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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孤獨] : 타인의 시선이 사라져도 나는 존재하는가

고독의 순간은 고립이 아니다.

by 청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Stagirites)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 틀린 말은 아니다.

생존의 관점에서 생각해 봐도 과거 인간은 홀로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있었다.

개개인이 힘을 모아야만 비로소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이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꽤나 합리적인 설명처럼 들린다.


물론 ‘국가’와 ‘사회’라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도 이 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통해 소속감을 느꼈고, 개인의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삶의 질까지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그다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미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 우리가 다룰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자고로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 교류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다.

어렸을 적부터 유치원에 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자연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타인'과 구별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마치 '우리가 언제나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혼자 살아가는 것'의 본질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선 '혼자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꽤나 뒤틀려버린 듯하다.


'아싸'와 '인싸'라는 말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보통 무리 내에서 잘 어울리고 친화력이 좋은 사람을 '인싸', 인사이더(Insider)라고 칭하며,

반대로 무리 내에서 소외되고 홀로 지내는 사람 '아싸', 아웃사이더(Outsider)로 칭한다.


생각해 보면 '아싸'가 '인싸'보다 못 한 개념으로 자리 잡힌 지는 오래다.

두 신조어가 사용되는 맥락만 떠올려 봐도 간단하다.

대게 혼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저 친구 아싸야?" 라던지, "쟤는 계속 혼자 다니네"와 같이 썩 유쾌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고, 반면 주변에 친구가 끊이지 않는 이들을 두고 "저 친구는 인싸네"와 같이 칭찬 섞인 어투로 이들을 표현하기에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의식적으로 '집단'과 '개인'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싸집단에 속하며 아싸개인에 속한다는 이분법적인 관념 말이다.


'아싸'의 개념이 '인싸'를 의미하는 개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이게 비추어지는 트렌드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혼자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꽤나 퇴색된 사회가 되어버린 듯하다.


물론 최근에서야 '혼밥'과 같이 홀로 일상생활을 즐기는 문화가 조금씩 퍼지며 이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

중에 있지만, 여전히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자연스럽게 선호되는 사회는 아니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게 여겨지는 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은 본래 혼자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가치관을 발달시킬 수 있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그 속에서도 사회성을 기르고, 타인을 배려하는 법에 대해 배우고, 사회에 속하는 '나'에 대해서도 알아가야 하는 법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생각이 뒤틀려 '우리는 계속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려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될 때 생기는 오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홀로 태어나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며, 결국 끝에선 혼자 남게 되는 존재다.

혼자 있는 시간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애초에 옳고 그르다란 가치 판단의 기준선에 놓일 대상이 아니다. 그저 '당연한 것'이다.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은가.

아무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고,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의 가치관을 발달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본래 인간은 '개인적인 동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수'보단 '다수'에 속하고 싶다는 본능 때문인지, 혹 유난히 '고립'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회의 인식 때문인지. 이토록 당연하고 소중한 '고독'의 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물론 나 또한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때가 있었다.

계속해서 타인과 연락하는 행위가 나에겐 너무나 큰 의미였고,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업로드할 때마다

누군가 반응해 주길만을 기다리곤 했다. 평소보다 '좋아요' 수가 적을 경우엔 꽤나 신경이 쓰이기도 했었다.

어떨 땐 이런 '좋아요'의 비율이 나의 가치를 간접적으로라도 증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생각이 오래가진 않았다.

허례허식이 쌓여가면 쌓여갈수록 점점 더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과계에 집착할수록 '나'라는 존재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상대와 나의 관계가 그릇될까 걱정하여 타인의 눈치를 과하게 살피기 일쑤였고,

정체되어 있던 나 자신에 대해 실망감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SNS를 완전히 쉬기도 하며, 사람들과 잠시 거리도 두었다.

불안할 것 같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나'에 대해 알아가고자 다시금 펜을 들 수 있었고, 이전까지 도전해보지 못했던 분야에 하나둘씩 발을 들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글을 쓰는 취미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니 이렇게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고요 속에서 '나'란 존재를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고독'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어 살아간다.

다만, 인간은 본래 '홀로 서는 존재'암울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냥 혼자서 살아가도 충분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단순히 부정적 개념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은 채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다.


혼자서 밥을 먹어도 좋고, 산책을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도 괜찮다.

한적한 곳에 홀로 여행을 가도 좋고, 굳이 연락이 오는 걸 기다릴 필요도 없다.


'홀로 서는 시간'을 너무 두려워하진 말자.

이는 나를 잃는 것이 아닌 ''를 되찾는 시간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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