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두근거림과어깨 위 책임감에 대하여
우린 항상 이렇다. 나는 일단 저지르고, 남편은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가_ 방법을 찾아낸다.
'아무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다시 제대로 살고 싶다'는 나의 감수성 축축한 중2 병적 발언에도,
남편은 그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커리어 패스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그때 사직서를 내고 내 손 잡아준_
또라이였다.
나는 퍼스가 좋겠다고 했다.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도시,
백조들만이 존재한다는 정설을 우습게 깨 버리고, 블랙스완이 있다는 걸 고고히 증명해 준 도시,
'히스 레저'가 태어나고 묻힌 촌티 나는 시골 마을.
화이트 칼라 샌님보다 블루 칼라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더 값진 업사이드 다운 시티.
그리고 험난한 야생의 세계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필살의 무기도, 능력도, 기능도 없이_
세상 귀여우니까 돌봐주고 싶게 만드는 쿼카가 있는 곳.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이렇게 요상 찬란한 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 무척 궁금했다.
남편은 바로 구글링을 했다. 그리고는 ‘퍼스’로 가는 편도행 티켓 두 장을 끊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부창부수(婦唱夫隨)일 것이다.
아내가 노래하면 남편이 따라 부르는 우리의 관계. 이 얼마나 바람직한가!
이번에도 내가 먼저 '강아지와 살고 싶다'는 제안을 던졌다.
우리가 행복하자고 무작정 데려오면 개는 괜찮겠냐는, 남편 말이 맞다.
같이 살아줄 건지 개의 선택도, 동의도 못 구하면서_
아무 준비도 없이 함께 살면 과연 개는 행복할까?
개가 행복하지 않을 텐데, 행복해지자고 데려온 우리는 또 좋을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해결방안을 함께 제시할 수 있었다.
"... 공부하면 되지!"
그날부터 내 주도하에, 우리는 과학자의 마음으로 개를 탐구했다.
도서관에서 '강아지'가 들어간 모든 책들을 탐독하며, 견종 백과사전도 익히고 개들의 생애발달 전 과정을 배웠다. 새끼 강아지를 위한 주의점과 노견을 위한 건강관리까지_ 강형욱 훈련사, 설채현 수의사, 이찬종 훈련사 등등... 반려견 전문가들을 모두 알게 됐다. '퍼피 가이드', '퍼피 트레이닝', 그리고 나의 로망이 된 '도그 트릭'과 '어질리티'까지_ 국내외 유튜브를 거의 다 봤다. 개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산책을 해야 한다는 것, 코를 쓰는 '노즈 워크'가 개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것, 개들만의 의사소통 법인 '카밍 시그널'까지_ 강아지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어렵지만, 재밌었다. 더불어 깨달았다, 어린 시절부터 개와 함께 살아왔지만 개해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그러면서 문득 겁이 나기도 했다.
내가 정말 한 생명을 잘 건사할 수 있을까.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평생 아가처럼 돌봐줘야 하는 생명을 잘 지켜줄 수 있을까?
말도 통하지 않는 친구와 한가족이 되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가고 싶은 곳 언제든 단출하게 훌쩍 떠났던 여행들, 맛집 투어와 쇼핑, 좋다는 영화와 공연들은 다 찾아다니며 자유로웠던 시간들은 이제 끝이다.
이런 일상을 포기할 수 있을까?
"우리 여행도 많이 다녔고, 놀만큼 잘 놀았잖아? 많이 부족하겠지만 서로 도우면서 괜찮은 가족이 돼 주자."
처음이었다.
지금이라고, 일단 저질러보자고 남편이 먼저 등 떠민 적은.
반려 생활을 위한 배움과 마음의 준비뿐 아니라, 개와 살기에 무리 없을 현실적인 여건을 다지기까지_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직장을 구했고, 다시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며_
어느샌가부터 조금씩 희미해진 행복의 그림 이야기를 가끔씩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 벌컥, 남편이 이제 실행해보자고 선포를 한 것이다.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어느샌가부터_
강아지를 키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퍼스 공원을 날던 그 강아지, 그 온전한 행복을 곧 이룰 수 있다는 것에_ 우린 참 감사함을 느꼈다.
현실적 상황들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고, 여전히 꽤 팍팍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그리는 정확한 그 장면과는 한참 멀었다.
하지만 이상적인 그림일수록, 현실적 터치가 들어가야 한다.
약간의 미숙한 여백이, 우리의 행복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에게 작고 귀여운 가족이 생긴다! 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