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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憤怒] : 환경의 변화

니체의 '힘에의 의지', 그리고 환경을 바꿔라.

by 청월



'분노'란 감정을 외면한 채 현대사회를 살아가긴 힘들 것이다.

다들 당장에라도 찾아가서 따지고 싶은 상사들이 있을 것이고, 남들에게 말 못 할 억울한 사연들을

가슴 한편 구석에 두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분노'란 감정을 떠올려보면, 어떤 생각부터 드는가?

미성숙하고, 파괴적이고, 절제하기 어려운 -. 추상적인 관념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물론 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할 터지만, 사실 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논제는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는 어찌 되었든 간에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

바꿔 말하자면 '분노'란 감정을 정의하는 것보다,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자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철학자 바르휘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그의 저서 "감정의 윤리학"에서

'감정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것'이 인간의 자유와 덕목의 핵심으로 보았다.

즉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이를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분노'라는 짜릿한 감정을 어떻게 잘 써먹을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That which does not kill us make us stronger.

— Friedrich Nietzsche, 《우상의 황혼》 中



독일의 유명한 철학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그는 분노와 같은 인간의 강렬한 감정, 본능을 "힘에의 의지"로 승화시켜 자기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고

보았다.

쇼펜하우어의 '삶에의 의지(will to live)'에서 변형된 개념이 바로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

번역하면 말 그대로 "더 높은 것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며, 이런 가치를 '남들의 가치'와 종종 비교하곤 한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나 자신의 가치를 재정립하며 관철하고, 이윽고 정결해진 자신의 가치로 자아실현을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 그것이 바로 니체가 바라는 '힘에의 의지'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아마 이쯤에서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가 '분노'라는 감정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분노'라는 감정을 '힘에의 의지'로 승화시켜 자기실현을 이뤄내고자 하는 것.


여기까지는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다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모든 사람은 분노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자기실현의 과정으로 도달하지 않는다.

'힘에의 의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알지만, 자고 일어난 다음날 '분노'란 감정은

물에 젖은 솜사탕과 같이 우리 곁을 떠나버린 뒤다.


바로 분노의 본질이 "일시적인 감정"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분노'란 감정 대부분은 단순한 소모성 폭발로 끝나버린다.

잘 생각해 보라.


자기 전에, 하루 동안 느낀 자신의 결핍과 불만을 쏟아내는 철수를 상상해 보자.

철수는 오랫동안 원하는 목표나 성과를 이루지 못한 본인에게 실망하며, "왜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거지? 왜 남들처럼 잘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빠진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상황에 분노를 느끼며,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지?"라며 자책한다.

그리고 그 불만을 품은 채 철수는 풀썩 침대에 누워, "내가 부족한 건가? 아니면 그냥 운이 없는 걸까?"라고 속으로 되뇌며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터뜨린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그 분노와 불만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어젯밤의 분노는 단지 감정의 폭발이었을 뿐, 다시 일어나서 행동할 동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시 일상에 들어가며 "오늘도 또 해야지"라는 생각만 할 뿐,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나 변화를 위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어제의 분노는 그저 일시적인 감정일 뿐, 결핍을 극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기로 전환되지 않는다. 결국 그 분노는 내면의 결핍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일상에 다시 묻히게 된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존재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하다.

잔인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철수와 같은 경험을 한 번쯤은 꼭 해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분노'란 감정을 활용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일시적인 감정'이란 제약을 가진 채로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환경”이다.

'철수'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선, '힘에의 의지' '자신의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데'에 쏟아부어야 한다.

환경은 우리의 행동을 지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지만, 환경을 바꾸는 일은 용기와 대담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짧은 순간이지만 강렬하다.

우리가 안주하고 있는 환경을 뛰쳐나오게 하는 힘 정도는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넣는 환경을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예시로 우리의 철수 씨를 다시 떠올려보자.


철수 씨는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막 시작하게 된 수험생이다.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그는 더 이상 막살면 안 된다라는 다짐과 함께

큰맘 먹고 관리형 기숙사 시설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기숙사 첫날.

오전 6시에 강제로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는 철수 씨가 눈에 아른거린다.

본인의 갑작스러운 선택을 급격하게 후회하지만, 어쩔 수 없이 기숙사의 일정대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불만이 많았지만 일주일이 지난 현재, 철수 씨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묵묵하게 공부하는 중이다.


이 예시에서 떠올릴 수 있는 핵심은, 나 자신을 성장의 길로 내모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인다.


환경이 뒤바뀌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분노는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분노를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로 승화시키되, 안주하고 있던 환경을 바꾸자는 것이다.


일시적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 감정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자신으로 나아가자.

분노는 그렇게 쓰일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분노가 일으키는 작은 불꽃.

그 자그마한 불씨는, 우리가 안주하고 있던 환경을 불태워 버리기에 충분하다.

더 강렬하게 불태워 버리자.

분노는 그렇게 쓰일 때 비로소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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