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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Jan 18. 2023

흙배합은 갑자기 왜 그렇게 중요해졌을까?

인공환경은 자연환경을 대체할 수 있을까?

작년 봄 이전에도 종종 식물을 죽이(…)곤 했었기 때문에, 이전에도 식물 기르는 법을 종종 인터넷에서 검색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식물을 죽이는 뿌리 과습을 특정한 성분의 흙배합을 통해서 막을 수 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흙? 그냥 다이소에서 아무 흙이나 사서 심으면 되는 거 아닌가?


화원이라고 특별한 흙을 쓰는 것은 아니다

요즘처럼 본격 식물을 기르기 전, 다이소 흙으로 두 번째 분갈이를 하다가 1년 반은 넘게 길렀던 크루시아를 죽였던 적이 있다. 한번 사이즈를 키워줬더니, 더욱더 빨리 커져서 아예 좀 큰 사이즈 화분에 심었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분갈이 직후 화분영양제까지 꽂았으니…. 그 경험 이후 나의 손 및 감각을 쉬이 믿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처음 열 몇 개쯤 화분을 들일 때까지는 완제품을 사거나 구입처에 분갈이를 소정의 비용을 주고 맡긴 뒤,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곤 했었다. 배수층이 될 만한 마사토를 깔고 그냥 흙처럼 보이는 무언가(가게마다 색이 조금씩 다르다)로 심은 뒤 다시 마사토를 올려주는 것이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흙에 대한 고민의 시작 : 장마

이 정도가 우리집 여름 베란다 낮밤의 평균적 상태였던 듯.

식물이 있는 곳의 습도가 90%가 되는 계절이 찾아오자, 과습으로 죽는 식물이 생겼다. 여기서 물이 화분 흙 안에 너무 오래 고이면 뿌리가 썩어서 기능을 못하게 되어 죽는 [과습]이라는 현상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필로덴드론, 칼라데아, 알로카시아, 안스리움 등 실내 관엽식물들의 자생지는 대부분 열대 우림이다. 허구헌날 비가 내리지만, 토양은 물을 오래 저장하지 않고 수분을 좍좍 빼내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뿌리가 썩지 않는단다. 그래서 수분이 잘 빠진다는 흙배합을 검색해보기 시작하는데…


아니 흙에 뭔놈의 재료가 이렇게 많이 필요해?

정글의 흙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유명한 흙배합을 보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아니 뭔 재료를 이렇게 많이 사야 돼…. 심지어 이런 재료들 소포장으로 사려면 만 원 훌쩍 넘는다. 배보다 배꼽이 큰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티티배합 : 적옥토 70% 동생사 30%

당당배합 : 바크 50% 상토 25% 펄라이트 20% 훈탄 5%

습기를 머금은 자연의 재료는 집에 오래 두면 무조건 썩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바크나 훈탄만큼은 최소한으로… 아니 가능하다면 안 사고 싶었다.(안스리움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샀다.) 상토도 성분을 보면 습기를 머금은 식물 처리물과 모래알갱이들의 결합이니 너무 오래 보관하면 곰팡이가 필 수 있을 것 같다고 50리터 죽어도 안사고 그때그때 쓸만큼만 사는 판에….


흙 재료 종류를 속성별로 나눠보자

여러가지 흙 재료를 크게 나누면, 물을 흡수하는 것과 물을 빠지게 하는 알갱이로 나눌 수 있다.

물을 흡수하는 흙

상토 - 식물을 화분을 심기에 이미 완성된 인공 흙이다. 습도 90% 베란다나 온실 같은 환경이 아니라면 그냥 여기다가 심어도 무방하다. 나라가 대충 이렇게 만들라는 규격도 만들어줘서 “상토”라는 이름이 붙으면 비교적 균일한 품질 및 성분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브랜드보다 생산일자가 최근인 것을 소포장으로 구매하는 것을 선호한다. 다이소의 초록스타 원예용 상토(3L, 2000원)도 애용한다. 10리터 이하의 것을 사서 한 달 이상 보관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이소의 초록스타 상토. 제조일이 찍혀있고 회사를 검색해보니 다이소 이외 다른 상토도 제작하는 곳이라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써도 별 문제 없었다.

물을 빠지게 하는 알갱이

모래 계열 (오래 보관해도 무관)

마사토 - 다른 이름으로 산모래라고도 불린다. 그냥 자연에 있는 돌멩이를 가공해 만든 모래 알갱이다. 당연히 물을 흡수하지 않으며 다 뱉어낸다. 저렴하지만 토분과 합세하면 제법 무거워진다.

펄라이트- 상토에도 들어있으며, 모든 알갱이 중 가장 가볍다. 화분에 물을 주면 동동 뜨는 흰 알갱이가 바로 이것. 역시 물을 흡수하지 않고 다 뱉어낸다.

휴가토(난석) - 일본의 특정 지방에서 나오는 누렁모래 1. 일본산 누렁이들은 가볍고 공기가 잘 통하며 물을 흡수한 뒤 대부분 빠지게 하고, 약간의 수분을 머금고 있다 천천히 마르는 특징이 있다. 휴가토는 통기성과 배수성이 좋아 주로 화분 아래 배수층으로 쓴다. 알갱이 크기도 여러 가지가 있으며 누렁이들 중 가격이 제일 싸다.

녹소토 - 일본산 누렁모래 2. 수분을 오래 머금는 것이 특기. 약산성.

적옥토 - 일본산 누렁모래 3. 수분을 오래 머금는 것이 특기. 중성.

산야초 - 일본산 이런저런 누렁모래를 적당히 섞어놓은 종합누렁이세트. (나는 귀찮아서 주로 이걸 쓰고 있다)

식물성 계열 (보관에 주의)

식물성 계열의 재료는 물이나 비료 등을 전부 뱉어내지 않고 일부를 오래 머금는다고 한다. 또 자생지에서는 다른 식물이나 자연물에 붙어사는 착생 식물을 기르기도 좋아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식물성 재료와 곰팡이, 부패는 한세트라 50리터씩 막 사서 쓰기는 부담스럽다.

바크 - 소나무 껍질을 가공한 것. 특히 오키아타 바크가 질이 좋다고 한다.

코코칩 - 코코넛 섬유를 가공한 것.

훈탄 - 왕겨를 태운 것. 나쁜 균을 일정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넣다보면 약간 주술을 거는 것 같다. 나쁜놈들 흙에서 물러가라~


단순한 흙배합이 좋아

100개가 넘는 분갈이를 걸쳐… 현재는 세 가지 흙배합을 사용하는 것으로 어느정도 정착이 되었다. 훈탄은 있으면 한주먹 넣고 없으면 안 넣는다. 착생식물이 아니면 최대한 바크와 코코칩류를 보관하는 일을 피하고, 재료들의 재고를 단순하게 하는 방식이다.

고습도 환경에서 뿌리 과습이 안 오는 범위내에서 상토를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으로, 보통 이것보다 더 알갱이 비율이 늘어나면 비료나 물을 엄청 자주 줘야 해서 귀찮다는 이유가 크다.


반띵배합

상토 50% + 알갱이 50% (펄라이트 25% + 산야초 25%)

필로덴드론, 칼라데아 등 뿌리과습이 걱정되는 열대식물에 물 잘 빠지라고 사용하는 흙배합이다. 이 경우에도 상토는 50% 이상을 유지하는데, 물을 너무 자주 주기 힘든 것도 있지만 그 이하면 토양 수분 측정계가 다소 부정확하게 작동하기 때문도 있다.


일반배합

상토 70% + 알갱이 30% (펄라이트 or 산야초 중 있는 것으로)

고무나무 등 아열대에서 온 식물에 사용한다.


안스리움용 배합

반띵배합을 한 뒤 오키아타 바크를 동일한 분량으로 추가한다. 고가의 예민한 열대우림 착생식물이시니 sbn들의 매뉴얼, 따라간다… 이 경우에는 물 줄 때 서스티에 의존하고 있다.

상토 25% + 알갱이 25% (펄라이트와 산야초 반씩 배합) + 오키아타 바크 50%


왜 흙배합이 중요해졌을까?

나도 우리집 환경과 나의 게으름에 맞춰 나름의 흙배합을 찾아쓰곤 있지만, 식물 커뮤니티들을 보면 상토도 어느 제조사것을 쓰는 것이 좋고 독일 흙을 사서 쓰기도 하고 어느 배합이 좋고… 다들 너무 열정적인 모습에 혼란스러워지기까지 했다. 햇빛과 바람이 좋으면 흙이 어떤 성분을 갖고 있느냐는 부차적인 것인데 말이다. 노지 정원이라면 정말로 다 아무 흙이나 갖다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식물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다 보면, 요즘 주택들에는 대부분 베란다가 없고, 확장형 거실 같은 곳에서 식물을 기른다. 창문 앞에서 기를 수 있는 식물의 수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연광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식물등을 달고 기르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여기서 더 발전하면, 빛이 아예 안들어오는 집의 자투리 구석공간 같은 곳에 유리장을 설치하고 습도가 높게 밀폐해서 식물등과 선풍기로, 오로지 인공 환경과 전기세만으로 키우는 모습도 많이 보게 된다.

풀나옴 온실장의 설정샷. 그런데 의외로 다들 이런 느낌으로 빛과 상관없는 자리에 무거운 온실장을 설치해둔 경우들이 많다.

요즘 유행하는 흙배합이라는 것은, 빛과 통풍, 습도를 인공적으로 통제하는 가정환경을 위한 것인 셈이다. 다만, 나처럼 베란다에서 키우는 사람도 한국 기후의 아열대화로 적어도 여름 석 달은 통기와 배수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뿐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무겁지만 통기성이 좋은 토분을 쓰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되었다.


한편, 겨울에는 모든 홈가드너의 조건이 같아진다. 베란다에 내놓았던 식물들도 실내에 들여서 인공적인 빛, 통풍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 외로 식물등을 틀고, 가습기를 틀고, 서큘레이터를 트니 식물들은 겨울에도 안정적으로 잘 자랐다. 바깥 날씨가 어떻든 전기만 쓰면 일정한 생산성(?)이 보장되는 환경이라는 매력이 나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구를 써도 식물에게 줄 수 있는 빛과 통풍의 질적 면에서는 자연의 그것을 이기긴 어렵기에…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대한 자연을 이용해보려고 한다. 늬들도 사계절국에 와서 참 고생들이 많다~


요약

1. 요즘 유행하는 흙배합은 가정의!! 어둡고 습하고 통기 안 되는 데서!! 열대식물을 키워보겠다고 나온 일종의 궁여지책이다.(우리집 베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인공적인 온실환경 등) 이런 극한 환경이 아니라면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고 상토 하나만 써도 별 문제 없다.

2. 부지런한 가드너라면 알갱이를 많이, 나처럼 게으른 가드너라면 상토를 많이 넣자.

3. 자연의 것을 실내로 들여오면 세균 곰팡이 해충이 같이 따라오게 되므로, 바깥에 있는 흙을 퍼다 쓰면 안될 뿐더러(…) 바크 및 코코칩 같은 식물성 재료, 그리고 상토 역시 대용량으로 구매해 오래 보관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4. 인공 흙의 재료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화분 흙은 일반쓰레기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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