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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Apr 26. 2021

우리 집 싸움 훼방꾼

평화주의자 & 힐링 테라피스트 다윈

우리 부부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지난 19년간 숨 막히게 날 가뒀던 철창이 한순간에 풀린 듯- 해방의 달콤함과 자유의 짜릿함을 온몸으로 외쳤던 스무 살, 그 시절! 나는 내 주량도 모른 채 신입생 환영회 MT에서 처음으로 흥청망청 술에 취해, 친구의 소개로 한 남자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다음 날, 해장을 위한 컵라면 한 사발과 함께 그를 호로록 까먹었고, 그는 나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로 돌아가 자신을 말리고 싶다는_ 남편이 된 그 남자. 나도 시간 여행하고 싶거든?! 밉상이다 정말.         

       



남편과 나는 동갑인만큼 참 많이도 아웅다웅하는 편이다. 스무 살 무렵부터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해왔기에 이제는 각자의 부모님보다도 서로를 더 잘 아는 사이가 되었지만, 알다시피 서로를 잘 안다고 갈등과 대립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친구로 시작해 연애부터 결혼까지 10년도 넘게 서로에게 고치라고 했던 점들은, 우리를 꿋꿋이 지켜줬던 믿음과 의리만큼이나_ 굳세게 버텨주었다. 몇만 번이나 싸움, 논쟁, 다툼의 지리멸렬한 시간들을 거쳤지만, 결혼 생활이야말로_ ‘그릿(Grit)’의 정신이 필요한 자신과의 싸움과도 같다.      


다윈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부부는 다윈에게 화목하고 행복한 모습만을 보이려 상당히 조심했다. 다투고 논쟁하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인데 뭘 유난스레 구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다윈은 언쟁하는 우리를 보며 스트레스와 불안, 공포를 느낀다. 게다가 나중에 상황을 설명할 수도, 다독일 수도 없으니- 아무 죄도 없는 이 어리고 여린 것에게 굳이 이런 스트레스까지 주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역시 말처럼 단순하지 않은 것이 결혼 생활이다. 우리는 몇 번 다윈 앞에서 언성을 높이기도,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윈이 한 살이 채 되지 않은 새끼였을 적에는 ‘이건 무슨 상황이지?’ 하고 스스로 헷갈려했다. 언성을 높여도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의 의미인지 파악 못하고, 우리 사이 한가운데에 툭! 하고 공과 인형을 떨어뜨려 놓고는 너희끼리만 놀지 말고 함께 하자며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공감 능력과 상황 판단력이 날로 발전하다 보니, 갈등의 징조만 느껴도 금세 귀를 축 늘어뜨리고는 납작 엎드려 긴장을 하고 있다. 그런 다윈의 모습을 보면_ 당장 나부터 화를 추스르고 빨리 상황을 정리하려 하게 된다.

      

"그렇게 안하기로, 고치기로 했잖아! 도대체 몇 년 째야?" 


" ... " 


“그만 하자. 큰 소리 내니까 다윈이 놀랐어.”     


“다윈, 미안해. 괜찮아, 괜찮아.” 둘 다 번갈아가며 무서워 몸을 떠는 다윈을 다독인다.      


함께한 긴 세월 끝에,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다툼을 하는 우리만의 방식을 찾은 것도 있지만, 다윈 덕분에 우리 집안의 위기 대응 체계가 보다 더 시스템화 되었다.  

    

다윈은 쉽게 기분 좋아하고 쉽게 행복해 한다.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할까를 반성하게 할만큼.

“일단, 다윈이 보는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고. 할 말 해야겠다 싶으면, 방에 들어가서 문 닫고 조용조용 이야기하자.”      


“그래, 좋아! 조금이라도 다윈이 눈치채거나 스트레스 받는다 싶으면, 일단은 다 덮고 분위기 푸는 거야. 알겠지?”      


“그리고 우리가 기술적으로 싸워야 돼. 화날수록 작게 말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싸우자.”    


이 시스템이 '다윈 몰래 싸우는 기술'을 위함인지, 아니면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법'을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나_ 실로 효과적이었다. 이런 규칙들을 만들자, 우리는 웬만하면 화가 치밀어도 길고 긴 대화로 풀망정 싸움까지는 발전시키지 않았고, 설령 티격태격한대도- 불이 더 크게 번지는 사태를 중간에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화통 터지는데 바로 지르고 맞받아치지 못하면 무슨 재미인가! 그야말로 싸움이 재미없고 의미 없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언성을 높이다가도 갑자기 유튜브에서 '강아지 심신 안정 음악'을 검색해서 틀어야 하고, 매섭게 쏘아붙이고 싶은데 또롱또롱하게 나를 지켜보고 앉아 있는 다윈과 눈이 마주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나와 남편의 전의는, 우리를 쳐다보고 분위기를 살피는 다윈 덕분에- 한 템포씩 엇나가는 엇박의 받아침, 결정적인 순간 지르지 못하고 속삭이며 본능을 거스르는 플레이로 허망하게 사그라들고 만다. 어쨌든 다윈으로 인해 불완전하다고 할지언정, 행복한 평화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다윈 또 겁먹었잖아. 빨리 화해하는 모습 보여! 자, 안아!”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부터,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순간에 균열은 생긴다. 어느덧 패턴이 돼버린 작은 언행은 어느 날엔 더 큰 싸움이 되어, 본질과 목적은 사라지고_ 감정과 기분만이 남는다. 게다가 '예전에도 이랬고, 그때도 그랬고' , '또 시작이네'가 오가며- 상황은 극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터지는 원망이나 원한의 고함 대신 삐끗한 엇박 리액션, 뜬금없는 웃음만으로도 상황은 반전된다. '갈등'과 '싸움'이라는 것 또한 이 얼마나 별 것 아니고 허무한지...    


이미 다툼이 벌어져 다윈에게 걸렸다면, 얼어있던 분위기를 즉시 풀어야 한다. 이런저런 언쟁에 순간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지만_ 허공에 빈 웃음을 날리는 연출을 하며 서로 좋은 척, 괜찮은 척을 한다. 그러면 또 금세 웃으며 달려와 우리 사이에서 간식을 뜯는 녀석. 살다 살다 개 눈치까지 봐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_ 십 년도 넘는 시간 동안 다투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서로를 물어뜯고, 모진 말로 다시는 안 볼 듯 치명상을 입혔대도, 그중에 반은 뭐 때문에 그토록 맹렬했는지 기억도 못하고_ 나머지 반은 '같이 해결해보자'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그 순간이 영원하다는 듯, 각자 최선을 다해 폭발하기보다, 적당히 풀고 넘어가며 싸움과 다툼 거리도 나중을 위해 조금씩 남겨두어야 한다. 앞으로 함께할 세월이 길게도 남았기에_ 삶의 챕터마다 우리를 성장시켜줄 상황을 기다리며, 툭탁거리며 열을 올리는 결혼 생활의 재미를 위해서. 우리의 결혼생활은 동화책의 공주님 왕자님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나지 않기 때문에.        

 

온가족 함께 산책나와 마냥 즐거워 하는 애. "우리 덕분이야, 너"라고 하지만- 사실 다윈 덕분에 우리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만약에 우리가 헤어지면, 다윈은 나랑 같이 살 거야."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나랑 살아야지. 나에 비하면 넌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잖아." 


"다 필요 없어. 다윈보고 선택하라고 하면 끝이야. 당연히 나야." 


장난 삼아 다윈을 멀찍이 앉혀놓고 애정도 테스트를 해봤자, 다윈은 우리 둘 중 한 명을 선택하지 않는다. 보통 강아지들은 결국 가장 애착관계가 끈끈한 주보호자 한 명을 더 따르고 좋아한다는데_ 우리 의도를 알아차린 걸까, 아니면 이 녀석은 박애주의자인 걸까. 그런 것에 관심 없다는 듯, 그저 다 같이 놀자고 신나서 공을 물어온다.  


이 작고 따뜻한 생명 덕분에, 우리 집은 언제나 따뜻하다.   

잘 자, 내 사랑! 오늘도 속삭인다. 그 마음이 전해지는지_ 우리 사이에서 코골고 잠꼬대도 하고... 뻔뻔하지만 참 고마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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