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식집사의 분갈이 실전
날이 추워지니 자연히 월동을 생각하게 되고 하 정말 이게 마지막이야 하고 식물 두 개를 택배로 받았다. 그 다음주에 새 화분 두 개랑 여름사이 자란 화분이들을 분갈이해주고 캬캬 올해는 진짜 최종 마감이야 하고 있던 차였다.
뭔가 푸밀라가 이상한데? 하고 들어보니 뿌리들이 사방팔방… 슬릿분의 구멍으로 다 튀어나와 있었다. 님 8월 말에 오셨잖아요? 전수검사 들어가겠습니다.. 하면서 화분을 전부 다 들어봤다. 8월에 산 건 그래도 내년 봄에나 분갈이를…. 이게 아니네. 그래서 갈아야 하는 대상은 다음과 같았다.
칼라데아 프레디 (9월 2일 입주)
칼라데아 비타타 (9월 2일 입주)
칼라데아 퓨전화이트 (7월 말 입주, 이미 분갈이 한 달 전에 했음)
칼라데아 로제오픽타 일러스트리스 (9월 17일 입주)
사자두송악아이비 (9월 2일 입주)
수박필레아 (8월 6일 입주)
벵갈이 미니미 (지난달에 화분 갈아줌)
푸밀라 (8월 26일 입주)
루디지아(해마리아) (오늘 식쇼)
쇼핑을 한 뒤 금액보다 딸려오는 노동이 더 강력한 분야는 식물이 처음인 것 같다. 일단 격리 후 인터넷 배송이면 5일쯤 기다렸다가, 오프라인이면 바로 분갈이를 시작한다. 웰컴농약 두 종류와 총진싹도 두르는데 엄청난 푸닥거리라, 아무 생각없이 식물 사재기하는 것 같아도 극한노동을 결단하고 화분 3천원 식물 3천원 사는 행위… 그것이 바로 식물쇼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들 어머 저거 예쁘다 하면서 위시를 쟁이지 않나요?)
1개를 분갈이하든 오늘처럼 9개를 분갈이하든 준비물은 대체로 동일하다.
흙 (우리집 환경과 식물에 맞는 비빔흙을 준비해보자. 정 없으면 상토 하나로 쓰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
배수층을 내어줄 난석(휴가토) 중립
분갈이용 매트
모종삽
가볍고 큰 그릇 (흙을 섞는 용도)
옮길 화분
식물
총진싹
다른 손은 식물을 받친 상태로 일단 화분을 거꾸로 들어 가운데 구멍을 누르면 식물이 뽕 나오졍.
일단 가장자리의 흙부터 손으로 조심조심 턴 다음 밑면에 뭉쳐있는 뿌리들은 머리 안감고 그냥 자다가 엉킨 긴 머리카락 푸는 느낌으로 살살 풀어준다. 이것도 블로그나 유튜브 보면 뿌리를 빨래하듯이 씻는 분(화원 흙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많이 보신 듯)부터 흙을 별로 안 터는 사람까지 온갖 유형을 볼 수 있는데, 너무 빨리 자라는 식물들을 들인 덕에 속성으로 많이 해본 바로는, 무리해서 흙을 다 떼면 분갈이몸살이라는 게 나지만 두 가지 처리를 중점으로 해줘야 한다.
되는 데까지만이 중요하다. 무리하다가 멀쩡한 뿌리 뿌개먹을 수 있다.
기존 흙이 물에 떡진 상태로 덩어리 상태로 고착화되어 뿌리에 붙어있으면 아무리 배수 좋은 흙 만들어 써봐야 과습을 피할 수 없다.
그 결과는… 이런 느낌이다.
3개월 안에 분갈이를 해줬는데 또 뿌리 꽉 차서 튀어나오고 난리가 나면 기존 흙을 새 흙이랑 섞어서 퍼담으면 분갈이 몸살 방지에 도움이 되…나? 약간 버리기 아까워서 주술적으로 행하는 의식에 가까운 것 같기도… 아무튼 셰낏셰낏 나물 버무리듯 손으로 저어 주고 이물질 있나 찾아서 버리기를 반복한다.
보통 마사토나 난석 같은 걸 배수가 잘 되게 깔라고 하는데 토분에는 살짝 깔릴 정도만 까는 건 괜찮은 것 같다. 뿌리는 숨구멍이 있는 데로 막 몰려가는 습성이 있어 토분에서는 바닥 부분에서 뿌리 서클링이 생기고, 슬릿분에서는 구멍을 통해 온사방으로 뻗어가는 뿌리들을 볼 수 있다. 토분의 경우, 다른 건 아니고 굵고 가벼운 난석 입자가 밑에 있을 때 떨어내기 편한 점이 있다. 슬릿분은 구멍들이 가느다랗기 때문에 18호 정도까지는 특별히 배수층을 내지 않아도 상관없고, 21호부터는 구멍도 커져서 난석을 바닥에 약간 까는 게 물 줄 때 흙 유실이 덜 했던 것 같다.
그 다음은 한 손으로 식물을 화분 안에 뿌리를 위치시키고 싶은 자리에 들고 흙을 퍼넣는다. 나중에는 갑갑해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하고 있다. 흙을 누르지 않고 중간중간 화분을 톡톡 쳐서 빈 구멍에 내려가게 하는 방식을 쓰는 건 가드너 공통이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면 샤워기로 물을 흠뻑 준다. 사실상 이때 흙이 완전 다져지기 때문에 원하는 위치로 식물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물을 주는 것이 좋다.
총진싹 입제를 일회용 숟가락으로 퍼서 흙 부분에 고루 뿌린 뒤 물을 준다. 어느 정도 흙에 수분이 날아갔다 싶으면 마감재를 올린다. (화산사, 마사토, 다이소 하이드로볼 등을 이용하다가 흙이나 펄라이트가 둥둥떠도 티가 잘 안나고 가격이 비싸지 않은 오색자갈로 정착했다.)
마감재를 올리는 쪽에서는 뿌파 알낳기 및 물길이 생겨 가는데로만 가는 현상 방지효과를, 안 올리는 쪽에서는 과습 방지 및 흙 상태 파악하는 데 유리하다는 의견이나 나는 그냥 일관성 빌런이라 올리고 있다.
이동네 흘리기 대장에게는 이게 사실 제일 힘든 부분 같다. 거실 테이블을 치우고 분갈이매트 안에서 최대한 어지른 뒤, 매트 안의 흙을 종량제 20리터 사이즈 정도의 비닐봉투에 부어넣는 데서부터 청소가 시작된다. 매트에 물기가 남아있는 흙은 신문지로 닦고 물걸레로 한 번 더 닦아준다. 바닥에 남은 흙은 빗자루로 한번 쓸어낸뒤 청소기 밀고 물걸레…. 역시 이게 제일 중노동이다. 사용한 흙은… 나같은 경우 소량이고 모래나 펄라이트 비율이 높아 웬만하면 일반쓰레기로 처리하고 있다.
토분은 수세미로 닦은 뒤 삶아 쓰고 슬릿분은 굵은 알갱이를 따로 씻어내 제거한 뒤 싱크대에서 수세미랑 세제로 일반 설겆이랑 똑같이 닦아 말리면 재사용 가능한 상태가 된다.
하 이제 올해까진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오리발시계초의 하얀 뿌리가 슬릿 구멍으로 고개를 빠끔 내밀고 있다. 와 진짜… 다음에 니가 진짜최종마지막fina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