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주어진 '고민'의 몫.
나는 어릴 적부터 걱정이 많았다.
기우[杞憂].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먼 훗날 미래의 일에도 불안해하곤 하였다.
특히 나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과 같이 나의 범주를 벗어난 영역에서 근심 걱정이 많았고,
그 때문인지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불안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상대방의 발언을 과하게 의식하기도 하며, 때론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감정을 견디기 어려울 때면 꼭 주변 사람들에게 이러한 걱정거리들을 털어내곤 했는데,
그럴 때면 마음 한편이 편안해지면서도 금세 또 불안해지기 십상이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독자들이 꽤나 있을 법하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혼자선 더 이상 감정을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한 번쯤은
꼭 찾아오기 마련이기에 말이다.
그럴 때면 대게 우리는 마음 한편 속 새겨뒀던 고민을 꺼내어 타인에게 털어놓곤 한다.
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지금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말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 절박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이렇게 내면의 불안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은 법이라고.
한 두 번이면 괜찮겠지만, 생각보다 타인에게 속얘기를 자주 털어놓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다.
간단한 예로, 큰맘 먹고 고민거리를 2~3시간 가까이 상대에게 쏟아내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듣는 상대방의 심리적 부담감도 큰 문제이겠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허탈함'이지 않은가.
긴 시간을 쏟아부어 상대와 걱정, 고민거리를 나누며 토론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아질 것이 없음을 알고도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삶의 지혜(Aphorismen zur Lebensweisheit)라는 본인의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For the more a man has in himself, the less he will want from other people,—the less, indeed, other people can be to him."
- Arthur Schopenhauer, 『Aphorismen zur Lebensweisheit』-
의역하자면 "사람이 자기 내면에 더 많은 것을 가질수록, 타인에게서 덜 원하게 되며 실제로도 타인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것 또한 줄어든다."와 같은 말이다.
'고민'이란, 본래 타인과 공유하며 희석시킬 잡념이 아니다.
스스로 불안을 견뎌내며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자기 성숙'의 과정이다.
생각보다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애초에 먼저 찾아야 할 대상도 아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던 것처럼, 결국 자기 내면의 성숙만이 삶의 본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고민, 불안과 같은 감정에 스스로 부딪히고 버티고 견뎌낼수록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마음도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결국, 고민은 타인의 몫이 아닌 '자신의 몫'이라는 말이다.
자신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되며,
내면이 성숙하기 위해선 불안을 견뎌내는 과정 또한 필연적으로 견뎌내야 한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내가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하는지를 포함하여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그려내면 좋다. 현재의 결핍에서 오는 불안이라면, 그 결핍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필연적이지 않겠는가. 근심걱정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태도, 그것이 본질이다.
Great men are like eagles, and build their nest on some lofty solitude.
- Arthur Schopenhauer,『The Essays of Arthur Schopenhauer』-
'고민'이란 내면의 감정 상태를 타인과 나눈다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위로받고 싶고,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감정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말이다.
다만, 스스로의 내면을 다지지 못한 채 타인에게 기대기만 한다면, 그건 그저 도피에 불과하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고독 속에서, 내면의 성장을 이뤄내기를 바란다.
그것이 '고민'이란 감정의 본질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