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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Sep 06. 2021

경로 이탈한 사람들

꿈꾸고 준비했던 삶이 예상 경로를 이탈했을 때

인생을 살다 보면 나 혼자 넘어져서 앞을 볼 때가 있다. 넘어지던 순간에도 친구들은 땅을 박차고 힘차게 달린다. 혼자 남겨진 채로 친구들을 보면 실의와 무력감이 밀려온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로 흐르는 눈물을 숨겨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 순간이 감당하기 두려워 외면해 보지만 어쩔 수 없이 온몸으로 부딪쳐 아파해야 한다. 인생길에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부부 모임에는 명랑하고 웃음 많은 삼십 대 후반 후배 부부가 있다. 후배 부부는 유머와 재치가 뛰어나고 호방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주도한다. 목소리가 크고 긍정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한다. 


호탕(浩蕩)한 웃음으로 일관하던 금실 좋은 부부는 어느 날부터 모임에 나오지도 않고 통화도 되지 않았다. 한동안 소식을 알 수 없어 궁금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때쯤 후배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배 여동생 부부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 중이라고만 했다. 직장은 어떻게 하고 무슨 여행이냐고 물었다. 평상시 밝던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쉬고 싶었다며 산과 바다를 다니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만 했다.

  

자손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연결하고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후배 부부는 십여 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후배 동생에게서 아이가 먼저 생기며 스트레스가 커진 듯했다. 모두가 후배 부부를 추월해 나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먼저 출발 했음에도 남들보다 뒤진다는 생각은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부부 사이는 꽤 좋은 편이었으나 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부부는 예민해졌다. 정체된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지 못한 채 세월에 갇혀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부부는 힘겨워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며 우울증도 앓았다. 부부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삶에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본인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부부가 안타까웠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심정에 가슴앓이하며 세월의 한 모퉁이에 비켜나 있었다. 사방이 막혀 갈 길을 잃고 화산같이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을 억누르며 질곡(桎梏)의 세월을 보냈다. 부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표정으로 초조한 삶을 살았다. 

  

우리 부부 모임은 자신과 아이들 자랑으로 웃고 떠드는 자리였다. 아픔을 간직한 채로 밝게 웃는 부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로 힘들어하는 부부를 배려하지 못한 마음에 죄책감이 들었다. 


우리의 자식 자랑이 대인 기피증과 벼랑 끝으로 내몰지는 않았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모임 자리가 불편해했을 부부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더 아팠다. 부부의 소외감과 허탈한 마음을 헤아렸어야 했는데···. 그 후로 후배 부부가 불편해할까 전화도 먼저 하지 못하고 소식을 기다리며 잘 살아주길 바랐다. 

  

저녁 무렵 후배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기 제주도인데 한 달 살다 갈 거야.” 말을 흐리며 한숨과 함께 그녀의 흐느낌이 정적을 타고 내 가슴에 전해졌다. “오빠 나 힘들다.”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후배 여동생은 세상을 원망하는 내가 싫어 인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대로 가슴이 타들어 가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막막함과 옅은 희망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을 받아들이며 어둠 속에서 북받친 감정을 토해냈다. 항상 밝게 웃었던 후배 여동생이기에 마음이 더욱더 안타까웠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느끼는 실의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의 아픔이 파도의 아픔보다 더 큰 슬픔이었음을 하느님은 아는지···. 나는 그녀에게 참지 말고 실컷 울어도 된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공부 안 한다며 혼내고 힘들게 살고 있음이 행복인지 알고 감사하게 지내는 이는 드물다. 우리네 삶이 잘살고 못살고의 기준과 정답은 없다. 다만 누구에게나 바라지 않던 일이 생기면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할 수 있다. 


꿈꾸고 준비했던 삶이 예상 경로를 이탈했을 때, 남처럼 평범한 일상을 지낼 수 없는 미래에 인생은 늦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늦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후배 부부의 가정에 웃음꽃이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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