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나침판
- 김용기
길인 줄 알고 서둘렀는데
도로 그 길
헤매다가 알았다
주저앉았고
힘 빠진 다리를 일으켜 세웠지만
절망은 너무 깊이 떨어졌다
고장 난 줄 알았더라면
믿지 않았을 테고
공연히 힘쓰지 않았을 텐데
중얼거렸다
나지막하게 빌었다
곧 구유로 가겠다는 소리
가늘고 혼미하여 못 알아 들었는데
이번 주 새벽 공기 마시며
더 빌라는 뜻인 걸 알아차렸다
짐짝같이 무거운
고장 난 나침판을 믿고
지금껏 제 자리를 돌았다니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
어이없었다
동짓달 하늘을 가로지르는 눈보라가
얼굴을 쳤고
절망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길이다
알려줄 테니 버리거라
버렸다 오늘
고장 난 나침판 미련두지 않고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