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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Sep 06. 2022

국민식물선반 레르베리로 온실 만들기

레르베리보다 부자재가 더 비싼 기가막힌 후기

초보 식집사의 월동준비는 8월 15일부터였다. 8월 15일의 뜨거운 태양이 한 번 지나가고 이상하게 밤바람이 선선해지다가 처서가 지나고 추석이 지나고 금방 겨울이다 응? 가을은 해가 갈 수록 짧아져서 간절기 옷도 안 산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게다가 올해는 식물과 함께 산 지 반 년밖에 안 되었건만, 광기의 칼라데아 수집으로 10종이 넘는 칼라데아가 베란다에 입주해 있었다. 이 친구들은 15도가 되면 실내에 들여야 한다는데, 사실 온도보다도 습도가 문제다. 60-70%의 고습도라는 건 보통이라면 장마철 한때, 길어야 한 3주 정도나 있을 일이다. 올해 여름 날씨는 정말 이상해서, 베란다 습도가 갑자기 쨍- 해지는 날은 30%대, 아닌 날은 80-90%를 찍었다. 아열대 기후마냥 맑은 날에도 오후와 새벽에는 종종 소나기가 왔다. 오전 8시엔 30%, 오후 7시엔 70%였다. 맑은 날이라면 오후 3시를 기점으로 50%를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8월 15일은 오고 가을이나 겨울에도 이럴 수는 없음을 사계절국의 인간이라면 몸으로 안다. 첫째로 부족한 습도와 광량을 보전할 온실이 필요했고, 둘째로 늘어나서 더이상 컴퓨터 보조책상 하나만으로 견디기 어려워진 식물전용 수납선반이 필요했다.


국민식물선반 레르베리

식물선반 분야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 있다. 바로 이케아 레르베리다.

https://www.ikea.com/kr/ko/p/lerberg-shelf-unit-white-60168529/

식물 전용으로 나온 것도 아니건만, 모든 식물 유튜버와 블로거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 제품! 처음에는 레르베리만은 사고 싶지 않았다. 이유도 참 가지가지였다.


1. 모두가 쓰는 걸 쓰고싶지 않다.

2. 묘하게 구조가 허술해보여 무거운 토분이 많은 우리집 식물을 감당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3. 현재 식물 수에 비해 수납공간이 많아질텐데 그럼 생기는 만큼 또 사서 진짜 식물 광인의 길로 접어들 것 같다.

4. 식물이라는 건 자라는데 선반 높이조절이 여의치 않은 구조다.

5. 선반이 사방으로 통해있고 바닥에 구멍이 뽕뽕 뚫린 구조라 온실을 만들 때 부자재로 막아야 할 면적이 넓다.


번호를 매긴 항목에서 뒤로 갈수록 이유가 합리적이 되지만 사실은 앞에 꼽은 느낌적인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서 실제 이케아에 가서 다른 선반 제품들과 비교해 봤는데 레르베리가 국민 식물 선반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타 제품에 비해 압도적으로 싸다.(21,900원)

2. 무게가 가볍고 구조가 간단해서 조립 및 이동이 쉽다.

3. 최대 하중이 10kg로, 의외로 웬만한 화분은 감당할 수 있다.

4. 식물 선반으로 이케아를 최우선 고려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데, 레르베리 역시 모듈식 디자인이라 늘리거나 뺐을 때 어색하지 않다.

5. 사방이 뚫린 철망 선반이라 빛과 공기가 잘 통하고 식물등 등의 여러 기구를 설치하기 쉽다.

6. 두번째, 세번째 칸은 키가 40cm 미만인 작은 화분만 들어가지만, 최하단 칸의 높이가 은근히 높아 약간 큰 화분도 들어간다.

7. 맨 윗칸의 높이가 평균 여성 신장의 어깨높이 정도라 제일 윗칸에 화분을 둬도 케어하는 데 문제가 없다. 또 베란다 난간의 키를 넘어가기 때문에 날씨만 좋다면 햇빛을 받기도 유리하다. (키 1미터 다되고 화분 지름이 24cm인 중품 토분 화분을 놓기에는 안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걸 놓는다면 제일 윗칸 선반은 빼야 한다.)

8. 그래서 모두가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출시된 모든 바형 식물등이 모두 이 선반의 길이와 높이, 재질에 딱 맞춰서 만들어져 있다.


레르베리로 수납과 온실을 겸해보기로 했다

다만 사전조사를 해 본 결과 이 선반으로 온실을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뚫린 부분이 많아 밀폐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열대 출신의 실내 관엽식물을 너무 많이 기르는 사람(a.k.a. 식덕)들은 겨울에는 온습도를 인공으로 맞춰주기 위해 온실이라는 환경을 싸게든 비싸게든 제작해 사용하고 있었다. 선밴님들의 발자취를 누워서… 싸이버로… 열심히 따라간 뒤 나는 레르베리 하단 두 칸을 온실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부자재값이 더 들겠지만 레르베리 자체가 너무 싸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식덕들이 온실을 만드는 방법

1. 다이소 테이블 캐리어 및 리빙박스

가격이 저렴하고 밀폐력이 좋아 선호되는 방법이다. 다만 내가 똥손인 관계로 이걸로 케어되는 정도의 유묘는 애초에 사지 않았으므로 패스.

이거…

2. 투명케이크박스 및 김장비닐봉투

가격이 저렴하고 큰 식물도 커버되나 식물의 관상이 저해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온실에 넣지 못한 식물들이 쭈굴대면 나도 이쪽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3. 이케아 소케르

이케아에서 정말 식물 온실로 쓰라고 만든 제품이다. 예쁘지만 밀폐가 안 되어 추가 부자재 없이는 온실로서 기능을 못한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보니 이음새 사이 틈새가 1-2mm는 족히 되어 보였다.

https://www.ikea.com/kr/ko/p/socker-greenhouse-white-90191726/ ​


4. 이케아 밀스보, 파브리셰르 등의 유리 수납장

온실로서의 기능을 제법 하면서 수납공간 또한 넉넉하여 선호된다. 식물등 설치도 되는 모양으로, 완제품 온실로서 가장 저렴하고 예쁜 점도 있다. 그러나 더럽게 무거워 위치 이동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나도 다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렇게 무겁고 큰 수납장은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집의 구석자리에만 고정될 수 있다. 식물등이 아무리 좋아도 평생 햇빛을 못 보게 되는 건 불쌍하다. 나의 사랑 칼라데아들이 장마철.. 아니 이제 아열대 우기 두어달 정도는 베란다에 들어오는 햇빛을 받았으면 했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인 선택지가 제외되었다.

https://www.ikea.com/kr/ko/p/milsbo-glass-door-cabinet-white-10396425/ ​


5. 커스텀 식물 전용장, 비닐하우스 제작 등

개인이나 업체가 실내식물 환경에 적합하게 커스텀 제작해서 판매하는 온실들이 있다. 온실로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하겠지만 초보따리가 쓰기엔 너무 비쌌다.


레르베리로 간이온실을 만든 방법

1. 레르베리 하단 두 칸의 삼면을 pvc 비닐로 싸서 네오디뮴 강력자석으로 붙인다.

2. 두번째 선반과 맨 아래 선반을 pvc 비닐로 덮어 막는다.

3. 하단 두 칸의 전면은 아크릴로 막아 식물의 관상을 확보한다. 아크릴 역시 네오디뮴 강력자석으로 고정한다.

일단 비니루로 다 막아!! feat. 돌돌말려 온 선반용 비닐을 펴기 위한 우리집 벽돌책들

그냥 나머지는 비니루로 막고 맨 앞은 아크릴로 막고 모든 것은 네오디뮴 강력자석으로 붙인다는 굉장한 게으름뱅이가 할 법한 단순한 계획이다. 사실 강력자석보다는 벨크로가 쌀 것이 확실했으나 레르베리가 사다리꼴이고 기둥 안에 선반이 고정되는 구조라서 겉모양이 울퉁불퉁했기에 곰손과 다름없는 내 솜씨로 잘 붙일 것 같지 않았다. 비닐과 아크릴은 대부분 재단을 해주니 대충 맞춰 한 뒤 자석으로 붙이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시행착오

실제작에서 예상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두 가지였는데, 비닐과 아크릴이 자석으로 붙이기 너무 무거웠고 생각보다 자석이 비쌌다는 점이다. 튼튼하게 재사용하려고 pvc를 0.5mm로 주문했는데 너무 무거워 모서리에만 자석을 붙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여러 번 자석을 많이 구매하느라 자석값이 레르베리값보다 더 들게 되었다.


비닐은 그래도 자석의 갯수를 늘리니 붙었지만 2mm로 할래다가 너무 휜대서 3mm로 주문한 정면 아크릴 문이 문제였다. 원래 계획은 아크릴집에서 해주는 기본 가공인 10mm 원형 타공을 이용해 그 안에 10mm 지름에 3mm 두께의 자석을 강력본드로 붙여보고 그 정도 자력으로 안 붙으면 자석 여러개를 모서리에 겹쳐 붙여 걸어보자는 계획이었다.


어… 일단 뭘로도 자석은 아크릴 구멍의 절단면에 붙지 않았다. 망했다…. 다행히 2안이었던 자석걸이는 12mm까지 겹쳐보니 성공했다. 윗칸만….

아랫칸은 무슨짓을 해도 안 붙어!!!

화가 나서 무게도 달아봤는데 200g 남짓 차이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하다가 아크릴 모서리에 자석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크릴의 반질반질한 면에는 오공본드로 자석을 붙일 수 있었다. 가장자리를 자석으로 꽉 채우니 미관은 좀 그렇지만 그제서야 고정이 됐다. 비록 아크릴 가장자리는 본드자국으로 엉망진창이지만 레르베리가 흰색이라 붙이니 별로 티가 안 났다. 결국 귀찮아서 아세톤이랑 알콜로만 대충 닦고 본드 전용제거제를 안 샀다.

생각보다 막기 힘들었다 ㅠㅠ

이 수준의 밀폐만으로 습도유지가 가능하지는 않다 - 미니 가습기 구매

식물이 밀폐된 좁은 공간 안에 모이면 몇 번의 분무만으로 자연가습이 되어 습도가 유지된다던데 당연히 내 경우엔 아니었다. 일단 자석들 사이에 틈이 있으니까 완전밀폐가 아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케아 유리 수납장들이랑 거의 비슷한 수준일텐데..? 라고 생각하며 유튜브를 뒤적거리니 대부분 가습기를 하나쯤 놓고 쓰고 계셨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usb 전원으로 작동하는 미니 가습기를 샀고 적어도 가습기가 작동하는 동안은 80% 정도의 습도가 유지되었다. 미니가습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이 좋은 오아 제품을 선택했다. 자사몰에서 사면 3천원 깎아준다.


오아 듀얼미스트 가습기 oa-hm048 - 29,800원

https://m.oa-mall.co.kr/product/detail.html?product_no=360&cate_no=53&display_group=1 ​


온실용 식물등은 비싸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있었는데, 습도가 높은 온실용 식물등은 방수처리가 되어 있어야 해서 비싸다는 점이었다. 나는 컴퓨터 보조책상 밑에 플랜터스의 바형 식물등을 붙여 사용하는데, 기존에 쓰던 3만 5천원짜리 세 줄을 못 달고 7만원짜리 세 줄을 달아야 했다. 플랜터스 식물등의 장점이 식물등과 팬을 한꺼번에 연결해 자석으로 달 수 있다는 것인데 연결선과 등이 방수처리된 건 가격이 좀 더 비쌌고, 스위치도 없었다. 다행히 칼라데아 친구들은 빛을 많이 요구하지 않으므로… 온실로 만든 두 칸 중 위층에만 식물등을 달았다. 식물등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는 게, 빛이 베란다의 창과 pvc 두 겹을 통과하기 때문에 필요하긴 했다고 정신승리를 했다. 결국 우리집의 모든 식물 가격보다 식물등 4개의 가격이 더 비싸지게 되었지만, 아열대성 우기와 겨울이 있는 사계절국의 초기 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게 된 바형 식물등은 두 가지가 되었다. 곰팡이와 해충방지를 위해 서큘레이터와 안쓰는 핸드선풍기를 넣어 동작하게 했다.(응애+깍지벌레 콤보의 트라우마)


플랜터스 온실용 식물등 - 1칸 완제품 https://naver.me/G6DwQgUK​ 71,000원​

온실용 서큘레이터 https://naver.me/xw6Lxz8Y​ 10,000원​

플랜터스 비온실용 식물등 - 1칸 완제품 https://naver.me/F3ovEd3B​ 32,000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온실을 만든 총 비용 (식물등/전용서큘레이터 제외) : 레르베리 < 부자재

레르베리 - 21,900원

방풍비닐 0.5mm 130*85 - 5,850원

투명매트 2mm 60*33, 54*24 - 7,500원

아크릴 3T 60*46, 60*36 - 23,600원

원형 네오디뮴 강력자석 10mm*2.5mm~10mm 다수 - 24,150원 (배송비 2회 5,000원 포함)

자석 외 배송료 - 9,000원

가습기 - 26,800원

온도계 - 9,900원

합계 - 132,800원

레르베리 선반보다 부자재 비용이 훨씬 더 들었다. 자석을 세 번 주문한 건 시행착오라 어쩔 수 없지만 미리 알았으면 비닐과 아크릴 양 쪽 다 좀 얇은 것으로 주문했을 것 같다. 최저가 검색을 딱히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더 싼 곳이 있을 수 있겠다.


식물 비용 < 온실 + 식물등

온실+식물등+서큘레이터 = 226,800원

온실이 필요한 식물 (칼라데아류 14종 전체) = 142,300원 - 사실 이 중 절반 정도만 들어갈 듯.

이렇게 만든 온실에는 고사리 하나랑 칼라데아 다섯 개가 들어가 있다. 아마 화분 한두개 정도가 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칼라데아들은 대부분 그렇게 희귀하거나 비싸지는 않으니 식물보다 설비가 비싼 셈이다.


그래도 늬들이 행복하다면 됐어

영원할 것 같은 장마를 가장한 우기도 거의 끝이 보인다 싶었는데 태풍이 오는 가운데 글을 쓰고 있다. 그래도 처서가 지나고 8월 말이 되니 비가 아무리 와도 습도가 70% 정도만 찍는 게 희한하다. 건조한 날이 늘어났음에도 그 예민하다고 소문난 친구들은 아직 괜찮다. 요즘처럼 비가 연속으로 오는 날은 문을 열어서 환기도 시키고 가습기도 좀 쉬어 주고 있다. 이상하게 칼라데아보다 쭈굴해지던 고사리가 제일 신난 것 같지만 너희들이 행복하다면 됐단다. 하며 매일 식멍을 때린다. 그래도 습도는 인간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지 조금 흐뭇해하면서.


덧붙이자면, 기가막히게 자리가 생긴 만큼 식물을 더 샀다. 겨울이 되기 전에 칼라데아들을 집에 열심히 적응시킬 예정이다.

아직 최종이 아니다(…)
의외로 온실을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고사리로 밝혀져… 맨 왼쪽 잎이 온실에서 새로난 잎이고, 연두색 쭈굴이들이 온실 들어가기 직전이 난 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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