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민준 Sep 09. 2021

잘 하고 싶었는데, 어떡하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식당 창업을 만만하게 보고 개업을 서두르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밑천을 투자해서 조기에 장사를 접으면 수천에서 수억이 증발하기도 한다.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고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소중한 재산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려면 신중하고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 전국 여러 곳에서 식당 관련 사업이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경기는 침체되고 매출은 줄고 최저임금 등에 따른 고비용 부담으로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가 문을 닫는다.

  

TV 프로그램 중에서 창업자에게 도움을 주는 방송이 소개되었던 적이 있다. 영업의 정보나 경험을 전수하고 초심을 잃으면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도 친다. 음식 준비로 시작해서 설거지와 청소까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치고 힘들어 몸살이 나도 쉴 새 없이 가게를 운영해야 한다. 장사는 운도 따라야 하고 몫도 좋아야 하지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 맛이 제일 중요하다.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을 기억하고 찾아가게 된다. 

  

진접 택지지구 왕복 4차선 T자형 도로 모서리에 상가가 마주 보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상가는 십 년 전 동시에 개업했다. 출·퇴근길에 항상 지나치는 도로여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가게는 90㎡로 적지 않은 공간이다. T자형 도로 오른쪽 상가는 감자탕을, 왼쪽은 닭갈비로 개업했다. 두 상가는 신장개업 행사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힘차게 출발했다. 

  

토요일 오전, 동네 앞산 등산을 마치고 오른쪽 감자탕 상가에 들렀다. 감자탕은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는듯했고 푹 끓이지 않았는지 진한 맛이 아니었다. 김치와 깍두기 맛도 별로였다. 식당 방문객 중에 많은 사람은 맛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하며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자 감자탕 가게는 맛이 없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왼쪽 상가에도 들러 닭갈비를 먹어보았다. 춘천 닭갈비를 먹어 본 기억을 더듬어 맛을 비교하였다. 춘천 닭갈비와 똑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감자탕보다는 더 맛있었다. 그 후로는 가족과 감자탕보다 닭갈비를 자주 먹으러 다녔다. 

  

손님으로 가득 차던 닭갈비 상가는 1년여가 지난 후부터 활기가 사라진듯했다. 한창 바빠야 할 시간에 손님이 전처럼 많지 않아 예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며칠 지켜보니 종종 장사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소문에 의하면 사장이 아파서 자주 못 나온다고 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괜한 마음에 '문을 닫지 않을까.' 걱정이 들 때 가게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사업이 실패로 끝난다면 한 가정의 삶 자체가 위기를 맞는다. 당장 일자리를 잃고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막막함은 가족의 생계를 위태롭게 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눈물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닭갈비 가게는 공실로 반년 넘게 방치되다 칼국수 음식점이 새로 들어섰다. 여 사장은 손맛을 제일로 생각한다며 단골이 되어주길 당부했지만, 끝내 1년여를 버티지 못했다. 

  

칼국수 가게가 정리되자 곧바로 고추장 삼겹살 가게가 들어섰다. ‘잘 돼야 할 텐데,’라는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가게 또한 2년여를 넘기지 못하고 정리했다. 

  

오른쪽 감자탕 가게는 1년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는데 예상을 뒤 업고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뭔가 색다른 비법이 있나 궁금해 오랜만에 감자탕 가게에 들렀다. 창업 초기 돼지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사라지고 푹 끓였는지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김치와 깍두기는 달고 짜지 않아서 먹기에 딱 좋았다. 처음 먹어본 맛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부족했던 초창기 맛을 보완해 끈기와 인내로 장사를 이어왔다. 개업 초기에 진한 맛이 아니라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 후로도 왼쪽 닭갈비 상가는 10여 년 동안 생선구이와 의류 판매까지 여러 업종으로 바뀌었지만 오래 하지 못하고 폐업을 거듭했다. 가게를 닫고 새로운 업종이 생길 때마다, 가게가 잘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고 그곳에서 장사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새로 시작할 때마다 ‘잘 돼야 할 텐데’라고 간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초창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감자탕 가게는 10여 년 이상 장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가운데서도 대박집은 존재한다. 대박집은 무엇이 다를까. 아마도 진정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박집마다 고집하는 진정성은 다르지만, 우리가 모르는 운영자의 확실한 철학이 담겨 있다. 장사 잘하는 비법은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항상 우리 가까이 있다. 장사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음식에 큰 정성을 담아 맛깔나게 내놔야 한다. 수없이 상호가 바뀌는 가게 사이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성공과 실패의 사이에서 아무리 돈이 귀중해도 자신의 가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말이 있다. 사람과 돈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말고 가치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실패하여 넘어졌다고, 난 가진 것이 없다고 자신에 대한 평가절하는 절대 금물이다.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는 것도 진정한 삶의 승리다. 장사 밑천을 회수하지 못해도 건강을 잃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성공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돈을 쓸 것인지의 마음이다. 성공한 인생은 돈보다 주위를 둘러보는 따뜻한 마음이다.

이전 01화 수면 위의 향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