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림 Oct 03. 2022

7. 마오리소포라

죽을듯 살듯 마르거나 누런 잎을 떨어뜨리며 그래도 계속 버틴다

집에서 180일(반 년) 이상 살아남은 식물의 돌봄에 대해 기록합니다.

기본 정보

학명 / 소속 - Sophora prostrata 'Little Baby' / 콩과 소포라속

유통명(키워드) - 마오리소포라

자생지 - 뉴질랜드 (호주 뉴질랜드 식물은 실내와 장마철이 힘들다고 하셨어)

관리/돌봄 방법

난이도 - 매우 어려움 (빛, 습도, 물주기 모두 까다롭고 환경 변화 자체에도 예민함)

빛 - 반양지 (인데 웬만한 무늬식물보다 어쩌란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스타일로 까다로움)

물주기 - 과습 및 건조에 모두 예민해서 아예 처음부터 서스티가 꽂혀있었고 아묻따 서스티님 색이 하얗게 될 때 제깍제깍 잎샤워 시키며 듬뿍 드림. 다만 물소모는 그렇게 빠르지 않아 체감상 텀은 최소 10일 이상 되는 것 같다.

습도 - 중간 (40~70%) 범위를 벗어나면 무지막지하게 하엽지기 시작함

온도 - 10~20도

최저온도 - -8도 (10도 이상 권장)

성장속도 - 성장… 하니?

병충해 이력 - 깍지벌레

획득 정보

연월 - 2022년 3월

분갈이 - 할 생각 없음 (나 주제에 분갈이를 해도 됩니까?)

처음 / 6개월 반 후

“식물 초보가 이런 여리여리한 식물을 키워도 돼?”

처음 이 식물을 친구가 준다고 했을 때 한 말이었다. 친구는 소포라 화분이 두 개라서 하나는 나한테 주고 싶다고 했다. 북향의 사무실 창가에서 자란 강한 뚠뚠이라고! 가지도 소포라중에선 엄청 굵은 거라고!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인데, 이걸 대한민국 사무실에서 키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아니라 숲의 정령 드루이드 같은 거 아닐까..? 아무것도 몰랐던 데다 원래 누가 뭘 주면 거절하지 않는 성격이라 또 고맙다고 하고 술을 새벽까지 마시고는 핑크프린세스 삽수와 함께 우리집에 들고왔다.

드루이드 친구가 사무실 북향 창가에서 기르던 뚠뚠이 시절의 마오리소포라.

하지만 우리집에 오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마오리소포라는 잎을 엄청 누렇게 떨궈대며 앓기 시작했다. 잎도 물샤워를 해서 주는 게 좋다고 해서(그땐 베란다 연결 호스릴과 전용 노즐을 사기 전이었다…사실상 얘가 화분 10개 미만인 상태에서 전용 노즐을 산 계기가 되었다) 욕조로 데리고 가서 샤워를 시켰더니 욕조가 떨어진 이파리들로 뒤덮였다. 심지어 제일 약하게 틀어서 조심조심 시켜줬는데! 산 거면 죽여도 되는데 선물받은 걸 죽인다? 그건 역시 안될 일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친구를 매우 귀찮게 하긴 했다.) 이젠 어떤 실내식물들은 꼭 관리 문제가 아니라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원래 초보가 그런 걸 모르니 초보인 것 같다.


오기 전에 친구가 한 마리 집어낸 깍지벌레가 혹시 더 남아있었나 하고 그때 처음으로 비오킬을 약국에서 한 통 사서 매일 뿌렸다. 매일 뿌릴 때마다 마지막 잎새처럼… 그렇게 많던 잎을 베란다에 흩뿌렸다.

잎이 노랗게 되며 하엽지는 현상이 3주쯤 일어났다

비오킬을 매일 뿌리고 3주쯤 지나자 미친 듯한 하엽을 멈추고 새 잎이 나기 시작해 한숨을 돌렸다. 한숨은 돌렸지만 깍지벌레가 문제였는지 그냥 자리를 옮긴 게 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친구는 환경이 바뀌어 생긴 몸살이었을 거라 추측했다. 분갈이도 아니고 환경 몸살을 3주나 한다고…?

잎이 다 떨어져서 앙상하긴 하지만 새순을 내긴 내서 이제 살았다 싶었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뒤에 있는 몇개의 점들은 죽어서 떨어진 잎임….

그 뒤로 좀 멎나 했더니 장마철이 되자 또 습관적으로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어차피 떨구는 양이 처음 왔을 때의 절반 정도니 얘는 원래 이런가..? 하며 서스티만 믿고 물만 이따금 주는 상태로 체념하고 있었다.


약간의 반전이 일어난 건 식물등 설치 이후였다. 월동 전 좀 익숙해지려고 샀던 식물등이지만, 9월 초에도 내리 비만 와서 상시 일출일몰 주기에 맞춘 시간에 켜줬더니 잎 떨구는 양이 줄고 새순이 난다…? 사실은 광량 부족이었던 것??


너무 의아해하며 또 일이주일 보냈더니 새순이 샛노랗게 뜨거운 볕에 탄 것처럼 변해서 그냥 달랑달랑 붙어만 있었다. 화분을 좀 돌려보다가 죄송합니다..! 를 외치며 식물등에서 화분 하나정도 먼 위치로 보내주고, 주기적으로 화분 위치도 돌려주고 있다.


식물은 1. 빛 2. 온도 3. 습도 4. 통풍 5. 뿌리의 영양과 물 공급 정도의 우선순위로 주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식물 종/개체마다 각 요소에 최적의 범위가 있지만, 좀 안 맞아도 대충 적응하면서 살기 때문에 실내식물 카테고리로 팔리는 것…. 아닌지?(물론 한두가지엔 예민한 식물들이 제법 있고 그정도만 예민해도 어려운 식물이라는 평판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 식물은 5가지 모두에서 적정치의 범위가 좁고 이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죽기 직전이 되거나… 죽는다. 뉴질랜드 자연이 엄청 좋긴 좋은가벼…. 난 글렀어….


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도 마오리소포라는 놀랍게도 꽤 오랜 시간, 그러니까 200일이 넘게 살아 있다. 심지어 같은 자생지에서 온 왁스플라워가 죽고 아카시아도 응애로 초토화되었는데 말이다. 종종 앓으면서 맨날 새순도 내고, 죽지는 않고 내적으로는 꾸물대는 게 내 육체랑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며칠에 한 번 화분이 놓여져있는 (구)컴퓨터 책상을 닦으면 마오리소포라 하엽진 잎 천지고, (다른 식물에) 또 응애가 생겨서 전체방제하다보니 이 책상의 위아래를 공유하는 식물 중 이 식물의 작은 잎이 안 묻은 데가 없다.(이 식물에 해충 생기면 다~~~~ 죽어!!!) 말라서 죽는 가지의 끝도 종종 생긴다. 물준다고 물샤워 시키면 또 후두두둑 잎이 떨어진다.

그냥 이 식물이 뉴질랜드 대자연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삶의 일부이려니 생각하고 그저 매일 하루에 두 번 서스티를 노려보고 떨어진 잎들을 치우는 것이다. 나의 삶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드루이드 선생님이 키우던 또 하나의 마오리소포라는 비오는 날 비를 맞혀 자연 비료 효과를 내려고 바깥에 잠시 내놨다가 잠시 바람이 약간 세게 불자 잎이 다 날아가서 꽃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통풍이 좋아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강풍이면 안되는 연약한 식물이여…..

매거진의 이전글 6. 필로덴드론 핑크프린세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