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성애에 관한 이야기
오늘도 개엄마의 시간은 정신없이 흐른다.
아침에 일어나 다윈 밥부터 챙기고, 부지런히 산책을 나선다. 열심히 코를 킁킁이며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강아지 친구들과 한바탕 놀고서야 다윈은 낮잠을 청한다. 개마저 잠든 한낮의 평화로운 시간, 그 사이 밀린 일들을 제한시간 내 신속하게 쳐내야 하는 나의 전투가 시작된다.
일도 하고 글도 쓰고_ 가끔은 이 시간마저 다윈을 위해 간식과 장난감 인형을 만들며 보낸다. 나도 먹기 힘든 한우 간을 사다 몇 번이고 핏물을 빼고는 물컹이는 핏덩이를 만지작대노라니, 허허_ 웃음만 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다윈, 도대체 넌 내게 뭐냐?!
강아지 간식 하나 만들겠다고 쳐다보기도 겁나는 소 간을 잘게 썰어 7시간 동안 말린다. 채 빠지지 않은 핏물이 시뻘겋게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온 집안에는 비린내로 가득하니_ 이 무슨 스릴러인가 싶다. 냄새에 마비된 코를 포기하고 앉아서 안 입는 옷가지를 잘라 내고는, 다윈이 좋아하는 삑삑이를 잔뜩 넣어 강아지 인형을 만든다. 어차피 하루도 못 가겠지만_ 우리의 체취까지 배어있으니 더 좋아하겠지. 배를 뒤집어 까고 누워 꿈을 꾸듯 잠꼬대를 하는 다윈을 보며 킥킥댄다. 그 사랑스러운 몸짓에 힘든 것도 싹 사라졌다.
한낮의 강렬한 열기가 식어갈 때쯤, 거하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다윈 녀석. 목줄과 간식을 챙겨서 다시 밖을 나선다. 오늘은 어질리티 수업 가는 날. 일주일에 두 번, 내 헬스 이용권보다 더한 수업비에 마음이 후덜덜했지만_ 일단 배워놓으면 두고두고 함께 즐길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강아지와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만 잘해서도, 다윈만 잘해서도 안된다. 공부도 아니고, 거창하게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지만 행여 다윈이 실수해서 앞으로 뛰쳐나가거나 헤매기라도 하면, 금세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나마 참 다행이다. 운동회 때 엄마가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이의 창피함이 걱정일 텐데- 강아지들은 엄마 아빠가 어설퍼도 실수해도 그저 함께라 즐겁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윈은 곧잘 해내는데, 내 어설픈 핸들링은 늘지를 않는다. 수업을 듣는 건 다윈일까 나일까? 수업 시간조차 나는 쉴 새가 없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벌써 저녁. 집을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저녁밥을 먹는다. 다윈까지 먹고 나면 또다시 시작되는 밤 산책. 셋이 나란히 걸으며 도란도란 하루를 나눈다. 매일 거의 똑같은 코스인데 지겹지도 않은지, 다윈은 앞질러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며 해맑게 웃는다. 이렇게 하루가 다 갔다. 이빨까지 닦이고 나면 녀석도 하루 일과가 끝났다는 걸 받아들인다. 눈치를 살피더니 슬금슬금 침대로 올라가서는, 이불을 파해치며 잠자리를 만든다. 그렇게 가장 포근한 곳에 엎드려 턱을 괴고는, '안 자니?' 하고 우리를 보는 눈망울. 아기같이 잠이 덕지덕지 붙었다. 늦은 밤, 우리 부부까지 자리에 누우면 다시 몸을 뒤척이며 꼭 우리 사이에 파고드는 개아들. 이렇게 따뜻하게 쏘옥 안기는 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끔씩 흠칫하며 소름이 돋는다. 이건 완전히 아기 엄마의 삶이잖아! 이렇게나 일상의 거의 모든 시간을 다윈 위주로 맞추고, 다윈 편의만 생각하고, 다윈에게 내 시간을 끼워 맞춘다.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이렇게 내 새끼, 내 아들 하며 세상 전부가 된 듯 깊이 빠져버릴 줄은. 엄마 아빠라는 말이 간지러워 꼭꼭 '누나'와 '형'임을 강조하던 우리였다. 개를 뭐 저렇게 유난스럽게 키우냐며 다른 개엄마들을 이해 못했던 나였다. 그랬는데 이제는 내 전부가 되었다. 약속도, 끼니도, 일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_ 일단 다윈이 우선이다.
"너무 빠지지 마."
간결한 한마디로 정곡을 찌르시는 우리 아버지.
"이 정도면 약과야, 다른 집들은 더해요~! 이것저것 학원도 다니고, 음식점도 카페도 무조건 동반되는 곳으로 가고- 주말에는 무조건 개랑 같이 캠핑 가고, 개 사진만 찍어. 어떤 집은 아예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서 산다는데!"
아빠의 심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나에겐 가족인걸,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전부인데. 게다가 너무 귀엽다구요! 다윈은 아들이기도 데이트 상대이기도, 친구이기도 하고_ 몸소 보여주며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다, 무척이나 과묵하고 키가 한참 작아 눈 맞춤이 힘들며 지나치게 털이 많이 빠지는. 다윈은 항상 내가 주는 애정보다 더 큰 사랑을 준다. 그리고 한결같다. 어느 존재가 이럴까, 그 어떤 사랑이 이런 모습일까. 나는 다윈에게 밥과 간식, 따뜻한 잠자리를 내어 주고, 내 돈과 시간을 생색내며 쓰는데_ 다윈은 나에게 다 준다, 그저 자신을 모두 내맡기며. 나는 매일 다윈에게 모성애를 빚진다.
낳지 않았기에 아들일 수 없을까.
사람이 아니라 개일뿐이라 의미 없는 짓일까.
아직도 나는 헷갈리고 어떤 방식으로, 어디까지 다윈을 사랑해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다윈은 항상 한결같다.
고민도 생각도, 중용의 자세도 부질없다는 듯_ 언제나 전심의 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