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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Mar 03. 2021

푸른 하늘, 파란 잔디 속 파란 강아지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가 맞다.

평화 그 자체인 듯한 호주 퍼스의 공원. 

한 바퀴만 돌아도 한 낮이 꼬박 걸릴듯한 푸른 벌판에, 보기만 해도 가슴 뻥 뚫리는 상쾌함으로 내달리는 바둑이가 있었다. 눈부신 해에 초록의 풀들이 바다처럼 빛났다. 그 끝없는 초록을 한달음에 시원하게, 어찌나 경쾌하게 뛰는지_ 지켜보던 나마저 예닐곱의 아이로 되돌렸다. 덩달아 신이 나 심장이 튀어나오도록, 그 바둑이처럼 달렸다. 

퍼스에서의 어느 날. 공원의 한 낮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출근길 지각을 면하기 위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다이어트 때문에 올라 탄 러닝머신 위에서 억지로 몸을 움직거린 것을 제외하고_

내가 기꺼로이,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달려 본 게 언제였을까. 

성인이 된 이후로는 마음과 머리 달리기에만 급급했지, 몸까지 달리기는 너무 힘들었다.  


짜릿한 동시에 평온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끼는 '나 살아있구나' 하는 기분. 

비록 예닐곱 시절 그때보다 훨씬 무겁고 딱딱한 몸이지만, 마음만은 날아갈 듯_ 바둑이 못지않게 가벼웠다. 너무나 훈련이 잘 되어 있었던 그 개는, 갑자기 달리는 나에게도 한 치의 동요 없이 똘망한 눈을 반짝이며 보호자에게만 집중했다. 오늘도 원 없이 달리고 실컷 놀았다고, 함께 있으니 너무 좋다고_ 보호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온몸으로 웃었다. 


내가 뭘 본 거야, 개가 저렇게 함박웃음을 짓는다고? 저렇게나 활짝 웃는단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내가 봐 왔던 그 개들에게서 왜 난 한 번도 저런 미소를 본 적이 없었을까. 난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구나 하는 반성과 더불어_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어쩜 저렇게도 좋아할까, 어찌 저리도 행복해할 수 있지. 뭐 저렇게 심플하고 온전할까!  


어느덧 '행복' 그 자체가 돼버린 그 개 한 마리는, 

자신의 보호자와 가만히 지켜보던 나를 넘어_ 달리는대로 그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행복의 에너지를 퍼뜨리고 있었다. 


한낮의 햇살 속 푸르른 풀 숲을 뛰노는 파란색 강아지. 

살아가며 절실히 찾아 헤매 왔던_ 서른이 되도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진득한 행복과 그윽한 사랑이, 이 파랗게 웃는 강아지에게 있었다.  


퍼스에서의 일 년, 그리고 발리에서 시작해 그리스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등.. 정처 없이 떠돈 일 년 후_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남편과 나는 나가기 전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다. 그래야 했다. 지난 2년 여의 시간 동안 충실히 회사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벌써 승진도 하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도 했고 아기도 낳았다. 우리는 다시 서른이 넘은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갔다. 이십 대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회들이 조마조마하게 겨우 얻을 수 있는 간절한 것이 되었고, 당연하게 나를 향해 주어졌던 것들 또한, 감사히 여겨야 할 한 때의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은 불공평하지만, 또한 삶은 공평한 면이 있다. 지난 시간들이 나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이었지만, 누군가의 성실함 앞에서는 배부른 신선놀음이었을 테니. 떠나기 전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이 가혹한 현실이 가슴 아리게 추웠다.


서른이 넘어 재취업을 하고, 다시 자리를 잡으려는 생존의 일상이 지속됐다. 제대로 된 집을 구하지 못해 이 집 저 집을 유목민처럼 캠핑하며 지내고, 간절하고 급한 마음에 무슨 일이든 해보겠다고 매일 불안과 조급함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때때로 답답함과 날카로워진 마음으로 다투고, 서로의 탓도 하고_ 또 후회도 후회 없을 만큼 해봤다.    


귀국한 그 해 겨울은 역대급 혹한이라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겨울의 시림과 일상의 냉기, 마음의 동상 속에서 입김을 호호 불며 따뜻해지려 애썼다. 하루를 마치면 베개를 안고 누워서는, 되돌아간대도 결국 다시 떠돌아다녔을 그때를 그리워했다. 우리는 서로 깊게 동의했다, 이번 생에 맛볼 행복한 삶의 최대치를_ 퍼스에서 만났다고. 어쨌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을 천국을 봤고, 그것이 뭔지 알아냈기에 항상 최종 목표는 그것이면 되는 심플함도 생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마음을 뜨끈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떠올린 순간 바로 명상과도 같은 평안함을 안겨주는 그 장면. 

집 앞 강가에서 게를 잡거나 동네 바닷가에 나가 전복을 돌 줍듯이 땄던 것도, 베란다에 나가 돌고래 가족을 보며 모닝커피를 즐겼던 순간도 아니었다. 로드트립을 떠났을 때 우연히 발견한_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없이 신비하게 펼쳐진 해변이라든가 로맨틱한 장소로 유명해진 핑크 호수도 아니고, 330일 이상 맑고 눈부셔서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퍼스 햇살도, 시내 한복판에서조차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의 자유도 아니었다.   


그건 초록의 잔디밭을 달렸던 그 개였다. 

왠지 모르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떠올랐다. 

그 모습은 내 우울과 불안을 금세 가라앉게도, 지치고 속상할 때 헐떡이던 얕은 숨을 조금씩 조금씩 깊게 차분히 들이마시게도 해주는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개가 웃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 그 자체가 되었다.      


넓디넓은 공원을 신나게 뛰던 강아지의 함박웃음이, 한겨울 추위를 녹이는 온기가 되어주었다.  

이제사 다시 생각해보면, 

그 해 겨울. 나름,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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