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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Dec 23. 2022

식물과 함께 보내는 첫 겨울, 월동의 모든 것

의외로 식물쇼핑 중독이 가장 큰 문제였다

11월 말까지도 딱히 춥지 않더니 12월 땡 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식물과 함께하는 첫 겨울이 왔다. 이미 거창한 월동준비는 8월 15일부터 식물등을 사며 시작되고 있었다. 9월엔 온실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제발 책 좀 그만 읽고 나가 놀라는 얘기를 들었던 부류의 인간은 식물이 실제적으로 체감하는 기온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월동은 베란다 최저기온이 15도를 찍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이때가 10월 15일 정도였고, 우리집의 50개 정도 식물을 크게 나누면 다음과 같았다.(지금은 약간 구성이 바뀌었으나 대체적인 비율은 비슷하다.)

마란타과 계열(유통명 칼라데아) - 17

필로덴드론 - 5

페페로미아 등 기타 천남성과 - 3

고사리 - 2

——————————— 최저온도 15도

고무나무 - 4

——————————— 최저온도 10도

아이비 - 2

——————————— 최저온도 5도

호주/뉴질랜드 식물 - 2

——————————— 최저온도 0도

기타 나머지 (개별로 최저온도를 파악해야 함)

10월 15일. 일단 칼라데아와 크로톤만 모아놓고 찍어봄

거의 대부분의 식물들이 최저온도가 13-15도컷이라 이때 열심히 거실로 식물을 들이게 되었다. 이날 고무나무들도 키가 크고 햇빛을 좋아하는 벵갈고무나무 말고는 전부 들였다. 그리고 이날 아이비나 마오리소포라처럼 추위를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식물들과 모체가 있어서 생사를 덜 신경써도 되는 번식 개체들은 베란다에 있다가 5도 이하가 되면 실내로 들이기로 하고 바퀴달린 이케아 카트에 태워주었다.

이케아 카트에 탑승한 푸밀라

0도까지 견딜 수 있다는 아카시아는 그냥 겨울을 베란다에서 나기로 했다.(하지만 겨울보다 두 번째 응애파티가 더 빨리 열려서 초록별로 보냈다.) 식물들을 실내로 들일 때는 너무 온도차이가 나면 안 된대서, 베란다 온도가 17-18도일 때 20도 정도의 실내로 들였다. 가구 배치를 옮기거나 자리를 측정하는 작업을 미리 해 두어서 들어오는 것 자체는 순조로웠다.

11월 30일, 막 들어왔을 때의 벵갈고무나무

큰 벵갈고무나무는 11월 30일 늦은 밤, 베란다 온도계가 한자릿수를 찍기 시작했을 때 부리나케 들였다. 15도와 10도의 시간적 간격이 이렇게 큰 줄 몰랐는데, 5도 찍는 데는 열흘도 안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바깥온도 +10도 = 베란다 온도 이런 식이 아니고 낮최고기온에 따라 최저기온이 되는 자정 이후의 기온이 다소 들쭉날쭉했다. 그리고 추워지면 카트를 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귀찮았다.(진짜 한파급일 때만 들이게 된다)


겨울에도 식물이 자란다

겨울에는 식물들의 생장이 멈추는 줄 알았는데, 실내에 들이면 난방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최저 22도 정도가 유지된다.(내가 체질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서 20도 밑은 못 견딘다) 칼라데아들은 식물등도 과하다며 식물등 간접광을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빛을 좋아하는 필로덴드론이나 페페로미아 같은 친구들을 식물등 밑에 모아놓고 칼라데아 님들은 식물등을 비껴나간 자리에 모셔두고 있다. 그렇게 두니 겨울에도 봄가을만큼은 아니지만 자… 란다?(물론 실내는 그래도 빛이 부족해, 광량 적응에 실패해서 잎이 마르다 과습으로 초록별로 가버린 칼라데아가 하나 있다.)막 뿌리도 탈출하고 그래서 흙도 사고 분갈이도 계속 해줘야 하기 때문에 생각만큼 한가로워지지는 않았다. 식물이 성장하는 만큼 물도 계속 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 반 년 만에(…) 식물이 집을 잠식하지 않으려면 식물 하나하나 들일 때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단계가 되었다.

자라는 속도가 무자비한 마란타 선생님

난방이 식물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이 글을 쓰는 지금, 바깥온도는 -14도, 베란다 온도는 3.8도이다. 인위적인 강력한 난방만이 식물을 살게 하지만, 난방 때문에 식물 돌봄에는 전기 에너지 및 인간 에너지가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습도 저하

칼라데아가 많은 집이라면 이미 가을의 베란다부터 가습기를 틀어야 한다. 이미 인위적인 습도를 위해서는 가을부터 온갖 난리부르스를 친 상황이다. https://brunch.co.kr/@5ducks/49

​그러나 가습기가 인간의 거주구역이라는 더 넓은 영역을 커버해야 하고, 보일러 바닥 난방은 20%대 구간까지 습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조금 더 습도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60% 밑으로 떨어지면 칼라데아니 필로덴드론이니 하는 애들은 사는 게 아니라 “견뎌야 하는” 상황이 온다. 좀 더 잘 견디는 식물과 아닌 식물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식물 이전에 인간이 거주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24도 이상의 난방 상태로 70% 이상의 습도가 유지되어도 불쾌감을 느끼게 되므로 인간과 식물 라이프 밸런스를 잘 맞춰줘야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날은 시간당 500ml를 가습기로 뿌려도 식물 근처조차 40%를 못 넘기는 날도 있다. 아직은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아 일단 추가 가습기 구매 없이 버텨보고는 있지만 식물 잎의 찢어지거나 끝이 타는 현상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

벨벳 계열 질감 필로덴드론 빵떡잎들은 새순이 찢어져서 나기도 한다. 사진은 잎 끝이 찢어져서 나온 베멜하.

반면, 비교적 작은 식물들은 지난번에 만든 온실 장치로 수월하게 겨울을 나고 있다. https://brunch.co.kr/@5ducks/45​ ​

완전밀폐는 아니지만 하루에 12시간 정도 미니 가습기를 틀어주면 90% 정도의 습도가 유지된다.(응애나 곰팡이는 이 정도 습도에서는 오히려 발생되지 않는다며…)

의외로 빠른 물 소비

선배 식집사님들께서는 난방이 돌아가는 바닥에 바로 식물을 놓으면 말라죽는다고 강조하셨다. 이런 데는 남의 말을 대단히 잘 듣는 나는 바닥에 안 닿도록 화분 밑에 낮은 나무선반들을 촘촘히 두었다. 하지만 생장 자체가 멈추지 않는 데다 바닥난방 자체의 영향도 있는지 생각보다 칼라데아… 같은 물돼지들은 물을 자주 줘야 했다. 2-3일에 한번씩 물을 잡수셔야 만족하는 분들도 계신다.


겨울, 식물에 물 주는 방법

이게 사실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단순했다.

12월 이후(최저온도 10도 미만) 베란다에 남아있는 식물들은 완전 큰 화분이 아니면 흙이 완전 말랐을 때 종이컵 한 컵 정도(200ml 미만)을 주면 된다.

실내에 있는 식물들은 성장을 멈추지 않으므로,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된다.(내 경우에는 식물별로 적당한 위치까지 토양 측정계를 꽂아보고 말라있으면 흠뻑 준다.) 심지어 장마철보다 더 자주 줘야 하는 것 같다… 다만 베란다가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도 15도를 넘지 않으니 화장실까지 화분을 들고가서 샤워기로 줘야 한다. 바닥에 앉을 수가 없어서 김장하듯 잎 뒷면을 꼼꼼히 씻어줄 수는 없지만.

그리고 토분도 삶아야 한다 이제 귀찮으니 하지 말까?


빡세지는 해충 관리

겨울의 실내식물들은 생장을 멈추지 않고 추워서 통풍도 덜 되기 때문에 해충이 식물에 더 머무르기 좋은 환경이 된다. 오히려 습한 한여름부터 응애가 창궐한 우리집 베란다가 다소 특수한 환경이었던 셈이다. 7월 말에 처음으로 찾아온 응애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10월에도, 11월에도, 12월에도 찾아왔다. 11월까지는 베란다에서 한꺼번에 발병한 개체의 근처 식물들에 농약을 뿌리고 환기를 할 수 있었지만, 12월에는 불가능했다. 두개 뿌리고 1시간 환기… 두개뿌리고 1시간 환기… 하는 식으로 농약을 치는 데만 거의 사흘이 걸렸다. 서큘레이터는 늘 돌리고 있지만 꼭 예상치 못한 사각지대에서 응애 또는 응애의 흔적이 까꿍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응애 발생으로 격리된 칼라데아 화이트스타. 잎끝 전반이 누렇게 뜬 것이 응애의 흡즙 흔적이었는데 건조에 의한 잎끝 타는 것과 구별이 잘 안됐다…

온라인 식물 쇼핑 금단증상이 심각합니다.

끽해야 만 원 언저리 왔다갔다하는 저렴하고 작은 식물 소품을 일주일에 한두개씩… 사다 보니 인생 최초로 쇼핑중독에라도 걸린 것일까? 막상 12월이 되고, 기온 문제로 인터넷으로 식물 배송이 원활하지 않고, 식물 신상이 입고되지 않거나 아예 안 파는 매장도 제법 있다보니 마음이 헛헛하다. 정신차리면 자꾸 당근마켓 식물 카테고리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집의 식물도 너무 덩치도 크고 갯수가 많아져서 적정한 갯수나 공간 배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겨울을 보내보니, 굳이 창가에 두지 않아도 1식물당 1식물등만 보장된다면 - 햇빛만은 못해도 식물의 생존이 아닌 생장을 보장할 수는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집 벵갈이는 햇볕이 닿지 않는 거실 안쪽에서 1식물등을 혼자 차지하고 무사히 보내고 있다. 하지만 식물등과 전기료는 식물 대비 진짜로 많이 비싸고, 빛이 생장 가능할 정도로 미치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최소한으로만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식물이 왕 크면 왕 귀엽지만… 가진 공간 및 체력과 시간 등을 고려하면 지금도 좀 너무 많이 온 감이 있다. 하지만 자연의 디자인은 늘 수집계 덕후를 설레게 해서일까, 만원 이만원의 사치에 너무 나 자신을 의존하고 있어서일까… 쇼핑… 쇼핑을 하고 싶습니다…..(그래서 느리게 자라고 찐다육보다는 적은 광량을 요구한다는 하월시아들을 찾아 기웃대게 되는데…..)

결국 당근으로 식쇼했다. 이제 좀 더 참… 아보긴 개뿔 ㅠㅠ
유일하게 홀로 겨울을 온전히 베란다에서 보내고 있는 알부카 스피랄리스. 아프리카 출신이라 장마만 아니면 버틸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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