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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Aug 24. 2022

해충과의 전쟁

인간은 이렇게 무력하기만 하다

올 여름에 해가 쨍쨍 난 날은 아마 얼마 안 될 거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산으로 가버린 유일한 실친 겸 식친이 추천해준 화원에 가서 신나게 이것저것 사고 나서 딱- 열흘 정도 간헐적으로 그런 날이 있었다. 습도가 40% 간당간당에 오전 8-10시 사이에만 35도 넘게 온도 딱 찍어리는 날. 응애는 고온건조하면 생긴다면서요?

대부분 시간대 평균습도 80% 언저리를 유지하는 베란다에서 늘 잎샤워를 시켜주는 초보 식집사에게 이렇게 빨리 해충이 찾아올 줄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바깥이 쨍한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베란다로 뛰쳐나가 봤다. 둥근잎아카시아 나무 꼭대기까지 응애가 점령해 있었다. 거미줄까지 쳤으면 게임 끝이라던데….

1미터 높이의 아카시아나무 꼭대기까지 응애에 점령당해 있었다.
하얀건 응애요 노란건 응애자국이고 새카만건 깍지벌레라

또 호주가 자생인 식물이 우리집 베란다에서 한 건 하셨다. 의외로 같이 사온 응애밥으로 유명한 퓨전화이트는 멀쩡했다. 이 아카시아는 하얀 털이 송송 나있는 이파리가 많다보니 초보로서는 응애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깍지벌레는 몇 마리 기어다니는 정도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응애에 접수되지 않은 잎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거는 약국에서 산 비오킬 나부랭이로는 안되는 것이여. 특히 응애가 골치아픈 점은 곤충이 아닌 거미류 절지동물이라 웬만한 살충제는 안 듣는다는 것. 다행히 우리집에는 고양이나 어린이는 안 살고 있었으므로 빠르게 농약을 선택할 수 있었다.


농약은 안전상의 이유로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없으며, 전문 농약사에 가야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식물카페들 질답에서는 특정 약을 언급하는 걸 금지하는 모양인데, 그래도 다들 알아서들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전문 농약사가 도시인의 집근처에 있지 않았다. 종로나 양재까지 가야 했다. 마침 그날 강남에 갈 일이 있어 가는 김에 양재에 갔다. 농약 및 농자재를 파는 가게가 세 군데 정도 관엽과 난을 파는 비닐하우스 두 동 옆에 있더라.


쭈뼛대고 있자니 바깥에 있는 분이 뭐사러 오셨냐… 그래서 “응애가 생겼어요” 하니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안에 들어가니 엄청 큰 창고같은 공간이 있었고 어르신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뭐사러 오셨냐… “응애가 생겼어요 ㅠㅠ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거 응애 맞죠…” “하얀것은 응애고 까만것은 깍지벌레인가요” “그럼 두개 사셔야 되네…” 하며 작은 약통 두 개가 건네졌다.


그러나 농약을 한 번도 뿌려본 적 없는 도시민은 그냥 약을 치는 데 대한 기본 지식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나 : 이거 얼마나 뿌려야 돼요?

주인 : 1리터에 1숟갈 느세요. 벌레 생긴 건 1주에 2번 4번 뿌리시고. 벌레 없는 건 1주에 1번 두번 뿌리시고.

나 : 몇 g 넣으면 돼요?

주인 : 찻숟갈 하나요. 분무기는 있어요?

나 : 없는데요…….

주인 : 저런 식으로 뿌리는 거 있어야 돼요. (농약용 분무기 2종 가리키며)

나 : 아앗 아…


그렇게 농약 20ml짜리 두 개와 1리터짜리 압축분무기 하나를 사갖고 나왔다. 도시농부 비슷한 게 된 것일까. 식물에게 해충이 한번 생기는 것은 전염병이 걸린 것과 같다. 주변 식물들에도 알을 까거나 흙에 들어갔을 지도 모르므로 근처나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식물들도 방제해야 한단다. 모든 식물들에 일주일에 한 번씩 두 번 분무기로 농약 희석액 샤워를 하고, 해충이 생긴 식물(둥근잎아카시아)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네 번 뿌려주는 식으로 방제를 하면 된다고 했다.


심지어 나는 이 압축분무기라는 걸 뜯어보고 사용설명서가 없어 당황했다. 포장지에 라벨만 하나 붙어있었는데 거기에 쓰여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1. 헤드를 분리하지 말 것 (뭐야 이건 뚜껑을 빼면 안되나..? - 아니었다 무리하게 분무기 위쪽 부품을 문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던듯 )

2. 사용 후 압축공기를 뺄 것 (어떻게..? - 작은 제품이어서 헤드를 빼기 전에 물구멍을 돌려 열면 ok였음)

(후략)

내가 양재에서 구입한 압축 분무기는 이것으로 오프라인으로는 쫌 더 비싸다.​

결국 압축분무기 사용법을 검색해서 네이버 블로그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욕조에서 따라해가며 한번 연습해보고 나서야 무기를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1리터짜리라서 물 주입구멍을 여는 것으로 바람이 빠지게 되어 있는 간단한 것이었고, 펌프압축을 많이 해야 공기 압력을 받아 세게 나가더라.


그러나 이때 이미 베란다 화분은 15개가 넘어가고 있었으니… 한여름 베란다에서 일일이 뿌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저독성이라도 농약은 농약이므로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긴팔에 긴바지 입고 양말 신고 비장하게 한시간 반 간격으로 두 가지 종류의 약을 전체살포한 날은 특히 그랬다. 나에게는 초대형 벵갈이 및 벵갈이 2,3,4가 있었기에 더 그랬다. 게다가 온 바닥이 흥건하게 농약을 뿌리고 나면 베란다 청소를 하는 것도 엄청 일이었다. 노린재부터 3cm짜리 바퀴벌레까지 마구 떠내려왔다. 오랫동안 바닥청소를 하지 않던 공간이라 식물과 관계없는 온갖 곤충들… 거미들도 있었다. 탈진해서 죽을 것 같았다. 가족들은 전업 농부될 기세라고 놀려대기 바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의외의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식물 커뮤니티의 양대 응애맛집은 알로카시아와 칼라데아 퓨전화이트(그리고 칼라데아류)인데, 칼라데아 퓨전화이트는 멀쩡했다.

장마철의 집을 좋아하는 듯한 퓨전화이트씨

그리고 예방용으로도 한번정도 뿌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 예쁜 식물을 만나면 아 모르겠다 들어올때 방역 한다~! 하고 온오프라인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사게 됐다. 아무래도 나의 미감은 응애의 미각과 공유라도 하는 것인지 와 예쁘다~! 하면 네 다음 응애밥~~~~ 해서 좌절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총채벌레같이 아직 안만나본 친구나 뿌리파리처럼 날개달린 애들보다는 응애가 나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응애는 농약에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재발이 잘 돼서 같은 농약을 계속 치면 안되고, 첫 방제때도 다른 성분의 약을 매주 교차해서 뿌려주는 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깍지벌레약 뿌리느라 그렇게까진 못했지만, 아직 그 뒤로는 살아있는 해충을 본 적은 없다. 아직 그 방제지옥으로부터 약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해충파티 이후로 달라진 점

1. 새 식물을 들일 때 10일간 완전격리할 공간까진 없으니 조금 먼 다른 구석에라도 기존에 있는 화분들과 멀리 격리하고, 해충이 나오는지 아닌지 매일 예의주시한다.

2. 새 식물이 격리된 10일간의 처음에는 비오킬 샤워를 해주고, “총진싹”이라는 흙에 작용해서 알과 애벌레를 없애준다는 제품을 두르고 흙에 분무한다. 가루 형태이고 물에 녹아 작용한다고 한다.

3. 새 식물이 3-4일 지나 안정화되면 웰컴농약을 한번 뿌려준다.(응애, 깍지벌레)

4. 혹시 조그마난 해충이나 흔적같은 것이라도 없을까 매일 새벽 잎을 검사해보는 습관이 생겼다….(하지만 봐야 잘 모르긴 함)

5. 베란다 문을 열어놓는 것 이외에 별도의 통풍 수단인 서큘레이터를 설치하고, 습도 및 공기 순환에 좀 더 신경쓰게 되었다. 다행히 이사 오기 전에 쓰던 게 있어서 돈 쓰는 일만은 면했다.

6. 식물을 사고 싶을 때 늘 내 체력상 하루에 몇 개의 화분까지 전체방제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7. 갑자기 농약사를 찾아가야 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자주 생기는 케이스에 대비한다. 뭔가 마음의 안정을 준다… 어차피 식물과 곤충은 한 세트인데 인간 생활공간에서만큼은 그들을 못 견딜 뿐이다. 개체수를 줄이며 공존하는 마음가짐까지 가지면 식물 고수라는데, 난 아직 거기까지 갈려면 먼 것 같다.

기존의 응애약을 새 식물마다 웰컴샤워 해줬더니 다 떨어져서 성분이 다른 응애약과 종합살충제로 유명한 빅카드를 종로 농약사에서 구입했다. 양재보다는 판매단위가 크고 저렴한 편이다.

삭발

한편 아카시아에 2주, 4번에 거쳐 농약을 뿌리고 나서 이파리를 보니 성한 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누런 반점이 면적의 30% 이하인 잎만 남기고 다 잘라내기로 했다. 가지 끝의 새 잎 몇 가지만 겨우 남아버렸다. 완전삭발은 아니고 모히칸 스타일쯤 되는 것 같은 앙상한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분재 전문가 사장님이 아름답게 잘라준 수형이…

응애에 그렇게까지 심하게 당했는데 회복할 수 있을까? 다행히 요즘은 좀 회복하긴 했다.

그럭저럭 회복하여 새 이파리 수가 좀 많아졌다!

그나마 사이즈가 크고 줄기가 목질화(식물은 성장하며 풀 -> 나무 재질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가 되었으니 망정이지 쪼매난 화분에 저렇게 왔으면 식물이 죽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초보자일수록 너무 작지 않은 화분으로 시작하는 게 유리한 이유다.


해충을 처음 만난 당일에는 변화무쌍한 날씨와 해충, 내 분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없다시피한 지식 및 요령에 절망했었다. 그래도 이제부터 배워나가면 된다며 곧 이상하게 씩씩해져서 또 식물을 사고 있다. 하지만 새로 인터넷 배송온 식물과 그 흙에서 나오는 미지의 생명체들에는 아직 깜짝깜짝 놀라고 마는 걸 보면 초보탈출은 이래저래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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