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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Feb 17. 2023

삼 년의 압축 서사

세 살 아이가 여섯 살이 되고 나니


하원길에 만나는 아파트 상가에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었다. 호기심 발동기를 작동시킨 미남이는 목을 길게 뽑아 안을 들여다보겠다며 용을 쓰더니 발뒤꿈치라도 보태겠다고 그래봐야 달라질 키가 아닐 텐데 끙끙 애써가며 까치발까지 동원한다.

계단 세 개를 더 올라야 열 수 있는 출입문이 달린 가게인데 녀석의 시야가 안으로 가 닿을 리 없다.

애쓴 미남이는 소기의 성과를 전혀 달성하지 못했는데 목을 빼고 고 작디작을 발꿈치를 힘껏 올려보는 아이를 보는 내 눈만 호강을 했다. 내 광대는 순간 몇 센티쯤 승천하고 양쪽 입꼬리는 45도 정도 급경사를 만들어 올라간다.

뭐가 있나 들어가 보자는 녀석에게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며 잡아 끄는 내 손아귀에 쥐어진 여린 손의 감촉이 왜 그리 보드랍고 보드라운지.....

손을 잡고  아파트 담을 따라 둘이 걷는 다정한 길,  

들이 오가는 등 뒤의 요란한 소음을 밀어내고  어디서 흘러온건지 맑은 새소리가 내 귀를 훔친다. 이미 가을인데 따사로운 볕을 실은 살캉한  봄바람이 가슴을 어루만진다.

좋은 소리를 부르고  시간을 역주행시킨다.

바다를 가른 모세처럼 녀석은 매일 나에게 기적이다.

다음날 하원길에 두 군데 놀이터를 찍고 다시 반찬가게 앞이다. 전날처럼 목을 빼고 까치발을 하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열린 출입문으로 주인이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했다. 지갑이 없어 최근 문을 연 가게를 그냥 나올 수도 없어 미남이 손을 끌었다.

엉덩이를 쑥 빼고 두발을 땅에 딱 지탱하면서 "시더 요 오"

시선은 벌써 가게 안을 훑고 있었다.

그래봐야 그 키에 휑한 천장 스캔이 전부일테다.

주인이 재차 들어오라고 하니 버티는 녀석의 힘이 더 짱짱하다. 백기를 들었고, 앞장서는 녀석을 따라 들어갔더니 폼이 가관이다. 두 팔을 허리 뒤로 하고 위생 점검 나온 구청 공무원처럼 가게를 한 바퀴 시찰을 한다.


이건 뭐예요?

감자볶음이야.

마디 깼네.

이건 뭐예요?

코다리 찜 우와

마디겠다.

이건 뭐예요?

콩나물

우와 마디께다.

정작 먹지도 않은 것들이면서 빈소리를 줄줄 흘린다.

립서비스 대가의 기질이 이때부터 드러났던 것 같다.

가게 구경이 흡족했던지 서툰발음에 마음 가득 담은 인사가  카랑카랑하다.

"안ㆍ넝ㆍ이ㆍ게ㆍ데ㆍ요"

~~~~~~~~~~~~~~~~~~~~

미남이는 나의 조카손주다.

미남이 엄마는 결혼 전에 우리 집에서 2년을 같이 살다 결혼을 하며 분가?를 했다. 좀 더 세세하게 말하자면 결혼 두 달 전에 신혼집으로 미리 들어갔다. 신혼살림을 준비해 비워 두느니 들어가 살게 됐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가 좀 재밌다.


시아버지 되실 분이 이모집에서 눈칫밥을 더 먹느니 신혼집에 들어가 살면 어떻겠냐고 하셨다는데...... 그냥 웃으려고 조카가 지어낸 얘긴지 시아버지가 장난반 진담반으로 진짜 하신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술자리에서 한 얘기라 다 웃고 지났는데 지금 살짝

, 그것이 알고 싶다,

, 그래서 내일 이 진실에 대해 물어보려고 합니다,

각설하고, 결혼해서 2년 안돼 미남이가 태어났고 육아휴직 중인 조카집에 육아에 보탬이 돼 보겠다며 오가게 됐다. 그런데 몇 번 오가 고나니 육아 도우미를 자처했던 첫 마음이 점점 변질됐다. 집에만 돌아오면 도마가 미남이로 보이고 청소기가 미남이 딸랑이로 보이고 물컵이 미남이 분유병으로 보였다.

미남이 집을 찾는 이유가 달라졌다. < 육아 도우미>에서  사심 가득한 <내 마음 돌보미>로 신분전환이 된 것이다.

만고에 잘 먹고 잘 자는 순한 아이라 조카는 오히려 이 정도는 키울만하다며 힘든 내색을 안 하니 나중에는 눈치 없이 드나드는 시어머니처럼 슬슬 눈치를 보면서(도) 갔었다는.

미남이 집과 우리 집은 걸어서 사십 분, 운동삼아 걷기 딱 좋은 거리라 지금은 걸어서 출근한다. 그런데 그때는 버스가 무슨 거북표 엔진으로 제작 됐는지 왜 그리 늦고 속 터지게 답답하던지.

집만 나서면 일초가 급해져서 걷는 건 나의 교통수단에서 무조건 제외. 버스에서 내려서는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 뛰는 속도로 숨이 턱에 차도록 뛰었다. 그래서 숱하게 눌러댔다. 카카오 택시 호출 어플 <T>

미남이는 여섯 살이 됐다.

몇 초라도 빨리 보고 싶어 길에 뿌려댔던 내 돈이 기어이 눈에 아른거리게 만드고야 마는 말 안 듣는 여섯 살이란 말이다.

오늘만 해도 놀이터에서 친구가 준 초콜릿 두 개 중 하나를 먹고 옆에서 쳐다보는 친구에게 하나 주자고 달래는 내 부탁을 무시하고 지 호주머니 속으로 쏙 집어넣는 양심 없는 짓을 했다.

형아 자전거는 얻어 타면서 저 킥보드를 타보겠다는 여자애한테 "안돼, 망가진고오" 하면서 심술을 부렸다.

가끔 이렇게 나오면, 애들이 다 그렇지라고 머리로 이해를 할지라도 이럴 때마다 내가 본전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늦게까지 놀다 들어와 서둘러 목욕을 시켰다.

손바닥에 비누를 짜서 녀석의 몸에 문질문질 비누질을 하며 말했다.

"미남아 아까 초콜릿 왜 안 나눠줬어?"


""또 시작이네 할머니 또 시작이야"

내가 자주 하는 말이 그대로 여과없이 미남이 입을 통과한다. 움찔했다. 글자와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사이인 녀석이 듣는 말은 스펀지처럼 쏙쏙 기억한다.

누구나 내 자식은 천재인 줄 알고 키운다더니 나도 동참해야겠다. 내가 보기엔 그 분야서는 천재성이 보이는 아이다. 그래서 말 잘한다는 주변의 칭찬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툰 말을 못 알아들어 미남이를 본의 아니게 괴롭히곤 했던 세 살에서, 한 살 아래 동생이 실수로 이름이라도 부를라치면 형아로 부르라며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고 똑 부러지게 교육시키는 여섯 살 형아가 됐다.

이틀 전에는 체해서 놀이터를 못 나왔더니 뒷날 두 아이 엄마로 부터  무슨 일 있었냐는 안부를 들었다.

우리 둘이 같이한 날들이 쌓이고 미남이는 어느새 놀이터 터줏대감으로 인싸로 나름 동네 유명인사가 됐다.

집에 아이들이 놀러 오는 날들이 많아지고 어린 동생이 있는 아이는 종종 내 돌봄을 받는다.

어제 세명의 아이가 하원 후 미남이 집에서 한 시간 반동안 놀았고 내 폰에는 여섯 엄마의 번호가 저장돼 있다.

미남이 엄마는 그러지 말고 차라리 방과 후 교실을 개설하라고 나에게 농담을 한다.​​

"곧 난청올것 같다, 산재 신청이나 미리 준비해"



머리를 맞댄  이제 막 여섯살된 저 아이들.

 말은 서로 먼저 하겠다며 다투고  내가 한 말은 귀에 가기 무섭게 튕겨서  공중분해 시키는 녀석들이다.

 시끄러워 귀가아파 죽겠네  말 안들어 징해징해 하면서도  올망졸망 저 모습들을 보면 어느새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일 또 만나"

닫히는 엘리베이터에 앞에서 입꼬리가 또 정신을 못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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