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라는 액자
최근에도 이런저런 글을 쓰고, 단상을 적고는 있지만 이전만큼 재밌지가 않다. 글을 쓰다 보면 항상 전달하고자 하는 그 순간의 감정과 진심이 담긴다기보다는 군더더기만 늘어가는 느낌이다. 문체 또한 이전부터 감상적으로 쓰는 것을 즐겼지만, 점점 갈수록 겉만 번지르르하게 글의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다.
얼마 전에 스스로 자괴감이 드는 일이 있었다. 내 현 상황으로 인해 친한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잠시 휴대폰으로나마 안부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으며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 모르게 내 얘기를 하지는 않을까?‘
그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 정말 참지 못할 화와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뒤로 흘러 들어온 미안함이 너무나 컸다.
그때부터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았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내몰았을까. 왜 내가 그들을 의심하게 되었을까.
근 몇 달간 가져온 감정들의 가장 큰 틀은 조급함이었다.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조급함이라는 그 틀 안에서 모두 얽히고설키며 일상의 내 태도를 만들어 냈다. 짜증도 많아지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줄어들고, 생각의 여지는 휘발되었다. 한 마디로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여유라는 단어가 어울리기엔 조급함의 틀이 너무나도 작고 좁았다.
남들과 함께, 혹은 남들보다는 조금은 앞장서 걸어야 한다는 그 마음이 오히려 그들로부터 더 동떨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눈물 나도록 열심히 더 멀리 가기 위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것이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진심이 담긴 글을 써내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믿기 위해서는, 또 온전한 글을 써내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마주 앉아 마음을 나누고, 내 마음의 가려진 부분 없이 열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의 틀을 키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단 하나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획 하나에 꾹꾹 눌러 담을 단어장의 크기를 키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심적 여유가 사라진 지금, 그 여유를 찾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멀리서 내가 그렇게 빨리 가고자 했던 길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자 한다.
그 길이 아무리 조급해도 의미 없을 만큼 머나먼 길이라면 단념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천천히 걷고, 그 끝이 어느 정도 보인다면 급하더라도 조금은 빠르게 그 길 끝에 서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