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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Oct 06. 2022

식물 첫해에는 분갈이 안하는 거라면서요 나는왜 - 1

마음이 콩알만한 초보자의 분갈이용 화분 및 흙 선택하기

가을이 되면서 갑자기 할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슬슬 봄/여름에 들어온 화분들 뿌리가 화분을 탈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통 분갈이가 2-3년에 한 번이라고 되어 있는데, 칼라데아 17종(….)을 포함해 여름한철 엄청 자라는 속성수를 여름에 많이 들였고, 우기와 더위가 개천절 당일까지 이어지면서 화분들이 살려줘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9월 중순 이후 분갈이만 약 스무 개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건 내가 꾸준히 가을에도 식쇼를 했기 때문이고 이제는 정말 그만사자_최종_진짜_마지막 하다가 요즘 식물이 너무 싼데? 유행에 휩쓸리는 식물시장 내년에도 이 식물이 또 있을까? 하면서 또 주섬주섬 사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원래 봄에만 해도 화분 개당 삼천원이라도 주고 분갈이를 구매처에 맡겼는데, 그게 깨진 건 아마 한여름의 일산 화훼농협에서였던 것 같다. 분갈이 코너에 너무 줄이 길게 있었던 탓에 초보자인 나따위가 기를 수 있는 식물을 찾느라 또 천년의 고민을 한 탓에 체력이 떨어진 나는 결심하고야 만다. “아 화분 갯수가 스무개쯤 되면 본인이 분갈이쯤은 할 줄 알아야지? 야 죽을래면 죽고 살래면 살아!”


왜 초보에게 분갈이는 무서운가?

흙, 화분 크기 등 갑작스레 환경 변화가 오면 막 들였을 뿐인 식물이 죽을 수 있다.

뿌리를 다루는 인간이 서툴러서, 손상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

화분 크기를 잘못 선택해서 과습으로 죽을 수도 있다.

흙 속에서 가끔 미지의 생물이 나올 수 있다.


실내식물이란…. 어떨 땐 참 개복치같은 존재다.

분갈이, 무서운데 왜 하는가?

식물을 막 구매했을 경우

식물 판매시 기본으로 제공하는 얇은 플라스틱/비닐재질 화분은 통풍 및 물빠짐에 유리하지 않다.

농장에서 막 온 식물의 흙 속에는 해충이나 알이 섞여있을 수 있다.

우리집 환경에 맞는 흙을 사용할 수 있다.

식물에 내 취향의 옷을 입혀주고 싶다.

이미 기르고 있는 식물인 경우

뿌리가 화분에 꽉 차고 바깥으로 튀어나올 정도라더 이상 흙에서 양분을 얻어 성장하기 어렵다. 적절한 시기에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죽지는 않겠지만 성장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쇼핑을 했을 때는 이 상태로 내게 오는 식물도 제법 있다.

흙이 오래되어 양분을 얻기 어렵다.(이 경우엔 식물용 영양제/비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분갈이를 대신할 수 있다.)


화분 선택

크기

이게 참 익숙해지지 않으면 천년의 고민을 하게 된다. 화분을 고르는 일은 성장기 어린이 신발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 딱 맞거나 끼는 걸 사면 몇 달 뒤엔 못 신게 되기도 하고 너무 큰 걸 사면 걸을 수 없어서 넘어지니 신발의 기능을 못한다. 식물이라면 뿌리가 썩거나 상하게 되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엔 플라스틱 화분에 심겨있는 식물을 고르고 지름이 3-5cm 더 큰 화분을 고르고 있다.

식물 뿌리 크기는 모종을 뒤집어 까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게 문제긴 한데… 요즘은 그래서 10, 13, 15, 18호 정도 사이즈 슬릿화분(플라스틱 화분이되 옆면에 구멍을 뚫어 통풍을 좋게 만든 것)을 예비로 구비하고 있다.(대부분 10-15cm 기본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식물을 사게 되기에…)

식물 윗부분의 크기는 오로지 뿌리의 크기나 상태를 보기 위한 참고 지표이며, 뿌리가 약간 넉넉하게 들어가면서 뿌리 없이 흙만 들어가는 부분의 부피가 화분의 20-25%를 안 넘어가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필로덴드론 고엘디의 엄청난 뿌리.

그래서 실제로 10개쯤 식재해보고 과습이 와서 뿌리가 썩는 식물도 생기고 해야 감을 잡을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재질 (토분이냐 슬릿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통기성을 앞세운 토분의 효용은 식물을 둔 베란다의 습도가 최대 90%였던 올해 날씨 덕분에 아주 잘 실감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열대우림 출신 실내식물들은 습한 공기와 촉촉한 흙을 좋아하지만 물이 오래 고여있는 상태에는 취약하다. 그래서 물을 자주 주되 좍좍 빠지고 사방으로 증발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실내와 화분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얼추 자생지 토양 환경과 비슷한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셈이다. 흙을 둘러싼 모든 면적에 작은 공기구멍이 뚫린 토분이 점점 다가올 아열대기후에 유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을 한국 실내 베란다에 재현하라니…

식물이들만 생각하면 토분이 최고긴 한데, 17호 토분부터는 좀… 무겁다. 19호 이상 토분에 담긴 식물을 들고 다니다가는 손목 뿌개질 것 같다. 그리고 토분은 비싼 주제에 소모품이시다…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나도 3월에 처음 사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식물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면 “슬릿분”이라는 것을 사서 쓰는 경우가 많다. 플라스틱 재질이라 가볍고 위생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으며, 비교적 싸다. 통기가 안 된다는 단점은 화분 옆면 모서리에 구멍을 내서 상쇄했다. 간지까지는 안 나지만 나름 통일성을 꾀할 수 있고 빤딱빤딱한 못생김을 면했다. 토분하고 섞어서 배열해도 크게 나쁘지 않다.

슬릿분에 심긴 송악아이비. 모서리 하단에 긴 구멍이 뚫려 있다.

물을 소모하는 속도는 토분이 100이라면 슬릿분은 65 정도인데 그렇게 나쁘지 않다. 뿌리는 숨구멍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에, 토분에서는 화분 벽면과 하단 물구멍에 몰려 돌돌 말려 뭉치지만, 슬릿분은 그냥 여러 개의 구멍으로 실밥처럼 막… 튀어나오는데 식물에 따라 화분 관리 품이 덜 드는 쪽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미친 써클링(토분)이냐 전방위 뿌툭튀(슬릿분)이냐

나도 이제 식덕이 아닌 이들의 기준으로는 식물이 조금 많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화분의 크기와 재질을 정하는 데 나름의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


뿌리를 받아야 하는 아주 작은 개체(대부분 물꽂이나 남이 한 걸 당근으로 구매)는 뿌리 발달이 보이는 투명 삽목 화분을 사용한다.

8cm 화분 이하 사이즈로 배송되는 식물 상품에는 10cm 슬릿분을 사용한다.

10cm 화분으로 판매/배송되는 식물 상품에는 13cm 토분(경우에 따라 15cm)을 우선하되, 뿌리 사이즈에 따라 차선으로 예비해둔 적당한 슬릿분으로 한사이브 올리거나 내린다.

15cm 화분으로 판매/배송되는 식물 상품에는 17cm나 18-19cm 토분을 사용한다.(뿌리가 가득 차있으면 19cm) 이 경우에도 뿌리 크기를 검토하고 예상과 다르며 적절한 토분이 없을 경우 예비해둔 슬릿분을 사용한다.

과습에 특히 예민한 칼라데아라면, 토분을 우선해 사용하며 20cm 이상 화분에 식재할 경우 슬릿분을 사용한다.

키우던 화분이라면 10 -> 13 -> 15 -> 17 -> 19 순으로 한두 단계씩 올려 옮겨준다.

어디다 심어줄~까

흙 선택

이거야말로 진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요즘은 검색하면 상토만 100% 쓴다는 사람부터 티티배합 정글배합 너무 각자 다 다른… 자기만의 레시피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시행착오 끝에 나도 그런 식의 레시피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보통 배합하는 흙 재료를 간단히 훑어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베이스)

상토 : 식물을 기르기 위한 기본 흙. 사실은 이미 범용적인 식물을 기르기 좋게 영양분과 배수제 등을 잘 섞어서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왜 자기만의 흙배합을 만드는 게 식물바닥 국룰이 된 것인가? 왜냐면 요즘 트렌드가 열대우림에서 온 식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열대우림 출신 실내식물들은 습한 공기와 촉촉한 흙을 좋아하지만 물이 오래 고여있는 상태에는 취약하다. 그래서 물을 자주 주되 좍좍 빠지고 사방으로 증발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실내와 화분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얼추 자생지 토양 환경과 비슷한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셈이다.

목적은 같지만 방법은 각자 다를 수 있기에 이런저런 용한 배합 및 배합토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뭘 하든 물을 좍좍 빠지게는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양을 제공할 상토 이외의 배수제를 추가로 넣는 것이 칼라데아니 필로덴드론이니 하는 것을 키우는 데 어느 정도 필수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사용되는 배수제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배수제

펄라이트 : 하얀 알갱이로 가볍고 물이든 영양이든 모든 성분을 튕겨낸다.

마사토 : 굵은 모래로 무겁고 역시 물이든 영양이든 모든 성분을 튕겨낸다. 여러 알갱이 크기가 있다.

일본산 누렁이들(녹소토, 난석, 산야초 등) : 일본 모래로 가볍고 통기성이 좋고 때로 보습력이 추가로 있는 경우도 있다. 알갱이 크기가 다양하다. 펄라이트와 마사토에 비해 비싸다.


기타

여기서 상토를 더 줄이고 소나무를 사용해 만든 바크나 왕겨를 태워 만든 훈탄을 더 넣는 흙배합도 식덕 세상에서는 꽤 대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열대식물 기본배합

상토(아무거나) 50% + 배수제 50% (펄라이트 반 일본 누렁이 반)

상토는 꽤 아무거나 사는 편이다. 체감적으로 뭘 써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아니라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대신 제조년월일이 최대한 최근인 10리터 미만의 소포장 제품을 사는 편이다. 다이소나 이마트에서도 많이 산다. 한아름 등 평판이 좋은 제품들은 대부분 50리터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은 축축한 흙을 오래 집에서 잔뜩 보관하는 게 귀찮고 부담스럽다. 잘못 보관하면 곰팡이가 들 것만 같다.


내가 갖고 있는 건 대부분이 토분이기 때문에 마사토를 배수제로 사용하기에는 무게가 부담스럽다. 펄라이트를 1:1로 사용한다면 몇번 물 줬다가는 물과 기름처럼 가벼운 펄라이트가 둥둥 떠서 분리될 수 있으므로 다소 비싼 일본산 누렁이들(주로 믹스제품인 산야초를 선택한다. 난 직접 복잡하게 배합하는 걸 싫어한다… 살 수만 있다면 가격차이도 별로 없는 편.)을 펄라이트와 반씩 배합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런 배합을 사용하는 이유는 배수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집에 썩거나 곰팡이 필 수 있는 재료를 쌓아두는 자체를 최소화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바크가 제일 보관상태나 품질이 복불복일 것 같고, 훈탄은 세균을 없애준대서 사용해보고 싶지만 보통 5-10% 배합해서 역시 집에서 습기를 머금게 하고 싶지 않아 버티는 중이다. 그리고 정글믹스 같은 것처럼 바크를 넣고 상토를 극단적으로 줄이면 비료를 따로 줘야 하는데….. 귀찮다…… 이정도로 해도 식물 칭구들이 사는 데는 큰 지장 없어보인다. 정도가 이유다. 귀찮아하면서도 하는 일들(토분 사용, 배수제 사용)은 올해 베란다 습도가 90%라서…. 썩을까봐 어쩔 수 없었다…..


또 이건 어디까지나 열대초본인 필로덴드론, 칼라데아, 페페류에만 해당하는 얘기로 드라세나 마지나타나 고무나무 같은 건 걍 화분 밑에 2cm쯤 굵은 난석이나 마사토 깔고 상토 100% 훅훅 쓸어담아도 큰 문제 없더라. 상토 자체가 배합흙이니 당연하다. 다만 자생지가 중남미인 열대우림 식물이고 덕질하느라 소중하게 얻어온 거라서 자생지적 토양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요즘의 유행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나는 그보다 보관위생이 더 신경쓰이고 게으른 사람이라 이렇게 하고 있으니 각자의 배합을 찾아도 좋을 것 같다. 모두가 습도 90%를 걱정하는 환경은 아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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