎을 자를 엄두가 나질 않아 하나만 잘랐다. 이상하게 잎을 안 자른 줄기만 뿌리가 나오는 데 성공했다. 장마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성공한 가지들을 통기가 좋고 뿌리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반투명 슬릿분에 심었다.
얼마나 생명력이 대단한지 곧 뿌리가 무식할 정도로 화분에 돌기 시작했다. 두 번의 물꽂이 후 화분 심기를 거쳤더니 살아남은 벵갈이 클론이 무려 다섯 개였다.
그러나 벵갈고무나무는 흔한 데다 성장 속도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이라 주변에 아무리 “벵갈이 하나 몰고가세요~” 라고 해도 징그럽고 귀찮다며 안 데려가주었다. 결국 벵갈이의 클론들은 생일선물 구실로 아버지한테 간 하나 빼고는 다 우리집 베란다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벵갈이는 한달만에 자른 부분 옆에 난 새 가지들도 30센티 이상 자라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다. 일단 하나만 싹둑 자른 후 결국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다. 빼박 내향인인 내게는 더 이상 줄 데도 보관할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왠지 인기가 있는 듯 인기가 없는 벵갈고무나무지만, 0-38도/32%-90%까지 온습도가 오락가락하는 우리집에서도, 물을 잔뜩 줘도 말려도 생명력을 자랑하는 우리집 “벵갈이”는 신기하기만 하다. 알고보니 식물을 많이 키우는 사람들에 따르면, 크면 클수록 오히려 죽이기 어렵고, 더 적응도 잘하고 잘 자란다나. 너무 잘 자라는 나무로 이것저것 해 보니 식물을 자르거나 심는 데 겁을 덜 내게 되었다. 그 사이 내 키보다 조금 작았던 화분 크기는 반 년만에 키를 재보니 190cm에 가까워졌다. 강한 생명력으로 게으르고 힘없는 나를 이끌어주는 “벵갈이”는 어쩌면 나의 식물 기르기 선생님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