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민준 Sep 08. 2021

수면 위의 향기

무게가 버거울 땐 그저 슬며시 몸을 기울여 모두 내려놓는다


남양주시 소재 봉선사 연못으로 가족 나들이를 다녀왔다. 넓게 펼쳐진 연꽃의 군락을 보며 유년시절 동네 앞 연못에서 놀던 생각이 났다. 비가 내리던 여름에는 연잎을 머리에 쓰고 비를 피해 뛰어다녔고 겨울이면 얼음으로 가득 찬 연못에서 얼음지치기를 했다. 특별히 빙상장이 없었던 마을에 동네 연못은 아이들의 썰매놀이 장소로 최고였다. 꽁꽁 언 연못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썰매를 지치다 넘어지고 웃다보면 어느새 해가 지곤 했다. 

  

연꽃의 겉모습은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물속은 진흙으로 가득 차있다. 물속으로 뻗은 뿌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맺게 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연못에는 연꽃과 수련이 함께 자라기도 한다. 연꽃과 수련은 비슷해 보여도 차이가 있다. 연꽃은 잎과 꽃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고 수련은 물 위에 바짝 붙어 피어난다. 


연꽃과 수련이 같은 곳에서 무리지어 입체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면 벌이 날아든다. 비가 내리고 멈춘 날 연꽃은 더욱 청초한 빛을 낸다. 화려한 색을 바탕으로 활짝 핀 홍련과 백련은 피고 진 채로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 


바람이 불면 수면에 피어나는 연꽃의 향기에 여름빛은 더욱 짙어진다.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청결해서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연잎 사이로 우아하게 치솟는 연꽃은 마치 한 마리 학과 같다. 여름의 연밭은 꽃을 보며 사진 찍는 사람으로 붐빈다.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내 마음에 꽃과 같은 정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이 잡념으로 가득 차있으면 아름다운 꽃은 허상으로 보일 뿐이다. 연꽃은 봉오리를 활짝 열어 뜨거운 여름 햇볕을 받으며 발긋한 모습으로 세상 나들이를 즐긴다. 

중국의 송대(宋代) 유학자였던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은 가까이서 만지거나 희롱할 수 없고 멀리서 조망할 수 있어 좋다.”라고 했다. “그 향은 멀리까지 풍기며 멀수록 향기가 맑다.”라고 연을 사랑하는 입장을 말했다. 연은 감상하는 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선명하다. 연꽃은 우리의 손이 닿지 못하는 연못 가운데에 있어서 소유하지 못해 못내 안타까워 그리움의 거리는 연꽃을 더욱 아름답고 고귀하게 한다.

  

여름이 절정으로 치달리면 햇빛이 비치는 진흙탕에서 희망의 씨앗이 꿈을 꾼다. 연꽃 봉오리는 씨앗을 품은 임부의 모습을 닮았다. 어스름 저녁이면 꽃잎을 오므려 아기를 보호하는 것 같다. 해가 떠오르면 꽃잎을 열어 햇볕을 모으고 바람의 기운을 받아 연자(蓮子)는 건강하게 자라 천년이 지나도 싹을 틔운다. 


연잎은 뜨거운 햇볕을 차단해 물속 생물에 그늘을 만들고 흙의 오염을 늦춘다. 연 밑동과 줄기는 여러 갈래로 구멍이 나 있다. 뿌리나 줄기의 공관은 공기를 채워 자양분 역할을 한다. 연뿌리는 속이 비어 있지 않으면 뿌리가 상해 살 수 없다. 연못 물속은 공기가 녹아있지 않아 탁한 물과 흙을 정화하여 연뿌리 공관에 공기를 저장하여 꽃을 피운다. 

 

연 줄기가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것은 욕심을 비웠기 때문이 아닐까? 연잎은 나풀나풀 춤을 추며 빗방울을 분수만큼만 담는다. 커다란 연잎은 빗방울을 담아 보듬고 일렁이다가 무게가 버거울 땐 그저 슬며시 몸을 기울여 모두 내려놓는다.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암시하고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길라잡이와 같다. 비우지 않고 욕심이 과하면 연잎은 찢어지고 줄기는 꺾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만족을 모르고 더 가지려고 욕심내며 살아간다. 사람은 가질 줄만 알고 비울 줄 모른다면 미물과 다를 게 없다. 베풀 줄 모르고 거두는 일에만 집착한다면 결국 물욕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욕심을 내면 낼수록, 채우면 채울수록 우리의 마음과 어깨는 짓눌린다. 삶의 평온함을 위해 욕심을 비우고 마음의 짐을 덜어야 한다.

  

삶이 고통스러운 건 버려야 할 것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채우기만 하고 비우지 않는다면 좋은 것을 담을 수 없다. 새로운 것을 담으려면 먼저 비워야 하고 비우면 세상의 바른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어떤 이는 권력을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떠날 때가 되면 모든 걸 내려놓고 멋지게 퇴장할 용기도 필요하다. 연꽃이 연밥과 꽃술만 남기고 꽃잎을 하나씩 떨구며 화려함마저 내려놓는 것처럼…. 흙탕물에 살면서 물을 정화 시키는 연뿌리처럼 우리도 나쁜 것은 걸러내고 바른 마음을 닦아 품성·지식·도덕심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