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 분노

by 박대우

오늘은 '내가 나를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물론 자살이나 뭐 그런 것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겠다.


내가 생각하는 한에서, 자기가 자신을 죽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마도 분노인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는 없고, 상대방에게 품게 되는 분노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치미는 분노는 머릿속을 헝클어 놓는다. 불길같이 일어나는 화 때문에 다른 좋은 것을 생각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지나간 일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심장이 마구 뛰며, 모든 것이 갈가리 찢어진다.


분노 때문에 잠이라도 못 자는 다음 날에는,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 같고 밥맛도 없어진다. 재미있는 것을 봐도 재미가 없고, 웃기는 일이 생겨도 웃음이 나오질 않는다.

그럼, 이 분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려움이다. 모든 분노의 근원은 두려움이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될까 하는 보호본능으로부터 오는 두려움.


자기를 해쳤다는, 그리고 더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알게 모르게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렇게 표출되는 분노가 결국에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지 못하게 하고 감정에 치우쳐서 사물을 일그러져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분노 즉, 두려움은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친다.

타인에 대한 분노가 깊어지고 반복되면서 그 분노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로 변모하게 된다. 자책과 자학이, 마침내 내면에 깊이 숨어있는 아기와 같은 자아를 건드리게 되는 날이면, 그 자아는 통제 불능이 되어 날뛰는 것이다. 그러면 괴로움 속에 잠겨 헤매게 되고, 온갖 슬픔이 자신을 파도처럼 압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단 하나 '내재적 포용'밖에는 없다.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잘 감싸 안는 것이다. 자신 속에 깊이 숨어있는 자아라는 아기를 다독여 주는 것이다.

상처받은 자아라는 아기에게 스스로 자장가를 불러주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이다.

상처받은 자아를 절대 이길 수는 없다. 천하를 통일했던 영웅도, 재산이 수조 원에 이르는 자산가도, 아이큐가 200에 이르는 천재도 그 자아라는 아이의 땡깡 앞에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길 수가 없으니, 술을 찾고 담배도 찾는 것이다. 아마 마약이 있으면 마약도 찾을 것이다.

알코올이나 약물이 몸을 타고 들어가 모든 것이 느슨해지면 '그래 인생 뭐 있겠나! 맘대로 하라고 그래!'라는 생각이 들고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술이나 약물에서 깨고 나면 다시 분노와 두려움이 자신을 엄습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반복되며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하루이틀 지속되던 것들이 1년, 2년이 지나다 보면 습관이 되어 버린다. 사고가 굳어지면서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더 유연해지고, 넓고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사고에 갇혀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금방금방 알 수가 있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보라. 그렇게 늙어가고 있지 않은가? 고집스러워지고 노회해지고 있지 않던가?

'뒤로 물러나야 한다.', '뒤로 물러나 멀리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순간의 분노든, 오래된 분노든 그 분노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놓아야 한다. 이유가 없다. 그냥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이며 행복의 모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

나는 명상을 한다. 나를 감싸고 있는 그 지긋지긋한 분노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너무나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서 나는 명상을 한다. 나름대로 효과도 보고 있다.


내재적 포용의 능력을 늘리는 방법은 명상 말고도 많이 있을 것이다. 독서, 여행, 운동, 예술 활동 등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어쨌든 굳어져 가는 사고의 틀을 풀어 헤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한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있는 이 분노로부터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이가 50살을 넘어 노년으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분노에서, 두려움에서 한 발만 물러나 보자. 아주 불가능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늘, 항상,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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