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아버지

by 박대우

우리 형제는 남자 삼 형제이다. 내가 맏이고, 그 아래로 두 살, 또 그 아래로 세 살 터울이 진다. 우리 형제는 사자 새끼나 강아지처럼 어릴 때 자주 싸웠던 것 같다. 지금이야 어릴 때도 컴퓨터니, 학원이니 각자 바쁘지만, 그때는 변변한 장난감도, 학원도 없었기에 형제들 또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동생이 누구한테 맞고 들어오면 형인 내가 가서 대신 때려도 주고, 형인 나를 누가 욕하면 동생들이 맞는 것도 불사하고 내 편을 들고 했지만, 집안에서는 먹는 것, 노는 것으로 바람 잘 날 없이 서로 다투었었다.

이런 삼 형제를 키워야 했던 우리 어머니가 참 힘드셨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라면이 무척 귀했다. 내 기억으로는 라면 종류는 단 한 가지, 삼양라면뿐이었다. 처음 맛보던 라면의 맛은 정말 신이 하사하신 맛이었다. 라면은 귀한 대접을 받아서, 우리는 아버지가 라면을 드시는 날에만 조금 얻어먹을 수 있었다. 가끔 아버지 없이 우리끼리 먹을 때는 라면과 국수를 섞어서 먹었는데, 대개 라면 30%에 국수 70%였었다. 그만큼 라면은 귀했다.

어느 날엔가 아버지가 라면 한 박스를 사 오셨는데 특식으로 종종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만 끓여 드렸다.

집에 어른들이 없던 어느 날, 나와 바로 밑의 동생은 감히 그 귀한 라면을 무언의 용기를 내서 끓여 먹기로 결심하였다. 그때는 연탄에 라면을 끓였었는데, 연탄, 불로 물을 끓인다는 게 얼마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지는 경험해 보신 분은 알 것이다. 한 10분 후쯤 물이 끓기 시작했고. 라면을 넣었다. 그 맛있는 라면을 우리가 이렇게 끓여 먹다니!


바로 그때였다. 아버지가 오셨다. 어디서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늘에서 떨어져서 오셨는지, 바람을 타고 오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갑자기 오셨다. 그리고 무척 많이 혼났다. 하긴 그 귀한 라면을 허락도 없이 끓여 먹다니, 어린 마음에 혼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끓이던 라면은 동생이랑 나누어 먹었던 것 같다. 그런데 먹었다는 기억보다는 혼났다는 기억이 훨씬 선명하다. 왜 그렇게 우릴 혼내셨는지는 지금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어린 우리가 라면을 끓이다 화상을 입거나 불을 낼 염려 때문에 그리하신 것이라(믿고 싶다).


그 후, 라면 박스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다 우리 몰래 잘 두신 것이리라. 그렇게 혼났으니 끓여 먹을 생각도 못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내가 어릴 때 맛보던 삼양라면보다 몇 배 더 맛있는 라면을 수시로 먹는다. 라면뿐이랴? 통닭에, 햄버거에 먹는 것들이 넘쳐난다. 지금 아이들에게 그때의 라면 이야기나 냇가에서 개구리나 물고기를 잡아먹고 들풀을 훑어 먹었던 시절을 이야기한들 제대로 들어나 줄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는 재작년 8월에 돌아가셨다.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치고 있는 지금 왜 눈물이 고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중환자실에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아버지 뭐가 제일 먹고 싶어요?", "막걸리나 시원하게 한잔 먹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에는 아버지 묘소에 가서 막걸리나 한잔 드리고 와야겠다. 밖에 또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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