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Nostalgia』: 어제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추억은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by 청월



요즘 즐겨 듣는 노래가 있다.

도시(Dosii)의 〈추억속의 그대〉, 원래는 1988년 가수 황치훈이 부른 곡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원곡과는 또 다른 듣는 맛이 있다.


...

희미해지는 지난 추억속의 그 길을

이젠 다시 걸어볼 수 없다 하여도


이 내 가슴에 지워버릴 수 없는

그때 그 모든 기억들

...


— Dosii,〈추억속의 그대〉中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회상하며, 그 추억을 그려낸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다.


가끔은 무척이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 이 순간, 현재를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새삼 느낀다.

추억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잊고 지낸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주며,

때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추억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순간이 찾아오는 법이다.

과거의 특정 시기나 장소에 대해 그리워하며 옛 시절의 추억에 잠기는 "노스탤지어(nostalgia)" 대표적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향수병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 본래 그리스어 'notos'(귀향)와 'algos'(고통)에서 유래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고통'을 의미했지만, 시간이 흘러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감정이 때론 "현실 도피적 회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와 비견하여 현재가 너무나도 가혹할 때면, 현재를 잊어버린 채 과거의 그리움에 매몰되어 버린다.

지나간 순간을 되새기느라 현재의 가치를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오게 되었지만, 옛 인연을 고집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


나는 대학 동기들과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편했고, 늘 그리운 마음이 있었다.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을 때나, 즐거운 일이 생길 때면 꼭 옛 친구들을 찾아가곤 했다.

그들을 만나 신나게 놀고 올 때면, 무척이나 행복했고 즐거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았다.


앞으로 내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사람은 대학 동기들이고, 고등학교 친구들도

각자 나름대로 대학에서의 인간관계가 있었기에

'나만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일쑤였다.


* 대학이 7년제이기에, 적어도 20대의 대부분을 대학 동기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그저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한 행동인 것은 아닌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무리에서 동떨어져있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옛 친구들을 도피처 삼아 현실을 애써 합리화하는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라도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고민이 들기 시작한 때부터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기가 되었고, 조금이나마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고자 노력했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꽤나 힘들었다.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도 했고, 인간관계 하나하나에 매몰되기도 하였다.


* '감정의 이름을 묻다'에 수록된 목차 대부분의 원천이 되었다.


갈등이 생기면 마음 쓰기 십상이었고, 언제든 바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나간 과거에 매몰되어 좋을 것이 없었다.

계속해서 동기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자 노력했고, 이런 고민을 하던 나를 도와준 이들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행복했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거 같다.


시간이 흘러 연말엔 다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며, 새해를 함께 보내기도 하거나,

술도 실컷 마시며 재미있게 놀았다.

참으로 행복했고,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과거이자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만약 계속해서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과거에 안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동기들과 그렇게까지 친하지 못한 상태로 남은 한 학기를 보냈을 것이고,

어쩌면 수능을 한 번 더 쳤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즐겁게 놀던 2학기의 순간들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며, 새로운 이들과 친해질 수 있던 기회마저 놓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추억은 과거의 산물이다.

추억이 가진 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추억은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에 속한다는 뜻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때의 추억들이 그립다.

참 즐거웠고, 그 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추억은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과거의 추억들이 진심으로 그립다 할지라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기에 말이다.

과거의 감정과 추억에 지나치게 매몰될수록,

현재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부질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전에 말했다시피, 누군가에겐 삶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해선 안된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바라보는 존재이기에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과거에만 집착하던 내가 현실을 마주했을 때야 비로소, 동기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과거에서 벗어나 마주한 현실은 또다시 과거가 되었고, 그 과거는 새로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억을 쌓아나간다.


과거는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공간이다.

우리가 추억하는 그때 그 순간은 한 때 현재였고, 바라던 미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과거에 머물기보다, 언젠가 추억으로 남게 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살아가야 한다.

과거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둔 채로 말이다.


나 또한 과거의 순간이 그립지만, 과거에 매몰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추억이 될 순간들을 위해, 현재를 살아갈 것이기에 말이다.


가끔은 현실에 지칠 때면, 과거에 기대어 쉬어가도 좋다.

다만, 더 좋은 미래를 꿈꾸며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자.

지나버린 과거에 집착하며 현재를 낙담하기엔,

앞으로 찾아오게 될 추억의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넘쳐나지 않겠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