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도사, 도가 톻하는 사찰이 아니야.
나는 오늘 통도사에 간다 1
- 통도사, 도가 통하는 사찰이 아니야.
이병길(지역사 연구가)
“통도사 가는 길”이란 소설이 있다. 첫 구절이 “나는 왜 통도를 ‘通道’로 알았을까.”로 시작하여, “그러나 이제 통도는 ‘通道’가 아니라 ‘通度’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로 끝나는 소설이다. 소설은 서울에서 대구, 삼랑진, 물금, 양산을 거쳐 통도사로 가는 여정에서 작가의 삶을 되새기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상실·거부·갈등·차단·억압의 현실인 서울을 떠나 아무것도 금하지 않는 세계인 물금(勿禁)을 거쳐 통도사에 도착한다. 이러한 여로에서의 사소한 풍물과 상념은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이 상징은 ‘통도(通度)’에서 완성된다. 작가는 우리의 삶을 금(禁)의 시대로 보고 그것을 근원적으로 넘어서는 초월의 지평을 암시하고 있다. 공(空)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주인공을 통해 경계 없는 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조성기의 소설은 통도사 가는 길과 연관한 최초의 소설이다.
○ 삼보(三寶) 사찰, 그것 만이 아닌 통도사
통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의 본사이며 전국에 100여 개의 말사와 국외에 10여 개의 포교당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다. 또한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 염불원(念佛院)을 갖춘 총림(叢林)으로 1984년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삼보 사찰은 불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 통도사.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팔만대장경이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 그리고 스님들의 수행으로 유명한 승보사찰 송광사이다.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삼보(三寶) 사찰 중의 으뜸인 불보종찰(佛寶宗刹)이다.
우리나라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이 많은 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다섯 곳을 5대 적멸보궁이라고 한다. 영축산 통도사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이 바로 그곳이다. 모두 신라시대 자장스님이 당나라 유학길에 모셔온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분산하여 모신 곳들이다. 우리나라 적멸보궁에 모셔진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모두 통도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가 실재 통도사에 있다. 진신사리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인쇄본이 통도사에 있다. 이를 만해 한용운 스님이 공부하여 <불교대전>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통도사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원이 곳곳에 있다. 그러니 통도사는 삼보(三寶)를 갖춘 사찰이다. 통도사는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21년 11월1일 통도사는 현재 한국 사찰 중에 유일한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 통도사 이름의 유래를 아나요
똑같은 질문을 한다. 한때 “도를 아십니까?”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도를 통하기 위해서 통도사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다. 왜 통도(通道)가 아니고 통도(通度)일까? 스님들 역시 도(道, 깨달음)를 통하여야 하지 않는가? 통도사에 있는 전각들과 탑, 석등 이것들과 어우러져 있는 자연, 그 속에서 불법을 꽃피운 위대한 고승들, 어느 하나 불연(佛緣)과 떼 놓을 수 없다.
첫 번째로 통도사라는 이름은 ‘이 산의 모양이 인도 영축산과 닮아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차산지형 통어인도영축산형)’고 하는 것에서 유래한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살았던 당시 마가다국(Magadha) 왕사성(Rajraha)의 동쪽에 있던 ‘그라드라(Gradra)’라는 산이다. 이 산은 흰 헝겊에 싼 시체를 새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하는 조장(鳥葬)을 하였던 곳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독수리들이 많았고 산봉우리의 모양이 독수리 머리 같다고 하여 ‘영취’라 이름 하였다.
한때 영축산은 ‘취서산(鷲栖山)’이라고 불렸다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영축산(靈鷲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시대의 지도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취서산이라 기록되어있다. 취서산은 독수리가 사는 산이란 뜻이다. 통도사 일주문을 쓴 흥선대원군이 ‘靈鷲山’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부터 이처럼 표기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독수리 취(鷲)’의 한자음대로 많은 사람이 영취산으로 읽었다. 그러다 2001년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는 그동안 사용해왔던 취서산, 축서산, 영취산은 불교와는 맞지 않아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하였다. 실재 우리나라에는 영축산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 불교 사찰이 있다.
영축산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최초로 『법화경』을 설법하여 더 유명하게 되었다. 『법화경』을 설법할 때 그 모임을 일러 불교에서는 영산회(靈山會) 또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 하며, 이 모임의 장면을 영산회상도라고 하며, 법당의 후불탱화로 많이 사용된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법화경』에 있다. 모든 생물은 전생의 업보를 안고 살며 그 업보가 사라질 때까지 윤회하지만, 해탈에 이르러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를 벗어난다. 누구나 깨달음에 이르면 부처, 깨달은 자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누구나 통도사가 단순히 영축산과 닮았다는 형상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한 뜻과 통한다고 해서 통도사라 이름했다’라고 보는 것이 더 올바를 것 같다. 이것이 통도사 이름의 첫째 유래이다. 단지 산 모양이 닮아서라기보다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도사 이름의 두 번째 유래는 ‘승려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이 계단을 통한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 했다(爲僧者通而度之 위승자통이도지).
『삼국유사』권5, 자장정율조(慈藏定律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라에서 계(戒)를 받고 불법(佛法)을 받드는 것이 열 집에 여덟아홉 집이나 되었으며 머리를 깎고 승(僧)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해마다 불어났다. 이에 통도사를 창건하고 계단(戒壇)을 쌓아 사방에서 모여드는 사람을 받아들였다.”
통도사의 기본정신은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한 적멸보궁에 있다. 이는 바로 통도사 창건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도사의 역사는 적멸보궁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은 통도사 최상의 성지이며 불보사찰의 근거이다. 신라시대 부처님의 뜻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공간이 바로 적멸보궁이었다. 지금은 대웅전 남쪽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 편액한 곳에서 수계를 한다.
금강계단의 금강은 모든 것을 깨뜨리는 반야의 지혜를 은유하여 쓰는 말이다. 모든 스님은 이곳에서 계율을 받고 금강석처럼 모든 번뇌 망상을 부수고 해탈로 나아가라는 강한 수행정신을 담고 있는 장소이다. 이 계단은 스님들과 신자들의 수계장소일 뿐만 아니라 예배와 기도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통도사는 계율을 그 근본정신으로 하는 사찰이다. 불교신앙의 첫째 요건인 계율을 수지하고 확고부동한 불퇴전의 믿음을 지닐 수 있는 요건인 계율을 통도사는 그 창사 정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이 출가의 첫 출발점이다.
일찍이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왕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정신이 통도사에서 출가한 사람의 근본 정신이 되어야 하리라
. "내 차라리 계(戒)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 년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吾寧一日持戒死 오녕일일지계사 不願百年破戒而生 불원백년파계이생).“
세 번째는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다(通萬法 度衆生 통만법 도중생).
불교는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어진다. 소승은 개인의 깨달음에 머물지만, 대승은 개인의 깨달음이 사회로 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말은 대승불교적으로 보면 '한편으로는 온갖 진리를 두루 꿰뚫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뜻이다. 불교 그림 중에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하여 10단계로 그린 그림을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라고 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불성(佛性)이 있는데 이 불성을 소에 비유한 것이다. 이 그림의 마지막은 입전수수(立廛垂手)이다. 스님은 큰 포대를 걸머지고 마악 마을로 들어가기 전이다.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줄 복과 덕을 담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러서는 마을로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에 이르는 가장 마지막 단계이다. 통도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개인의 깨달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대사회적 깨달음의 운동에 매진하라는 의미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 통도(通度)
통도사의 통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깨달음에 이르는 자는 통도사에 와서 수행을 하라.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자기 자신이 부처임을 자각하라.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통도사 대웅전에 불상이 없지만, 내면의 자신을 부처로 바라보라. 출가 수행자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아 먼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계율을 철저히 지킬 것을 금강계단에서 맹세하라, 그리고 깨달음에 이른 자는 절대 개인에 머물지 말고 사회적 계몽운동을 하는 정신적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통도사라는 이름의 진정한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