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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Sep 30. 2022

아마도 플랜테리어는 인간의 이기심일 거야

인간이 분위기상 살리고 싶은 곳은 식물들도 싫어한다

부모님과 주거 공간을 공유하지 않게 된 지 몇 년이 지나고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식물이라도 키워보자 하면 늘 거절했었다. 나에게는 식물 화분을 하나쯤 들이고 금세 잊어버리는 연쇄살식마의 유전자(…)가 있기도 했지만, 인간이 식물을 놓고 싶을 정도의 애매한 짜투리 공간에는 빛이 잘 안 드는데, 걔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초등학교에서 식물은 광합성을 해야 한다고 배우잖아. 그리고 사무실에 개업축하로 들어온 큰 화분은 늘 죽었는데 아무래도 빛과 인간의 수발이 부족해서겠지 생각하곤 했었다.

꼭 나만 이런 건 아니고 우리 아부지도 그랬음

하지만 플랜트+인테리어의 합성어라는 플랜테리어가 각종 sns에 유행하고 특별할 것 없는 도시의 카페에서도 관상용으로 식물을 키워 힐링으로 셀링을 한다니 그런 나도 가끔은 귀가 솔깃해졌다. 나도 내가 키우기 귀찮아서 그렇지 남이 잘 키워놓은 식물 구경은 좋아해서 식물 책을 찾거나 수목원에 열심히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쁜 식물이 늘 생활하는 공간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아마 내가 관리할 필요가 없으면 더 좋겠지만 정원사가 있거나 조화여야 할 것 같다.) 도시의 실내 공간이란 늘 좀 삭막하고 침침하니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실내 식물을 찾는 것도 있을 테다.


막상 식물을 처음으로 사서 내 작업방 구석에 조르륵 놓으니 쟤들이 저기서 살 수 있을까, 저기를 좋아할까 하는 불안감이 생겨 집에서 가장 양지바른 베란다로 가게 되었다고 여기에도 쓴 바 있다.

https://brunch.co.kr/@5ducks/37

처음 샀던 세 개의 식물이 놓였던 자리. 그나마 이 방에서 햇빛을 받을 수는 있지만 창 두 겹과 잡동사니의 그늘을 통과해야 한다.

그 이후로 베란다식물은 계속 늘어만 갔다. 여름의 응애파티를 계기로 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30개가 넘는 식물이 베란다 창가에 테트리스하듯 빠르게 증식해갔다.(지금은 40개를 돌파했다…) 하지만 그 외 공간들은 어둑어둑하고 삭막한 채 그대로였다. 이대로라면 그냥 베란다 식물광인일 뿐이었다. 나는 식물에게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한 번만 인간이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플랜테리어도 유행이라는데 좀 명줄이 질긴 친구는 없는 걸까?


집에 딱 화분을 걸거나 화분 선반을 두고 싶은 벽이 있었다. 북서향으로 나있는 뒷베란다(라기보다는 다용도실에 가까운)로 가는 문 앞에 있는 살짝 그늘진 공간. 그리고 작업방 수납장 꼭대기의 빈 곳. 자주 드나들지만 애매하게 남는 삭막한 공간에 초록색 포인트를 준다면 그곳들이었다.


그런 곳에서도 살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분명히 “흔둥이”라고 불리는 저렴한 스테디셀러 실내식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좀 뜬금없이 지하철을 타고 하남 화훼시장으로 갔다.(이유는 단순히 대중교통으로 갈아타지 않고 갈 수 있어서…) 5호선 종점 하남검단산역에서 내려 15분쯤 한적한 아파트단지 및 하천변 도로를 대낮 햇볕을 받으며 휘적휘적 걷다보면 하우스가 많은 뜬금없는 공터가 나온다. 도매시장이라 개인에게 불친절한 것으로 소문나 있는데, 역시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트럭차 몇 대만 왔다갔다할 뿐이다. (그러고보니 화원 다녀온 사진이 하나도 없는 게 정말 나답…고….)


각 하우스 입구 앞에도 식물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니, 대부분 아주 작은 모종을 판으로 팔거나 개업식 화분용 대품들이라 사지도 못할 내가 들어가기 좀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 곳들은 바깥에서 구경만 하고, 네이버 드루이드 블로거 선생님들이 개인에게도 물건을 판다고 귀띔해주신 ”상록식물원“이라는 가게에 들어갔다. 온갖 취미와 업을 하며 다녔던 도매시장은 개인의 입문제품및 소량구매에 한없이 불친절했다. 그래서 엄청 쫄아 있었으나, 세상이 달라진 것인지 주인장이 특별한 것인지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내가 좀 어두운 벽에 밑으로 늘어지는 식물을 걸고싶다 하니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식물도 알려주셨다.(스킨답서스나 나비란 종류가 가장 빛이 부족한 곳에서도 생명력이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기부니즘에 따라 외모지상주의(…)로 답을 정하고는, 얘도 주… 죽지는 않죠? 하고 답정너식 질문과 답변을 한 뒤 튼실해보이고 예쁜 러브체인과 푸밀라를 사왔다. 열악한 환경에 둘 것 같으니 보고 사오고 싶어 갔을 뿐이지만 러브체인 대품 만원은 엄청 싼 거였다. 푸밀라도 3000원에 샀는데 온라인몰에서 3500-4000원에 팔고 있는 것보다 풍성했다. 유튜버 초보식물남자 님이 좋아할 것 같은 왕튼튼 대품 스킨답서스도 한가득 있었다.

 

[카카오맵] 상록식물원

경기 하남시 미사대로 800 하남화훼단지 다동 45,46호 (창우동) http://kko.to/2N0DxFcxR


러브체인은 문제의 북쪽 벽에 꼭꼬핀으로 걸어두고, 푸밀라는 작업방 선반에 두었다.

캬 이게 플랜테리어지!!

약 2주간 두어보니, 오히려 방의 가장 안쪽이지만 창을 바라보기는 하는 푸밀라부터 물을 소모하지 않고 잎이 노랗게 뜨기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최소광량이 800lux라는데(스킨답서스까진 아니라도 광량이 가장 덜 필요한 대분류인 고사리 수준이라고…) 그게 채워지질 않나보다. 결국 2주 뒤 푸밀라는 베란다로 이사보냈고, 잘 살고 있다.


오히려 다육계열이라 빛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러브체인은 벽을 마주보는 어두운 벽에서 웃자라면서도 계속 새순을 내주고 있었다. 심지어 베란다에 식물이 너무 많다고 반농담삼아 타박하던 반려인이 절묘한 위치에 예쁜 식물을 걸었다고 칭찬도 해줬다. 웃자라도 좋으니 그 자리에서 살아만 줬으면 하는 것이 인간의 이기심이었다.

줄기 끝에 잎이 띄엄띄엄 작게 나며 웃자라는 러브체인. 사실 나도 웃자람이 뭔지 처음 체험했다.

어쨌든 시선이 닿고 자주 드나드는 부엌 벽에 초록이가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긴 했다. 그래서 용인 남사 화훼단지에 갔다가 스킨답서스 코너에 귀여운 것이 있어서 사서 옆에 걸어 주었다.

그러나 얘는 딱 일주일 지나자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물을 전혀 소모하지 않는 데다, 잎 가운데가 얇아지며 누렇게 뜨기 시작한 것이다. 스킨답서스는 괜찮다며? 알고보니 내가 사온 건 “스킨답서스 오레우스”인데 얘는 스킨답서스도 아니고(에피프레넘 만줄라인데 유통은 스킨답서스로 되고 있다고) 무늬종이라서 나름 요구광량이 많단다. 결국은 행잉고리를 떼고 베란다로 이사시켜줬고 식물은 건강을 회복하고 잘 살고 있지만 나의 베란다 광인력만 +2가 되었다.

베란다로 막 이사갔을 때의 스킨답서스 오레우스 아니고 에피프레넘 만줄라. 옆에 살짝 푸밀라도 찍혔다.

러브체인을 부엌의 빛이 안드는 벽에 걸어둔 지 한 달이 지났다. 줄기 위쪽에서(흙 근처) 무르면서 노랗게 하엽지는 잎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품이라서 몸빵(?)하고 있는 것이지 역시 잘 생존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웃자란 줄기 끝은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한 것도 보였다.역시 인간의 욕심은 부질이 없고…

웃자람이 절정에 달한 러브체인.

인간이 오래 앉아있거나 누워있기 힘든 애매한 사이즈의 빛이 안 드는 공간이라면, 광합성을 해야 하는 식물은 더 힘들다. 음지식물은 괜찮다는 마케팅은 다 거짓부렁이다. 진짜 실내에서 빛이 안 드는 곳에 식물을 둔다면 대부분 병들어 죽을 뿐더러, 일부 살아남는다 해도 그 환경에서 그저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태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인공적으로라도 1식물 1광원은 보장되어야 플랜테리어를 논할 수 있다.


“퇴근하고 식물집사” 라는 책에는, 실내식물들을 소개하며 성장을 위한 관리와 생존을 위한 관리를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조도 측정에 쓰는 lux 대신 footcandle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lux가 빛의 세기라면, fc는 특정 작은 공간(발길이를 변으로 하는 사각 공간)에서 받는 빛의 양이라고. 일반적인 실내 식물의 경우, 100fc 이상이라면 식물이 성장할 수 있고, 그 아래라면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다른 방식의 관리를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아주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스마트폰의 후면 카메라로 빛의 양을 측정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많이 있다. 신경쓰지 않았는데, 풋캔들 단위를 지원하는 앱도 꽤 많았다. 식물이 있는 위치에서 식물의 시점으로 사진을 찍듯 카메라를 들어주면 그럭저럭 식물이 그 자리에서 받을 수 있는 빛의 양을 측정할 수 있다. 앱스토어에서 “light meter” “footcandle” 등의 키워드를 사용하면 쉽게 찾아 다운받을 수 있다.

lux를 footcandle로 변환해주는 사이트도 있다.

https://www.rapidtables.org/ko/calc/light/lux-to-fc-calculator.html


간단히 구글링을 해보니, 이 footcandle 단위를 기준으로 하면

양지 150 이상

반양지 75 이상

반음지 25 이상

음지 25 이하

이며 50 이하의 장소에 오래 있으면 스킨답서스든 스투키든 식물들이 좀 힘들어진다고 한다. (출처 https://www.inews365.com/mobile/article.html?no=601088 ​)


우리집 러브체인같은 경우, 자연광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는 아니고 부엌의 LED등을 바라보고 있다. 측정해봤더니 불을 켜고 있을 때 60fc 정도가 나왔다. 미… 미안하다….

아마도 이것이 러브체인이 한달간 받았던 최대 광량

러브체인은 살 때부터 있었던 행잉 전용 화분에 심겨 있어, 베란다엔 빨래를 침해하지 않으며 식물을 걸 만한 자리가 없다. 곧 월동을 위해 베란다 출입문 근처의 가구나 잡동사니를 싹 치울 예정인데, 그때 거기보다는 좀 양지바른 자리를 찾아줘야 할 것 같다. 에피프레넘 만줄라(스킨답서스 오레우스)를 걸었던 자리에는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결론

1. 인간이 플랜테리어로 공간에 포인트를 두고 싶은 자리는 대부분 빛 부족으로 식물이 지속적으로 살기 어렵다.

2. (스마트폰으로라도) 식물의 관점으로 빛의 양을 측정한 뒤 그 생명들이 잘 살만한 자리에 식물을 놓아주자.

3. 100fc 이상이어야 식물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4. 새로 온 화분이 일주일간 물을 소모하지 않고 잎이 누렇게 뜬다면 (내 경우엔 겉흙을 만져본 뒤 토양측정계로 측정) 광량 부족으로 식물에 병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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