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렇게 무력하기만 하다
올 여름에 해가 쨍쨍 난 날은 아마 얼마 안 될 거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산으로 가버린 유일한 실친 겸 식친이 추천해준 화원에 가서 신나게 이것저것 사고 나서 딱- 열흘 정도 간헐적으로 그런 날이 있었다. 습도가 40% 간당간당에 오전 8-10시 사이에만 35도 넘게 온도 딱 찍어리는 날. 응애는 고온건조하면 생긴다면서요?
대부분 시간대 평균습도 80% 언저리를 유지하는 베란다에서 늘 잎샤워를 시켜주는 초보 식집사에게 이렇게 빨리 해충이 찾아올 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바깥이 쨍한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베란다로 뛰쳐나가 봤다. 둥근잎아카시아 나무 꼭대기까지 응애가 점령해 있었다. 거미줄까지 쳤으면 게임 끝이라던데….
또 호주가 자생인 식물이 우리집 베란다에서 한 건 하셨다. 의외로 같이 사온 응애밥으로 유명한 퓨전화이트는 멀쩡했다. 이 아카시아는 하얀 털이 송송 나있는 이파리가 많다보니 초보로서는 응애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깍지벌레는 몇 마리 기어다니는 정도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응애에 접수되지 않은 잎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거는 약국에서 산 비오킬 나부랭이로는 안되는 것이여. 특히 응애가 골치아픈 점은 곤충이 아닌 거미류 절지동물이라 웬만한 살충제는 안 듣는다는 것. 다행히 우리집에는 고양이나 어린이는 안 살고 있었으므로 빠르게 농약을 선택할 수 있었다.
농약은 안전상의 이유로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없으며, 전문 농약사에 가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식물카페들 질답에서는 특정 약을 언급하는 걸 금지하는 모양인데, 그래도 다들 알아서들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전문 농약사가 도시인의 집근처에 있지 않았다. 종로나 양재까지 가야 했다. 마침 그날 강남에 갈 일이 있어 가는 김에 양재에 갔다. 농약 및 농자재를 파는 가게가 세 군데 정도 관엽과 난을 파는 비닐하우스 두 동 옆에 있더라.
쭈뼛대고 있자니 바깥에 있는 분이 뭐사러 오셨냐… 그래서 “응애가 생겼어요” 하니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안에 들어가니 엄청 큰 창고같은 공간이 있었고 어르신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뭐사러 오셨냐… “응애가 생겼어요 ㅠㅠ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거 응애 맞죠…” “하얀것은 응애고 까만것은 깍지벌레인가요” “그럼 두개 사셔야 되네…” 하며 작은 약통 두 개가 건네졌다.
그러나 농약을 한 번도 뿌려본 적 없는 도시민은 그냥 약을 치는 데 대한 기본 지식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나 : 이거 얼마나 뿌려야 돼요?
주인 : 1리터에 1숟갈 느세요. 벌레 생긴 건 1주에 2번 4번 뿌리시고. 벌레 없는 건 1주에 1번 두번 뿌리시고.
나 : 몇 g 넣으면 돼요?
주인 : 찻숟갈 하나요. 분무기는 있어요?
나 : 없는데요…….
주인 : 저런 식으로 뿌리는 거 있어야 돼요. (농약용 분무기 2종 가리키며)
나 : 아앗 아…
그렇게 농약 20ml짜리 두 개와 1리터짜리 압축분무기 하나를 사갖고 나왔다. 도시농부 비슷한 게 된 것일까. 식물에게 해충이 한번 생기는 것은 전염병이 걸린 것과 같다. 주변 식물들에도 알을 까거나 흙에 들어갔을 지도 모르므로 근처나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식물들도 방제해야 한단다. 모든 식물들에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번 분무기로 농약 희석액 샤워를 하고, 해충이 생긴 식물(둥근잎아카시아)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네 번 뿌려주는 식으로 방제를 하면 된다고 했다.
심지어 나는 이 압축분무기라는 걸 뜯어보고 사용설명서가 없어 당황했다. 포장지에 라벨만 하나 붙어있었는데 거기에 쓰여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1. 헤드를 분리하지 말 것 (뭐야 이건 뚜껑을 빼면 안되나..? - 아니었다 무리하게 분무기 위쪽 부품을 문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던듯 )
2. 사용 후 압축공기를 뺄 것 (어떻게..? - 작은 제품이어서 헤드를 빼기 전에 물구멍을 돌려 열면 ok였음)
(후략)
내가 양재에서 구입한 압축 분무기는 이것으로 오프라인으로는 쫌 더 비싸다.
결국 압축분무기 사용법을 검색해서 네이버 블로그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욕조에서 따라해가며 한번 연습해보고 나서야 무기를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1리터짜리라서 물 주입구멍을 여는 것으로 바람이 빠지게 되어 있는 간단한 것이었고, 펌프압축을 많이 해야 공기 압력을 받아 세게 나가더라.
그러나 이때 이미 베란다 화분은 15개가 넘어가고 있었으니… 한여름 베란다에서 일일이 뿌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저독성이라도 농약은 농약이므로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긴팔에 긴바지 입고 양말 신고 비장하게 한시간 반 간격으로 두 가지 종류의 약을 전체살포한 날은 특히 그랬다. 나에게는 초대형 벵갈이 및 벵갈이 2,3,4가 있었기에 더 그랬다. 게다가 온 바닥이 흥건하게 농약을 뿌리고 나면 베란다 청소를 하는 것도 엄청 일이었다. 노린재부터 3cm짜리 바퀴벌레까지 마구 떠내려왔다. 오랫동안 바닥청소를 하지 않던 공간이라 식물과 관계없는 온갖 곤충들… 거미들도 있었다. 탈진해서 죽을 것 같았다. 가족들은 전업 농부될 기세라고 놀려대기 바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의외의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식물 커뮤니티의 양대 응애맛집은 알로카시아와 칼라데아 퓨전화이트(그리고 칼라데아류)인데, 칼라데아 퓨전화이트는 멀쩡했다.
그리고 예방용으로도 한번정도 뿌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 예쁜 식물을 만나면 아 모르겠다 들어올때 방역 한다~! 하고 온오프라인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사게 됐다. 아무래도 나의 미감은 응애의 미각과 공유라도 하는 것인지 와 예쁘다~! 하면 네 다음 응애밥~~~~ 해서 좌절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총채벌레같이 아직 안만나본 친구나 뿌리파리처럼 날개달린 애들보다는 응애가 나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응애는 농약에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재발이 잘 돼서 같은 농약을 계속 치면 안되고, 첫 방제때도 다른 성분의 약을 매주 교차해서 뿌려주는 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깍지벌레약 뿌리느라 그렇게까진 못했지만, 아직 그 뒤로는 살아있는 해충을 본 적은 없다. 아직 그 방제지옥으로부터 약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 새 식물을 들일 때 10일간 완전격리할 공간까진 없으니 조금 먼 다른 구석에라도 기존에 있는 화분들과 멀리 격리하고, 해충이 나오는지 아닌지 매일 예의주시한다.
2. 새 식물이 격리된 10일간의 처음에는 비오킬 샤워를 해주고, “총진싹”이라는 흙에 작용해서 알과 애벌레를 없애준다는 제품을 두르고 흙에 분무한다. 가루 형태이고 물에 녹아 작용한다고 한다.
3. 새 식물이 3-4일 지나 안정화되면 웰컴농약을 한번 뿌려준다.(응애, 깍지벌레)
4. 혹시 조그마난 해충이나 흔적같은 것이라도 없을까 매일 새벽 잎을 검사해보는 습관이 생겼다….(하지만 봐야 잘 모르긴 함)
5. 베란다 문을 열어놓는 것 이외에 별도의 통풍 수단인 서큘레이터를 설치하고, 습도 및 공기 순환에 좀 더 신경쓰게 되었다. 다행히 이사 오기 전에 쓰던 게 있어서 돈 쓰는 일만은 면했다.
6. 식물을 사고 싶을 때 늘 내 체력상 하루에 몇 개의 화분까지 전체방제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7. 갑자기 농약사를 찾아가야 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자주 생기는 케이스에 대비한다. 뭔가 마음의 안정을 준다… 어차피 식물과 곤충은 한 세트인데 인간 생활공간에서만큼은 그들을 못 견딜 뿐이다. 개체수를 줄이며 공존하는 마음가짐까지 가지면 식물 고수라는데, 난 아직 거기까지 갈려면 먼 것 같다.
한편 아카시아에 2주, 4번에 거쳐 농약을 뿌리고 나서 이파리를 보니 성한 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누런 반점이 면적의 30% 이하인 잎만 남기고 다 잘라내기로 했다. 가지 끝의 새 잎 몇 가지만 겨우 남아버렸다. 완전삭발은 아니고 모히칸 스타일쯤 되는 것 같은 앙상한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응애에 그렇게까지 심하게 당했는데 회복할 수 있을까? 다행히 요즘은 좀 회복하긴 했다.
그나마 사이즈가 크고 줄기가 목질화(식물은 성장하며 풀 -> 나무 재질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가 되었으니 망정이지 쪼매난 화분에 저렇게 왔으면 식물이 죽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초보자일수록 너무 작지 않은 화분으로 시작하는 게 유리한 이유다.
해충을 처음 만난 당일에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해충, 내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없다시피한 지식 및 요령에 절망했었다. 그래도 이제부터 배워나가면 된다며 곧 이상하게 씩씩해져서 또 식물을 사고 있다. 하지만 새로 인터넷 배송온 식물과 그 흙에서 나오는 미지의 생명체들에는 아직 깜짝깜짝 놀라고 마는 걸 보면 초보탈출은 이래저래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