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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길 Sep 02. 2023

나는 오늘 통도사에 간다(2)
- 산문이란 뭐지?

나는 오늘 통도사에 간다(2)

산문이란 뭐지     


이병길(지역사연구가)


예전의 사찰은 마을 가까이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그런 고민을 하셨겠지요. 마을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으로, 설법을 듣기 위해서 부처님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이 왕래하기에 수월한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더욱이 낮에는 많은 사람이 내왕하여 붐비는 일이 없고 밤에는 소란스러움이 없는 조용하게 머물며 조용히 수행하기에 알맞은 곳이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부처님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竹林精舍)나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원정사(祇園精舍) 역시 마을 가까이 있었습니다. 신라시대 경주의 사찰도 그러했지요. 하지만 사찰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위치가 달라졌습니다.    

 

○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 산문은 언제 생겼을까     

▲ 통도사 산문 이정표 석주(신/구)

통일신라 말기, 고려 초기에 사찰은 포교의 공간에서 수행자의 공간으로 변모됩니다. 선종(禪宗)이 도입되어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생깁니다. 가지산, 실상사. 동리산, 희양산, 봉림산, 성주산, 사굴산, 사자산, 수미산을 중심으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키며 수행하는 스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때 산에 사찰을 만들어 개산(開山)이라 했습니다. 그 스님들의 법맥을 이어가는 스님은 그 산에 들어가야겠지요, 산문은 수행하러 가는 출발점이자 스승을 찾아가는 첫걸음을 내딛는 곳입니다. 이때부터 사찰은 마을보다 산에 있었습니다. 혼잡한 마을보다 한적한 산이 수행환경이 좋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산문이란 말이 생겼습니다.     


산은 마을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며, 또 낮기도 하고 높기도 합니다. 어느 산이 스님 수행에 적당할까요. 수행을 중시하면 마을과 멀고 높은 산중으로 들어가야 하겠지요. 부처님이야 시방삼세 계시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래도 신도들과 조금은 가까이하려면 적당히 마을에서 멀고 적당히 높은 산에서 수행하겠지요. 예전과 달리 산속의 사찰도 험한 산이 아니면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지요. 통도사는 적당한 곳에 있는 사찰 같습니다. 자장 스님이 사찰을 창건하실 때 이런 점을 염두에 둔 혜안을 가지셨나 봅니다. 그때는 구산선문이 생기기도 전이었던 선덕여왕 시절이었거든요.     


참, 부처님이 계신 수미산(須彌山)은 세계의 중심이자 제일 높은 곳이었습니다. 수미산 중심으로 주변에 둥글게 여덟 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 사이에는 바다가 있었고요. 그래서 9산(山) 8해(海)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바다에는 동서남북에 각 대륙이 있어 4대주라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남섬부주인데 우리 인간이 사는 곳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만나기는 절대 쉽지 않겠죠. 그러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수행하는 스님 만나기도 쉽지 않겠죠. 그래서 우리는 산문을 들어서서 한참 걸어가는 것입니다.

          

○ 통도사 영축산문     


통도사에서 첫 번째 만나는 문은 ‘영축산문’입니다. 영축산으로 들어가는 문이지요. 여기부터 통도사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통도사 신평마을에서 산문 입구까지는 일제강점기 거리 기준으로 5정 22간(약, 588미터)입니다. 산문 이정표가 신평중앙길 입구에 지금도 있습니다(옛것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습니다).     


    1983년 지금의 영축산문에 세워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냥 마을에서 통도사로 가는 길목이었고 무풍한송길의 시작이었지만 ‘산문’은 없었습니다. 돌기둥 두 개가 서있었습니다. 현재는 무풍한송길 입구에 세웠습니다. 


영축산문이 세워지기 이전에 통도사 매표소는 현재의 부도원이 있었던 마을에 있었습니다. 1989년 부도원 생기기 전에 그 일대에 여관과 음식점 등이 있었지요. 그때 이전한 음식점들이 지금 산문 주차장 주변으로 옮겼지요.     

▲ 통도사 영축산문(2010년), 지붕 위에 보이는 산이 영축산이다.

 ‘영축산문(靈鷲山門)’은 1983년 당시 주지 성파스님이 주도하여 건립하였으며, 현판은 노천당(老天堂) 월하(月下) 스님(1915∼2003)의 글씨입니다. 2023년 현재 성파스님은 통도사 방장스님이시자 조계종 종정이십니다. 예전에 월하스님도 그러했습니다.    

  

월하 스님은 해방 이후의 통도사를 있게 한 산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84년 영축총림으로 지정된 통도사의 초대 방장을 했습니다. 1932년 18세에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해 1940년 통도사에서 구하 스님으로부터 보살계와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오대산 한암 스님 문하에서 몇 차례 안거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통도사에서 정진하면서 구도자의 길을 걸은 스님은 1954년 효봉・청담・인곡・경산 스님과 함께 사찰정화 수습대책위원회에 참가했고, 이후 총무원 총무부장, 감찰원장, 종회의장을 거쳐 1994년 종정에 취임하였습니다. 한국 사찰 정화운동의 산증인입니다. 스님은 불제자의 기본 도리를 철저히 지키며 엄격한 수행 생활을 실천해 존경받아왔습니다. 또한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한 것으로도 유명해 누가 찾아가든 시간이 허락하면 내치는 법이 없었고, 격의 없이 법문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성파스님은 시(詩)서(書)화(畵)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그 능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통도사 산문은 한마디로 거대합니다. 기둥은 어른 두 사람이 마주 손을 잡을 정도의 둘레를 가지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입니다. 산문은 절로 가는 첫 관문이기 때문인지 화려한 공포로 장식해 놓았지요. 그리고 가운데 문기둥 양쪽에는 황룡과 청룡이 장식되어 있어 네 마리의 용이 오고 가는 사람과 차량을 보고 있습니다. 지붕에도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용들이지요.   

  

○ 산문의 예법을 알아야 한다    


문은 경계입니다. 들어가고 나감의 통로이기도 하지요. 산문은 깨달음의 길로 가는 시발점입니다. 산문을 들어가는 순간, 속세의 것은 잊어야 합니다. 세속의 것을 잊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사찰은 산문을 지나 산길을 한참 걷고 난 뒤에 있습니다. 그 거리는 침묵과 사색의 시간만큼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걸음은 바삐 가기도 하고, 천천히 가기도 하고, 멈칫멈칫 머물기도 하고 그러다가 쉼 하기도, 때로는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모두의 사정에 따라 걸음의 속도는 달라지겠지만 부처님을 만나야겠다는 한마음을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사미율의(沙彌律儀)』에 따르면, 사찰에 들어갈 때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절 문에 들어갈 때 한가운데로 다니지 못한다. 왼쪽 옆이나 오른쪽 옆으로 다니며, 왼쪽으로 갈 적에는 왼발을 먼저 내고, 오른쪽으로 갈 적에는 오른발을 먼저 낸다.”

“볼일 없이 불전(佛殿)에 들어가 다니지 못한다.”

“일없이 탑에 올라가지 못한다.” 

“불전에나 탑에서 침 뱉거나 코 풀지 못한다.” 

“탑을 돌 적에는 세 번이나 일곱 번이나 열 번, 백 번을 돌더라도 그 수를 알아야 한다.”

“삿갓이나 지팡이를 불전 벽에 걸거나 기대면 안 된다.”     


또 『지도론』에서는, 사찰에 출입할 때 지켜야 할 몸가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가거나 올 때는 조용히 한마음으로 발을 들고 발을 내리며 땅을 보고 걸어간다. 이것은 산란한 마음을 버리고 중생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니, 이것을 물러나지 않은 보살의 모습이라 한다.”      

또는 『법원주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무릇 절에 들어가는 사람은 칼이나 몽둥이나 잡스러운 물건들을 버린 연후에 절에 들어가야 한다. 칼이나 몽둥이를 버리는 것은 삼보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요. 잡스러운 물건을 버리는 것은 삼보에게서 구걸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우선 이 두 가지 허물을 버린 뒤에 비로소 절에 들어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 순종해서 행해야 하고 부처님을 거슬러 행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장애가 있어서 왼쪽으로 돌아야 할 경우에는 항상 부처님께서 오른쪽에 계신다고 생각해야 하며, 들고 날 때에는 모두 얼굴을 돌려 부처님을 향해야 하느니라.

만약 절에 들어갈 때에는 머리를 숙이고 땅을 보면서 높이 쳐다보지 말고 땅에 벌레가 있는 것을 보거든 잘못해서 밟아 죽이지 말아야 하고, 마땅히 패찬(唄讚)하여 찬탄하고 승가의 땅에 침을 뱉지 말아야 하며, 만약 풀과 나무와 깨끗하지 못한 것을 보면 곧 반드시 그것을 치워야 하느니라.”     


    산문은 산에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지만, 사찰에 들어가는 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세상에서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지요. 문은 입구이자 시작입니다. 또한 이곳과 저곳을 구분하는 경계입니다. 스님들의 삶의 세계로 들어가는,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또한 인간의 세상으로 나오는 출구이기도 하지요. 일단 문을 들어서면 이제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이 지배합니다. 부처님을 만나 뵙겠다는 일념이지요. 또는 보살을, 스님을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산문입니다.


당연히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예절을 지켜야 하듯이 사찰의 문을 넘어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을 들어설 때마다 번뇌와 고통을 잊고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찰의 문입니다. 일단 산문을 들어선 이후에는 스님들의 생활에 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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