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오래전에 시골 오지로 발령받아 근무한 적이 있었다.
전에 나와 같이 근무했던 분이 먼저 승진 발령을 받아 그곳 오지에서 3년 정도 근무하고 계셨다. 오지에서 3년 정도 근무하면 본인이 사는 곳으로 근무지를 옮겨 주는 것이 관례인데, 인사 발령에서 그분은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근무처만 옮겨 그 오지에서 나와 같이 근무하게 되었다.
그전에 같이 근무할 때 나에게 워낙 잘해주시고 인품도 훌륭한 분이셔서 다시 상관으로 모시게 된 나는 좋았지만, 그분은 인사 발령의 섭섭함 때문에 발령 초기에는 얼굴빛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나는 그즈음 사기(史記)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사기는 사마천이 지은 중국 역사책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있었다. 우울해하는 그분에게 사기(史記)를 책으로 선물해 드렸다. 가끔 시간 될 때 읽으면 마음에 위안이 될까 싶어서였다.
사기(史記)에 보면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나온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인데, 재능이 뛰어나거나 훌륭한 사람은 어느 곳에 있어도 주머니의 송곳과 같이 눈에 뜨일 수밖에 없다는 고사성어이다.
그분과의 술자리에서 "과장님은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분이라서, 지금은 이곳에 계시지만 나중엔 꼭 크게 쓰이실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사람을 보는 눈은 누구나 비슷한가 보다. 나 말고도 그분과 같이 생활했던 사람은 모두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1년 정도 지나고 단행된 인사에서 그분은 본부의 요직으로 발탁되셨다. 그리고 좀 더 지나 우리 직장의 최고 높은 지위까지 오르시고 작년에 퇴직하셨다.
퇴직하시기 전에 만나 뵈었는데, 전에 내가 말씀드렸던 낭중지추(囊中之錐)를 기억하고 계셨고, 그 힘들었던 시기에 좋은 책을 선물해 주어 정말 고맙다고 하셨다. 책은 아직도 안 읽어봤다고 미안해하셨지만, 앞으로 꼭 읽어 보마 하셨다. 그 책을 읽으시면, 내가 왜 그때 그 책을 선물해 드렸는지 더 잘 이해하실 것이다.
사기(史記)에는 정말 우리 인생에 교훈을 주는 역사적 사실과 반추해야 할 여러 인물들의 일대기가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인간의 삶과 영욕, 그리고 죽음.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얽히고설켜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표를 일러준다.
삼국지에도 배울 점이 많지만, 삼국지는 엄연한 소설이다. 많은 부분이 나관중에 의해 각색되었고, 정사 삼국지와 차이도 크게 난다. 반면에 사기(史記)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 또한 높다. 또한 다다익선, 사면초가, 토사구팽 등 우리가 많이 들어본 고사성어의 유래가 잘 서술되어 있고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분이 지금쯤 사기(史記)를 읽어 보고 계실 줄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분도 분명 사기(史記)를 읽게 되면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되고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으실 것이다. 오랫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한가로운 은퇴 생활을 하고 계실 그분께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