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기에 소중한 법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신에게 한 가지 묻고자 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어떨까?
아무래도 매 순간이 즐거울 테고 꿈만 같을 터이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희로애락을 겪어낸다.
때론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지?' 싶을 것이고, 어떨 땐 또 '일이 너무 잘 풀린다' 싶다.
이렇듯 한 치 앞 모르는 인생을 표현하는 속담이 있는데,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 塞翁之馬)",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기쁜 순간이 왔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으며,
반대로 불행한 시기가 영원히 지속되지도 않는다.
때론 좋았던 일이 나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나쁜 일처럼 보이던 일이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듯 좋은 일을 겪다가도 언제든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으며,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을 겪다가도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여기까진 모두 납득했으리라 믿고,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개념을 도입해보고자 한다.
바로 어렸을 적 배웠던 함수(function)의 개념이다.
그렇게 어려운 개념이 아니니, 벌써부터 책을 덮을 필요는 없다.
함수란, 간단히 말해 어떤 입력값(x)에 따라 출력값(y)이 결정되는 관계다.
만약 x축이 '시간', y축이 '행복의 정도'를 나타낸다면,
시간(x)이 바뀜에 따라 우리의 행복(y)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 또 다른 예시로 '자판기'를 생각할 수 있겠다. '사이다'를 선택하면 '사이다'가 나오고, '콜라'를 선택하면
'콜라'가 나오는 그런 '인풋'과 '아웃풋'의 관계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글로 설명하니 복잡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간단하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함수로 나타내보자.
기쁜 일을 겪을 때엔 함숫값이 커지고, 나쁜 일을 겪을 때엔 함숫값이 작아지는 그래프로 말이다.
복잡해 보이는 그래프이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다른 점은 없다.
함숫값(Happiness)이 클수록 행복한 감정 상태에 가깝고, 작을수록 불행한 감정 상태에 가깝다.
함수가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순간, 즉 국소적으로 가장 큰 값을 가지는 지점을 '극대'(local maximum)
라 하며, 위 그래프에선 이 지점이 "Positive Emotion". 상대적으로 가장 행복한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함수가 감소하다가 증가하는 순간, 국소적으로 가장 작은 값을 가지는 지점을 '극소'(local minimum)라 하며, 이는 곧 "Negative Emotion". 상대적으로 가장 불행한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기쁜 일이 연이어 일어날 때면 그래프의 함숫값(Happiness)은 증가하고, 나쁜 일이 반복될 때면 그래프의 함숫값(Happiness)은 감소한다. 평상시처럼 잔잔한 감정 상태도 분명 존재할 터이지만, 특정한 사건을 겪었을 때에 일어나는 감정 상태의 변화만을 고려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서도 한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모든 감정의 움직임이 함수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혹은 '함수의 연속성은 왜 보장되는가!'
처럼 말이다.
맞는 말이다. 감정의 변화를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함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역치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삶이 일련의 연속적인 그래프라면 그 안에서 오르내림은 늘 반복되는 하나의 경향성이라는 점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 '경향성'을 임의의 그래프를 통해 대략적으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이렇듯 행복할 때와 행복하지 않을 때의 감정을 연속적인 함수로 나타내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극댓값 다음엔 극솟값이 존재하며, 극솟값이 존재하면 그 후엔 극댓값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극대, 극소, 극대, 극소...
좋은 일만 일어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이렇듯 극대가 있다면 극소도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마치 고진감래(苦盡甘來) 하듯 말이다.
쓴 것이 오면 단 것이 오게 되고, 단 것이 오게 되면 자연히 쓴 것이 오게 되는 법이다.
즉, 기쁜 순간은 영원하지 않으며 언제든 좋지 않은 일이 닥칠 수 있다.
감정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 아닌, 일시적인 상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물론 기쁜 일을 겪은 후에 꼭 좋지 않은 일을 겪어야만 하는 법은 없다.
단순히 평상시의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감정의 극솟값이 꼭 불행한 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에선 좋은 일이 일어나듯 좋지 않은 일도 끊임없이 일어나기에, 반복되는 감정의 요동침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삶의 태도는 다음과 같다.
바로 기쁜 순간이 찾아왔다면 그 순간을 즐길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함수로 비유하자면, 극대가 찾아왔을 때 이를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기쁨이란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기에 말이다.
동시에 아무리 힘든 일을 겪게 되더라도,
시간이 지나 행복한 일이 찾아오게 된다.
마치 극소를 지나 자연히 극대가 찾아오게 되는 법처럼 말이다.
지금 당장 슬플지라도, 크게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극솟값을 지나 극댓값을 마주하듯, 당신에게도
행복한 순간이 또다시 찾아올 테니 말이다.
“Even a happy life cannot be without a measure of darkness, and the word happy would lose its meaning if it were not balanced by sadness.” *『C.G. Jung Speaking』(1977)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이 1960년 영국 언론인 고든 영(Gordon Young)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로, 현재는『C.G. Jung Speaking: Interviews and Encounters』에 수록되어 있다.
행복한 삶조차도 어느 정도의 어둠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슬픔과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면 행복이란
단어는 그 의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는 법이고,
극소가 존재하기에 극대가 존재하는 법이다.
어쩌면 늘 행복하기만 했다면, 그 기쁨의 가치를
결코 제대로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삶의 희로애락은 순환하며, 극대와 극소가 무한히 반복되는 삶의 굴레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 순간들은 영원하지 않은 법이기에,
찾아오게 될 행복한 순간들을 마음껏 즐기길 바란다.
마치 하늘에 뜬 무지개가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알기에
그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