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게 꼭 필요한 것들
ep-7. 읍내? 나들이
매일같이 산골에서 생활을 하다 군청에 일이 있어 자녀들을 스쿨버스에 태우고 시내로 향했다. 도로 좌우로 펼쳐진 푸릇푸릇한 산과 들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운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와 산과 들의 풍경에 운전만으로도 천국이 펼쳐졌다.
볼일을 마치고 면사무소에서 전입 신고로 받은 영화표 한 장을 들고 홍천시네마로 향했다. 군청에서는 5분 정도 거리여서 금방 도착했다. 평소 영화관을 잘 가지 않아 어떤 걸 봐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때마침 에얼리언을 개봉 중이었다.
내가 아는 영화관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이곳은 내가 통째 대관한 것 같았다. 객석이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정말 혼자였다. 이런 경험도 좋겠다 싶어 팝콘과 콜라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평소 공포영화를 즐기지는 않는다. 시끄러운 소리와 깜짝 놀라게 하는 영상이 유쾌하지 않아서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극장에 혼자 앉아 이 영화를 다 볼 수 있을까? 중간에 나가고 싶지는 않을까?’ 40대의 남자가 할법한 고민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명상의 기회다 싶어 마음을 가라 않히고 호흡에 집중하며 영화를 보았다. 다행히 10분 정도 지나자 한 커플이 들어왔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원래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그런지 영화는 그냥저냥 보고 나왔다. 영화 내용보다는 텅 빈 영화관 자체가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펜션지기가 있긴 하지만 자녀들 등원 후에는 매일 혼자다시피 지내다가 시내에 나오니 참 좋았다. 서울처럼 북적이지 않아 딱 좋았다. 산골 생활도 참 좋은 요즘이지만 아직은 어떤 모습으로든 사회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도시와 시골의 장점만 선택적으로 취해야 한다. 5도 2촌이든 2도 5촌이든 지방 도시를 전월세로 2년 혹은 4년 주기로 돌아다니는 삶이든 내게 맞는 방식을 천천히 고민해 봐야겠다.
- 남자에게 꼭 필요한 다섯 가지 -
중년의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가 건강, 아내, 일, 친구 그리고 취미라 한다.
건강이야 산속에서 매일 요가와 근력,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고 맑은 공기 속에서 좋은 음식을 가려 먹으려 노력하니 문제없을 것 같다.
집 사람을 매주 보기는 하지만 주중은 강제 이별을 하는 덕에 오히려 관계가 더 애틋하다. 건강이나 산소처럼 정말 소중한 것은 잠시 사라져 봐야 그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직장 말고 직업을 찾는 노력 중이다. 퇴사를 하고 직업을 찾으려 마음먹으니 막막하고 두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정신없이 혹은 분주하게 17년 가까이 일하다 휴직을 하고 산골로 와서 지낸 지 4주 차이다. 다채로운 계절 변화에 아직은 지루할 틈이 없지만 이 기회를 활용해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나의 자질과 강점을 메타인지해서 소명을 찾아 갈고닦으려 한다. 100세 시대라 한다. 절대 늦지 않았다. 아니 이제야 적기이고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길게 보고 천천히 가자.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 관계가 조금은 소원해진 요즘이 안타깝다. 나라는 물리적 껍질은 그대로지만 일이십 년간 경험들과 생각이 변했으니 알맹이는 시나브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서로 간 다른 체험들로 삶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도 크고 처한 입장과 환경도 다르니 관계가 예전 같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삶을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하라는 메시지가 내 마음이 감응한다.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 같은 동네, 같은 학교라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꾸려진 환경에서 친구가 맺어졌다면 이제는 비슷한 관심사와 소통이 되는 친구를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 나이는 상관없다.
취미는 앞서 언급한 친구와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사람은 혼자 잘 놀아야 한다. 혼자 재미있어야 같이 있어도 재미있다. 호기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과 시도로 일상을 채우자. 호기심 없는 20대보다 세상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70대가 더 청년이기 때문이다.
어랏! 생각해 보니 자녀들을 위한 농촌유학인데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에 자녀가 없다! 한 가지 자녀를 더 추가시킨다. 농촌유학은 자녀 교육, 자녀의 건강, 자녀와의 관계까지 많은 부분을 충족시켜 준다. 농촌유학이 남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 아니, 여섯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고민을 잘했고, 시도를 잘했으며, 참 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