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유
- 김용기
실 눈 떴을 때
언제 철드나 했지
부스럭부스럭 딴전 피우는 사이
빼꼼히
왕눈 되었다가 슬그머니 저 버린
꽃봉오리가
시어머니 눈 피해
기둥 뒤 서서 멋쩍던 며느리처럼
입었다가
벗었다가
뭔 소리를 하던 참아 냈는데
젊고 곱던 시절 다 보내고
힘도 굽었을까
아침 이슬도 무겁고
슬쩍 지나가는 바람도 무섭고
그런 두려운 가을이 내 앞에 있다
문 닫고
귀로 듣고 싶은 가을이 다가오고
데면데면, 국향처럼 둔한 가을이
먼 기억 쉽게 꺼내지를 못한다
나이도 무겁고
빠른 한 해도 무겁고
저녁 굴뚝 연기도 무거워
기역자로 구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