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안아준다
낯선 곳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처음 와본 동네, 처음 보는 풍경인데도
왠지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
그 붉고 길게 드리운 해질녘의 빛이
문득, 오래전 기억을 끌어올린다.
미국에서 부모, 형제와 떨어져 살던 시절.
그때, 해가 지는 시간은 유독 더 외로웠다.
하루가 저무는 그 시간,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불 꺼진 작은 방, 따뜻한 밥 냄새조차 희미했던 그 공간.
전화기 너머 들려오던 가족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해질녘이면 더 또렷하게 그리웠다.
그때의 나는, 내가족 중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랐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들려오길 바랐다.
그러나 해는 언제나 말없이 졌고,
나는 그저 그 노을 속에서 고요히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오늘, 이렇게 또 다른 낯선 곳에서
하루가 저무는 장면을 바라보며
그때와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쓸쓸함은 여전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평온도 함께 깃든다.
그 시절의 외로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더 단단해졌다는 걸 알기에.
나이가 말해주는 걸까.
아니면, 삶이 조금은 나를 어루만져준 걸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저녁노을의 무게를
지금은 담담히 바라볼 수 있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그때의 나에게 속으로 말을 건넨다.
"잘 버텨줘서 고마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