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듯 살듯 마르거나 누런 잎을 떨어뜨리며 그래도 계속 버틴다
집에서 180일(반 년) 이상 살아남은 식물의 돌봄에 대해 기록합니다.
학명 / 소속 - Sophora prostrata 'Little Baby' / 콩과 소포라속
유통명(키워드) - 마오리소포라
자생지 - 뉴질랜드 (호주 뉴질랜드 식물은 실내와 장마철이 힘들다고 하셨어)
난이도 - 매우 어려움 (빛, 습도, 물주기 모두 까다롭고 환경 변화 자체에도 예민함)
빛 - 반양지 (인데 웬만한 무늬식물보다 어쩌란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스타일로 까다로움)
물주기 - 과습 및 건조에 모두 예민해서 아예 처음부터 서스티가 꽂혀있었고 아묻따 서스티님 색이 하얗게 될 때 제깍제깍 잎샤워 시키며 듬뿍 드림. 다만 물소모는 그렇게 빠르지 않아 체감상 텀은 최소 10일 이상 되는 것 같다.
습도 - 중간 (40~70%) 범위를 벗어나면 무지막지하게 하엽지기 시작함
온도 - 10~20도
최저온도 - -8도 (10도 이상 권장)
성장속도 - 성장… 하니?
병충해 이력 - 깍지벌레
연월 - 2022년 3월
분갈이 - 할 생각 없음 (나 주제에 분갈이를 해도 됩니까?)
“식물 초보가 이런 여리여리한 식물을 키워도 돼?”
처음 이 식물을 친구가 준다고 했을 때 한 말이었다. 친구는 소포라 화분이 두 개라서 하나는 나한테 주고 싶다고 했다. 북향의 사무실 창가에서 자란 강한 뚠뚠이라고! 가지도 소포라중에선 엄청 굵은 거라고!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인데, 이걸 대한민국 사무실에서 키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아니라 숲의 정령 드루이드 같은 거 아닐까..? 아무것도 몰랐던 데다 원래 누가 뭘 주면 거절하지 않는 성격이라 또 고맙다고 하고 술을 새벽까지 마시고는 핑크프린세스 삽수와 함께 우리집에 들고왔다.
하지만 우리집에 오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마오리소포라는 잎을 엄청 누렇게 떨궈대며 앓기 시작했다. 잎도 물샤워를 해서 주는 게 좋다고 해서(그땐 베란다 연결 호스릴과 전용 노즐을 사기 전이었다…사실상 얘가 화분 10개 미만인 상태에서 전용 노즐을 산 계기가 되었다) 욕조로 데리고 가서 샤워를 시켰더니 욕조가 떨어진 이파리들로 뒤덮였다. 심지어 제일 약하게 틀어서 조심조심 시켜줬는데! 산 거면 죽여도 되는데 선물받은 걸 죽인다? 그건 역시 안될 일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친구를 매우 귀찮게 하긴 했다.) 이젠 어떤 실내식물들은 꼭 관리 문제가 아니라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원래 초보가 그런 걸 모르니 초보인 것 같다.
오기 전에 친구가 한 마리 집어낸 깍지벌레가 혹시 더 남아있었나 하고 그때 처음으로 비오킬을 약국에서 한 통 사서 매일 뿌렸다. 매일 뿌릴 때마다 마지막 잎새처럼… 그렇게 많던 잎을 베란다에 흩뿌렸다.
비오킬을 매일 뿌리고 3주쯤 지나자 미친 듯한 하엽을 멈추고 새 잎이 나기 시작해 한숨을 돌렸다. 한숨은 돌렸지만 깍지벌레가 문제였는지 그냥 자리를 옮긴 게 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친구는 환경이 바뀌어 생긴 몸살이었을 거라 추측했다. 분갈이도 아니고 환경 몸살을 3주나 한다고…?
그 뒤로 좀 멎나 했더니 장마철이 되자 또 습관적으로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어차피 떨구는 양이 처음 왔을 때의 절반 정도니 얘는 원래 이런가..? 하며 서스티만 믿고 물만 이따금 주는 상태로 체념하고 있었다.
약간의 반전이 일어난 건 식물등 설치 이후였다. 월동 전 좀 익숙해지려고 샀던 식물등이지만, 9월 초에도 내리 비만 와서 상시 일출일몰 주기에 맞춘 시간에 켜줬더니 잎 떨구는 양이 줄고 새순이 난다…? 사실은 광량 부족이었던 것??
너무 의아해하며 또 일이주일 보냈더니 새순이 샛노랗게 뜨거운 볕에 탄 것처럼 변해서 그냥 달랑달랑 붙어만 있었다. 화분을 좀 돌려보다가 죄송합니다..! 를 외치며 식물등에서 화분 하나정도 먼 위치로 보내주고, 주기적으로 화분 위치도 돌려주고 있다.
식물은 1. 빛 2. 온도 3. 습도 4. 통풍 5. 뿌리의 영양과 물 공급 정도의 우선순위로 주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식물 종/개체마다 각 요소에 최적의 범위가 있지만, 좀 안 맞아도 대충 적응하면서 살기 때문에 실내식물 카테고리로 팔리는 것…. 아닌지?(물론 한두가지엔 예민한 식물들이 제법 있고 그정도만 예민해도 어려운 식물이라는 평판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 식물은 5가지 모두에서 적정치의 범위가 좁고 이 중 하나라도 틀어지면 죽기 직전이 되거나… 죽는다. 뉴질랜드 자연이 엄청 좋긴 좋은가벼…. 난 글렀어….
라고 생각하는 한편,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도 마오리소포라는 놀랍게도 꽤 오랜 시간, 그러니까 200일이 넘게 살아 있다. 심지어 같은 자생지에서 온 왁스플라워가 죽고 아카시아도 응애로 초토화되었는데 말이다. 종종 앓으면서 맨날 새순도 내고, 죽지는 않고 내적으로는 꾸물대는 게 내 육체랑 비슷한가 싶기도 하다. 며칠에 한 번 화분이 놓여져있는 (구)컴퓨터 책상을 닦으면 마오리소포라 하엽진 잎 천지고, (다른 식물에) 또 응애가 생겨서 전체방제하다보니 이 책상의 위아래를 공유하는 식물 중 이 식물의 작은 잎이 안 묻은 데가 없다.(이 식물에 해충 생기면 다~~~~ 죽어!!!) 말라서 죽는 가지의 끝도 종종 생긴다. 물준다고 물샤워 시키면 또 후두두둑 잎이 떨어진다.
그냥 이 식물이 뉴질랜드 대자연이 아니라 한국에서 살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삶의 일부이려니 생각하고 그저 매일 하루에 두 번 서스티를 노려보고 떨어진 잎들을 치우는 것이다. 나의 삶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드루이드 선생님이 키우던 또 하나의 마오리소포라는 비오는 날 비를 맞혀 자연 비료 효과를 내려고 바깥에 잠시 내놨다가 잠시 바람이 약간 세게 불자 잎이 다 날아가서 꽃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통풍이 좋아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강풍이면 안되는 연약한 식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