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짝사랑하는 3가지 방법
사랑이란 감정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성 간의 끌림을 사랑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친구와의 돈독한 우정이나 부모 자녀 간의 모성애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이렇듯 사랑에는 무수히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며, 그 방식 또한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사랑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 속에서도 하나의 뚜렷한 '공통분모'가 존재하는데,
바로 '나의 마음을 타인에게 아낌없이 준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 친구끼리 서로 힘든 상황에서 의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일부를 타인에게 떼어준다니, 이렇듯 사랑이란 단어는 참으로 낭만적인 듯하다.
다만 '낭만'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아름답고 몽환적이진 않다.
유독 많은 이들의 가슴에 오래 남는 사랑이자, 당신 또한 살아가며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사랑.
바로 '짝사랑'이다.
오죽하면 '첫 짝사랑은 잊지 못한다'란 농담 섞인 말도 있지 않겠는가.
짝사랑이란 단어만 들어도, 기억 저편에 묻어둔 추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를 것이다.
원하지 않아도 문득 누군가가 생각나고, 때로는 그 사람이 좋아하던 관심사에 괜스레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되는 그런 경험 말이다.
당장 유튜브에 '짝사랑 플레이스트'만 검색해 봐도 조회수가 200만, 300만을 훌쩍 넘어서는 영상들이
넘쳐난다.
'짝사랑 포기할 때 듣는 노래' 라던지, '그럼에도 그 사람을 좋아할 때 듣는 노래' 라던지 말이다.
수백만 조회수의 영상과 높은 비율의 '좋아요'와 '댓글'이라니, 아무래도 '쓰라린 짝사랑'의 추억이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나 또한 그런 구구절절한 사랑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많이 했다면 더 많이 했을 뿐.
나름 '자만추'에 한 사람을 좋아하면 끝까지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고 순수했다.
상처도 많이 받고, 지칠 때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내 가치관이나 그 시간이 헛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그 속에서 성장했고, 후회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에 말이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할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건강하게 짝사랑하는 방법'이다.
그것이 제목을 '외사랑으로 끝난다 할지라도'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것이 짝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까우리라 믿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유튜브엔 짝사랑 플레이리스트 조회수가 기본 몇 백만씩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조회수가 높은 영상들을 살펴본다면,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후회, 미련, 망설임과 관련된 키워드가 제목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결과가 바뀌지 않았을까', 혹은 '먼저 말을 걸어봤었더라면 …'
인간은 지나버린 과거에 집착하고 후회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선택과 순간들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조금도 미련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리고 후회와 미련은 다름 아닌, '열린 결말'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끝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그 끝을 보기 두려워하는 존재'
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지만, 막상 그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기엔
두려운 마음만이 앞선다
혹여나 거절당하는 것은 아닌지, 날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아닌지.
잡념이 머릿속을 맴돌며, 불길한 예감만이 나를 감싼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잡념 속에서 행동을 망설이게 되고, 시간이 지나 결과를 확인하지 못 한 채 짝사랑이 끝나버리고 만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을 수도 있겠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렇게 다들 '열린 결말'의 짝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가슴 한편에 두고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더욱이 '후회 없는 짝사랑'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최선을 다하여 상대에게 표현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대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짝사랑의 결과가 어떻든, '후회'와 '미련'없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충분하다.
하지만, 후회 없이 사랑하기 위해선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필요하다.
# 첫 번째,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에'만' 집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짝사랑의 결과에 있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상대에게 주말에 새로 나온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는 연락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받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상황이겠지만, 이번에는 거절당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용기 내어 상대에게 연락을 한 것은 당신의 통제 범위 내에 들어가지만, 잘 생각해 보라.
'상대의 반응'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잔인하지만, 거절은 상대의 몫이며 당신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말이다.
즉, 거절당하더라도 지나치게 상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와 그렇지 않음을 구분하는 것,
상대의 몫과 내 몫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 두 번째,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짝사랑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는 시기를 겪게 된다,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 느끼며, 심하면 자기 비하에 이를 정도로 스스로를 갉아먹곤 한다.
상대방이 나를 바라봐주면 좋겠지만, 그 대상이 내가 아닌 타인일 때면 '설상가상'.
증상은 더욱 심해지는 편이다.
정신 차리자.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넣고 본인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더라도, 아쉽게도 변하는 것은 없다.
정체되어 있고, 현실에 안주하며 낙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는 드물지 않은가.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가장 빛나는 법이기에, 스스로를 빛내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 빛에 이끌려 상대가 다가와준다면 최고의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이 쌓아온 노력과 성장은 영원할 것이다.
# 마지막,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며 사랑해야 한다.
짝사랑을 하는 동안, 자존감이 낮아지는 시기를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이는, 다름 아닌 본인 스스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키가 더 컸더라면 ⋯. 내가 더 부유했다면 ⋯. 내가 더 외향적이었다면 ⋯.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은 '나 자신'이다.
'짝사랑의 끝'이 '자존감의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마음을 지켜낼 줄 아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남을 사랑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법도 깨닫게 되었다.
# 척애[隻愛]
한쪽만 상대에게 마음을 주는 사랑.
분명 힘들고, 외롭고, 때론 죽을 만큼 힘들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해 보자.
적어도 그 길에 '후회'와 '미련'은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